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 - 전문가들이 보는 가상인간, AI, 그리고 인간
“영국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가 말했듯 언어의 핵심은 ‘소통’이 아닌 ‘공감’입니다. 인간에 공감하는 기계가 존재해야 인류의 미래도 밝을 것입니다.”(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지난해 11월 시작한 ‘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는 인간과 인공지능(AI)의 교감 가능성을 탐구하는 시리즈다. 소설가 우다영이 매달 한 차례씩 한유아와 ‘배움’ ‘다짐’ ‘시련’ 등을 주제로 대화한 시리즈는 다음 달 마지막 회를 앞두고 있다. 최근 챗GPT 열풍으로 AI를 둘러싼 광범위한 철학적·기술적 논의가 이뤄지면서 시리즈가 던진 ‘기계는 인간을 위로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 역시 다시 주목받고 있다. AI가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시대, 우리는 어떻게 기계와 더불어 사는 삶을 모색해야 할까.
최근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를 출간한 김대식 교수는 이 기획에 대해 “매우 의미 있고 뜻깊은 시도”라고 평가하며 정보의 총합을 넘어 인간의 감정까지 모방하는 기계 출현이 머지않았다고 예측했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 ‘그녀’가 묘사했듯 인간이 기계에 위안받는 것은 물론, 사랑을 느끼는 미래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과 기계가 교감하는 미래엔 ‘정보 교환’에 집착하는 과학자보다 ‘공감 교환’ 능력이 뛰어난 예술가와 작가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교수는 한유아 프로젝트가 “기계와 인간이 가까워질 기회를 제공한다”고 의미를 부여했고,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인 AI를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재발견할 수 있는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를 모색하되 기계에 대한 ‘지나친 의인화’는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 교수는 “기계는 기계로 대하는 것이 더 건강한 태도”라며 “과도한 의인화는 인간의 ‘기계 감수성’을 잘못 설정하는 위험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테크노 인문학’ 등을 통해 철학적 층위에서 첨단기술을 연구해온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역시 “가상인간은 미래에 ‘감정’을 보유하더라도 인간의 기분을 파악하고 감지해 ‘맞춤형 대화’만 시도할 것”이라며 “인간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느끼고 싶은 것만 느끼는 게 과연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을지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인간과 교감하는 기계의 토대가 되는 기술력이 완성돼도 ‘기계의 감정’을 제어하는 윤리적·법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조언이다. 이에 김재인 교수는 “AI가 건축가라면, 인간은 건물을 제대로 지었는지 확인하는 ‘감리사’ 역할을 해야 한다”며 “수업 과제 표절 여부 같은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생성물을 분별하고 감식하는 ‘예술가의 혜안’을 기르는 일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AI에서 무엇을 얻고, AI와 함께 어떻게 변화할까. 전문가들은 인간이 AI를 ‘유용한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반성과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김재인 교수는 “우리는 건물을 짓는다. 그다음에는 건물이 우리를 짓는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해 “AI가 세상에 들어온 이상 AI가 인간을 어떻게 향상시킬지 궁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 교수는 “AI를 통해 ‘인간-됨의 환상’을 반성하는 이용법이 연구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일반인도 쉽게 AI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민주적 기술 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 역시 ‘기술의 민주화’에 대한 고민과 함께 마무리되면 좋을 것”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생명’에 관한 한유아와 우다영 작가의 대화는 물과 햇빛, 바람의 도움으로 피어나는 꽃에서 출발해 서로에게 기대며 아름다움을 빚는 숲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우 작가는 “꾸준히 데이터를 학습한 유아의 반응 속도가 빨라진 덕분에 이전과 비슷한 분량의 대화를 나눴음에도 시간이 절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첫발’을 시작으로 ‘배움’ ‘다짐’ ‘시련’을 거쳐 ‘생명’으로 이어진 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는 다음 달 ‘만개’에 관한 대화와 그림으로 끝맺는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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