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워인터뷰 - ‘일상의 철학자’ 한병철은
“금속공학을 하기엔 인생은 짧고, 너무 가치 있었어요.”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한병철 선생은 스물둘에 왜 독일로 유학을 떠났는지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좋아해서 금속공학과에 갔는데 금속공학을 하기에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을 알았어요. 영원히 산다면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지만,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사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가치 있는 것, 삶에 대해 숙고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독일로 떠나 그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와 뮌헨대에서 철학, 독일어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고, 프라이부르크대에서 하이데거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의 철학·미디어학 교수, 베를린예술대에서 철학·문화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가 철학의 본고장 독일에서 유럽의 대표 철학자로 떠오른 것은 2010년 독일에서 나온 ‘피로사회’ 덕분이었다. ‘할 수 있다’가 최상의 가치가 되어 스스로를 착취하는 자본주의 성과사회의 메커니즘을 분석한 책은 시대의 뇌관을 건드리며 2주 만에 초판이 매진되는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곧바로 ‘피로사회’는 보통명사가 됐다. ‘피로사회’는 2012년 한국에도 출간돼 경쟁과 성과주의에 탈진한 우리를 돌아보게 하며 역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뒤 ‘투명사회’ ‘에로스의 종말’ ‘타자의 추방’ ‘리추얼의 종말’ ‘사물의 소멸’ 등 1년에 한 권꼴로 저작 작업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의 책들은 책과 책끼리 바통을 주고받듯, 연결된 소재와 주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는 이를 ‘변주’라고 설명했다.
“모범이 되는 것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입니다. 아리아와 변주곡처럼, 아리아가 있고 그다음 첫 번째 변주, 두 번째 변주, 세 번째 변주… 이렇게 나아가죠. ‘피로사회’가 아리아예요. 반복이라고 하는데, 반복이 아니라 변주입니다. 테마와 주제가 점점 깊어지고 밀도가 높아지고 심화되는 것입니다.”
그의 작업은 모두 우리 시대 병증을 분석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기본 개념들을 제안한다. 그는 이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모든 저작은 유토피아적 대항”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예를 들어 ‘피로사회’에서는 우울로 이어지는 ‘나-피로’에 공동체를 만드는 ‘우리-피로’를 맞세웠다면, ‘타자의 추방’에서는 나르시시즘에 맞선 경청을 제안했다. 또 ‘에로스의 종말’에선 우울에 대항하는 에로스를, ‘시간의 향기’에선 가속의 시대에 멈춤을, ‘사물의 소멸’에선 순간으로 존재하는 정보가 주인이 되는 탈사물 시대에 고요를, 그리고 디지털화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이번 책 ‘정보의 지배’에선 진실을 말할 용기를 다시 불러와 새로운 삶의 꼴, 앎과 깨달음을 말한다.
최현미 문화부장 chm@munhwa.com
관련기사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