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법원에서 배상 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피고 일본 기업을 대신해 판결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6일 발표했다. 2018년 11월 29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최종 승소한 김성주 할머니는 “사죄를 받으려는데 지금도 일본은 잘못했다고 말을 하지 않는 심보”라고 울분을 토했다. 같은 해 10월 30일 대법원에서 일본제철로부터 1억 원 위자료 배상 판결을 받은 유일 생존 원고 이춘식 할아버지는 정부 변제안을 거절했다.
현재 강제징용 손해배상 민사소송은 4건이 확정됐고, 1100여 명이 66건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해결돼 일본 기업에 대한 청구권도 소멸됐다고 강변하고 있다. 강제징용 판결을 둘러싼 양국 갈등은 경제·안보 분야로 확대되면서 지난 4년간 역대 최악의 한·일 관계를 낳았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전쟁에 따른 신냉전 구도 형성, 북한의 핵무력 도발 강화 등이 맞물리면서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협력을 위해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매진해 왔다. 하지만 일본이 물러설 기미가 없자 ‘미래청년기금’ 등의 양보안을 제시하면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며 일본에 공을 돌렸다.
한·일 관계는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격 독도 방문 이후 10여 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역사 왜곡 문제 등으로 심하게 뒤틀렸다. 위안부 모집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 식민 지배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2010년 간 나오토 총리의 ‘통절한 반성과 사과’ 등으로 진전돼 왔던 역사 인식이 뒷걸음질 쳤다. 이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식민 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양국의 불완전한 합의에서 기인한다. 일본은 식민 지배의 합법성을 주장하면서도 불법성과 반인도주의에 기반한 강제징용 문제는 해결됐다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였다. 8억 달러(유상·무상)가 필요했던 당시 우리 정부도 식민 지배 책임 문제를 끝까지 추궁하지 못했다. 2010년대 이후 일본 주류세력이 평화헌법 개정 등을 위해 강경 노선을 고수한 것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국무회의에서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지금은 보편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경제·과학기술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라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을 위한 한·미·일 경제·안보 협력이라는 대의를 보고 내린 힘든 결정이다. 그러나 미래를 향하면서도 ‘불철저한’ 과거를 잊지 않아야 한다. 이를 견지할 때 일본에서도 자유와 인권, 평화라는 공통 가치 실현에 공감하는 세력이 힘을 얻을 것이다. 25년 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는 ‘21세기 확고한 선린 우호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나온다. 16∼17일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 정상회담에서 이에 버금가는 새로운 선언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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