1919년 3월 1일은 무오년 독감으로 불린 인플루엔자가 14만 명의 사망자를 내며 전국을 휩쓴 그 이듬해, 기미년 봄이었다. 전 인구의 1.8%가 사망했는데, 0.4%의 사망률을 기록한 일본보다 4배나 높은 수치였다. 당시 일본은 넉 달 전에 끝난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칭다오(靑島) 등 독일의 조차지와 식민지를 확보했고, 군수품과 생필품 수출로 전쟁 특수를 누렸다. 선조들은 그 어둠 속에서 만세를 목놓아 외쳤다.
오늘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쟁에 휘말린 채 외교와 안보도 국내정치적 프리즘으로 바라본다. 확증편향의 양극화. 자기와 이념과 생각이 다르면 정책의 합리성이나 논리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폄훼하거나 매국의 낙인을 찍는다. 정쟁은 국내에서만 하고 외교에선 한목소리를 내자는 ‘정치는 해안에서 멈춘다’(politics stops at the water’s edge)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제104주년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는 글로벌 파트너로 묘사했다. 일본에 대한 인식을 재설정했다기보다 국제 정세의 복잡한 위기와 북핵 위협에 대처해 온 한·미·일 협력 관계의 틀 속에서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뿐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과 면담하며 정부가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달했다. 독일은 1952년 체결한 룩셈부르크협약을 통해 유대인에게 배상을 해 왔는데, 체결 60주년이던 2012년 협약을 개정했다. 옛 공산권에 거주해 배상을 받지 못한 생존자 8만 명을 찾아냄에 따라 이들에게 배상하기 위해 스스로 개정한 것이다.
“센세이, 와타시데스. 아노 다이주데스요.”(선생님, 접니다. 대중입니다) 1998년 일본을 국빈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목포상고 시절 스승이던 무쿠모토 이사부로 선생에게 전화로 한 일본어 인사말이다. 보수 성향의 대통령이었다면 당시엔 없던 ‘토착왜구’란 낙인이 찍히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방문 때 김 대통령은 오부치 게이조 총리에게선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받아냈다. 아키히토 일본 천황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고통’과 ‘사과’라는 표현을 썼다. 반일과 대결적 정책으로는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이끌 수 없다.
이제 전 세계인들은 가면을 벗고 드러난 신냉전의 맨얼굴에 두려움을 느낀다.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시대적 전환점’(Zeitenwende)이 왔다며 1120억 달러를 국방력 강화에 투자하겠다고 천명했다. 핀란드와 스웨덴도 우크라이나전쟁 한 달 전엔 생각지도 않던 나토(NATO) 가입을 적극 추진한다. 심각해지는 북핵 사태를 맞아 한·미·일은 물론 호주와 인도까지 포함하는 안보 협력도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편의점 냉장고에 일본 맥주들이 다시 나타났고, 일본의 유명 관광지와 식당에는 한국말만 들린단다. 이제 정부가 나서서 특정 국가에 대해 국민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치열한 경쟁과 전략적 협력 속에서 아픈 과거를 기억하며 가장 불확실한 미래를 어떻게 뚫고 나아갈 것인지 그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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