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이제 나는 내 인생 황혼기로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1994년 11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서신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알츠하이머 투병 사실을 이렇게 공개했다. 백악관을 떠난 지 5년 만의 일로, 레이건은 이후 10년간 투병 후 2004년 별세했다. 당시만 해도 공인의 질병에 대해 알리지 않으려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는데 레이건은 스스로 공개 결심을 하고 직접 대국민 고별 편지를 썼다.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는 미국인들을 응원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다이하드’ 등에 출연한 미 액션 스타 브루스 윌리스(67)가 전두측두엽 치매(FTD)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최근 SNS에 공개했다. 그의 부인 에마 헤밍과 전 부인 데미 무어, 그리고 다섯 딸은 서신에서 이 같은 사실을 알리면서 “FTD 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기 바란다”고 했다. 윌리스는 지난해 실어증이 심해져 영화계에서 은퇴했기에 레이건처럼 직접 알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어 등은 서신에서 “브루스는 항상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며 타인을 도왔고, 만약 지금도 그럴 수 있다면 심신이 쇠락하는 FTD 투병 중인 모든 사람과 연대해 대응하고 싶어 할 것”이라면서 미국의 FTD 환자와 가족들에 대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레이건의 딸 패티 데이비스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브루스 가족의 용기를 보면서 알츠하이머 발병을 공개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면서 “그들의 아름다운 편지를 읽으며 이 잔인한 질병에 걸린 이들이 위로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레이건은 83세가 되던 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마지막 여행을 시작한다’는 식으로 여유를 보이며 담담하게 작별 인사를 한 의연함이 놀랍다. 레이건이 공개 의지를 밝히자 낸시 레이건 여사는 그런 남편을 자랑스러워했다고 데이비스는 회고했다.

지미 카터(98) 전 미 대통령이 자택에서 호스피스 완화 치료에 들어갔다고 카터센터가 지난달 18일 발표했다. 카터는 2015년 간암 발병 후 7개월 만에 완치를 선언했는데 다시 피부암이 발병, 다른 장기로 전이되자 이를 택한 듯하다. 다정다감한 카터가 레이건처럼 메시지를 직접 내지 못한 것을 보면 지상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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