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에 오르는 마음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노만수 옮김│글항아리
시대변화에 따른 등산 의미 탐구
17세기땐 괴물 서식지라며 피해
18세기 들어서며 자연의美 인식
현대 가까워지며 정복욕 강해져
제국주의 시대 국가자부심 상징
위험한 산 등반하면 추앙받기도
17세기만 해도 산에 오르는 마음은 정신 이상이었다. 산은 미적 혐오의 대상으로, “지구 얼굴에 생긴 부스럼, 사마귀, 옴”으로 매도됐다. 산은 위험한 괴물과 악령의 서식지였다. 사람들은 산을 우회하거나, 산허리를 가로질렀지 절대 산 정상을 타고 넘지 않았다.
18세기 후반에야 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이 발달하고, ‘정신적 차원’에서 산을 오르는 이들이 생겨났다. 근대 등산의 아버지 오라스 드 소쉬르가 활동한 것이 1770년대부터였다. 이후 점차 많은 이가 산을 올랐다. 산에 대한 인식 혁명의 결과였다. 숭고하고 거대한 사물을 갈망하는 낭만주의적 열정과 함께 자연풍광을 지각 운동의 결과물로 보는 지질학 혁명의 영향이 컸다.
산은 두려움과 신비의 장소가 아니라 탐구와 관찰의 대상이 되었고, ‘소설보다 굉장한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거대한 돌 책’이 됐다. 가파름, 황량함, 위험함 등 인류가 질색했던 산의 특징이 인류를 위로 끌어당기는 매력적 역중력(逆重力)이 되었다. 산이 하나의 천국이 된 것이다. 매력의 중심엔 숭고, 즉 혼돈, 웅장, 위험에서 짜릿한 즐거움을 느끼는 마음이 있다. 크고 강하고 지나친 힘을 보유한 야생 경관에 대한 격렬한 애착이 이로부터 생겨났다.
이 마음을 처음 기록한 사람은 페트라르카였다. 1336년 방투산 정상에 오른 그는 압도적 풍경에 놀라서 노래했다. “위로는 더 높은 산이 보이지 않고,/ 거대하고 가장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향한/ 불처럼 강렬한 갈망이 나를 이끄네.” 그러나 그는 산에 오르는 마음보다 등산을 우화로 재해석해 영적 교훈을 얻는 데 너무 치중했다.
숭고가 널리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17세기 말 ‘그랜드 투어’ 열풍 때였다. 일기 작가 존 에벌린은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가는 동안, 산악 지대의 불쾌하고 무서운 모습에 혐오를 느끼다 정상에 올랐을 때 인간의 삶을 초월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후에 새뮤얼 존슨이 “고독한 공포, 경악과 감탄 사이에서 격동하는 희열”이라고 부른 감정이다.
엄격한 의미의 등산은 19세기 중반부터 활발해졌다. 위험 감수와 고도 숭배, 의도하고 계획한 공포 추구는 인간 마음에 활기를 주는 섬뜩한 기쁨이 되었다. 산은 위험과 곤경을 통해서 자신을 시험하는 즐거운 모험 공간이 되었다. 자기 계발의 선구자 새뮤얼 스마일스는 말했다. “성공에 오르는 길은 험준하나, 그것이야말로 그가 정상에 다다를 역량이 있음을 증명한다.”
산에 오르는 현대적 마음은 정복에 대한 욕망과 함께 강화됐다. “만약 누가 영국인이 진입하지 않은 미지의 땅을 거론한다면, 영국인은 가장 먼저 그곳에 발 디뎌야 한다.” 제국주의 영국인의 마음을 잡아끈 산은 에베레스트였다. 죽음을 부르는 위험에도 에베레스트에 대한 정복 경쟁은 그치지 않았다. 등산은 국가 자부심의 상징이었고, 위험한 산을 정복하는 산악인은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1924년 에베레스트에서 죽은 조지 맬러리는 장엄한 모험의 상징, 등산 신화의 별이 되었다.
산은 시간의 긴 흐름을 환기해 겸손을 불러일으키고, 경이를 북돋워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한다. 현대 사회에서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산에서 위안을 찾는다. 오늘날 등산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여가활동이 되었다. 매년 약 1000만 명의 미국인이 등산하고, 5000만 명이 하이킹을 즐긴다. 아웃도어 상품의 전 세계 매출은 연간 100억 달러로, 해마다 증가 중이다. 산에 오르는 마음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문화 안에서 힘을 발휘할 것이다. 496쪽, 2만6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