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톨스토이 참회록, 안나 카레니나와의 대화’ 주연 정동환
작가와 주인공의 상상 속 만남
극단 피악 ‘인문성찰’ 14번째작
“수지타산 안 맞는 작품이지만
어렵고 호응도 오지 않더라도
옳은 세상을 향해 가야하는 길”
초연 때도 안나역 맡은 정수영
“선생님 만나 다른작품 하는 듯”
서울역에서 병점으로 향하는 1호선 지하철을 타고 50분을 달려 도착한 군포역. 1번 출구로 나가면 공장 일색에 곳곳이 공사 현장인 황량한 풍경이 나타난다. 먼지 내음 가득한 길을 15분쯤 걸으면 오래된 저층 건물들이 눈에 띈다. 공사장 인부들의 끼니를 책임질 법한 소박한 식당이 1층에 자리한 한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이 바로 극단 피악(PIAC·Performing Image Art Center)의 연습실이다. 본래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었던 것을 올해 이곳으로 옮겼다. 피악 단장인 나진환 성결대 연극영화학 교수의 학교와 가까운 데다 임차료가 더 저렴한 곳으로 옮긴 것이다.
지난 2002년, 유럽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을 주축으로 창단한 피악은 다양하고 실험적인 극을 선보여왔다.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방인’ ‘악령’ ‘죄와 벌’ ‘단테 신곡-지옥 편’ 등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인문학적 성찰 시리즈’를 이어왔는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장장 7시간을 공연, 국내 최장 공연 기록을 세워 화제를 모았다. 17일부터 다음 달 16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톨스토이 참회록, 안나 카레니나와의 대화’도 14번째 ‘인문학적 성찰 시리즈’다.
연습실에서 만난 배우 정동환은 “공단 한복판에서 연극을 연습하는 일,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도 “참 귀하다”고 했다. 극단 피악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대심문관과 파우스트’ ‘단테 신곡-지옥 편’ 등에 출연한 그는 나 교수와 뜻을 함께하는 동지(同志). ‘톨스토이 참회록, 안나 카레니나와의 대화’의 2021년 초연 당시에도 출연하려 했으나 사정상 성사되지 못했고 이번에 처음 출연하게 됐다.
“인문학적 성찰 시리즈는 ‘연극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달짝지근한 매력으로 일반 대중들을 모이게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 하나 수지에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공장지대 한복판에서. 그래서 이곳에 올 때마다 전 감동합니다. 모두 귀한 사람들이고 참 귀한 일입니다.”(정동환)
‘톨스토이 참회록, 안나 카레니나와의 대화’는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5분 앞두고, 자신이 쓴 소설 속 인물인 안나 카레니나와 만난다는 문학적 상상력에서 시작한 이야기로, 톨스토이는 신의 사랑을, 안나는 인간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너를 봐라’가 연극의 기본입니다. 무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쳐다보게 하는 게 연극이지요. 이번 작품이야말로 그것을 보여주기에 딱 좋은 작품입니다. 브론스키를 사랑하는 안나는 다른 사람이고 카레닌을 사랑하는 안나는 또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인물이 내 안에 있구나, 하는 걸 발견할 수 있는 게 이번 공연입니다.”(정동환)
안나 역은 배우 정수영이 연기한다. 초연 때도 안나를 맡았던 정수영은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여 호평받았다. “초연 때는 못 봤던 것들을 (정동환) 선생님을 통해 많이 보고 있어요. 마치 다른 작품을 하는 것 같습니다.”(정수영) 실제로 이번 공연의 러닝타임은 초연 당시 90분에서 140분으로 길어졌고, 안나에 비해 적었던 톨스토이의 분량도 크게 늘었다.
고전 ‘참회록’과 ‘안나 카레니나’를 바탕으로 한 극이기에 대사들은 문학적이다. 쉽게 이해되기 힘들며 많은 되새김이 필요하다. 정동환은 “그럼에도 고민하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또 연극의 힘입니다. 어렵더라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는 거죠. 이런 연극에 호응이 많이 오지 않더라도 고집해야 합니다. 어렵지만 따라와야 합니다. 그게 옳은 세상으로 가는 길입니다.”(정동환)
“나이가 들수록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보면 그들의 세상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피악의 작품을 하면 마치 공부를 하는 느낌이에요. 극에 달하는 감정들을 끄집어내게 만들고 치욕스럽게도 만들고,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게도 만들고. 여러 가지 감정의 뇌를 쓰게 하는 거죠. 그런 부분에 있어 뇌 영양제를 먹는 거라 생각하고 작품을 하고 있어요. 군것질은 다른 데서 하고요(웃음).”(정수영)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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