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식카페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24) 챗GPT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월터 옹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문자는 인류 지성사의 혁명
기억에 의존하는 문화 바꿔
챗GPT는 또 한번의 도약
다양한 혜택·활용 곱씹으며
윤리적인 문제도 성찰해야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이집트의 신 이비스, 자칭 테우트 신이 글자를 발견한 후, 타무스 왕과 나눈 신화적 대화를 전해준다. 테우트가 말했다. “왕이여, 이 글자를 배우면 이집트 사람들은 더 지혜롭고 더 잘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글자는 기억의 약이며 지혜의 약입니다.” 그러나 타무스 왕은 반색보단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글자를 배우면 기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테니, 글자는 사람들의 영혼에 망각을 제공할 것입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타무스 왕의 비판적인 태도를 발전시켰다. 문자란 사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그림보다도 더 희미한 이미지만을 모방하기 때문에 진실을 흐리고 혼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또한 기억에서 기억으로 지식과 정보, 지혜가 전달되는 과정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묻고 답할 수 있고, 대화를 통해 여러 가지 오해와 의문을 해소해나갈 수 있는 반면, 문자로 고정된 기록을 읽으면 이런 생생한 교육의 효과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실제로 단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아고라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진리와 지혜를 추구하는 ‘구술’ 철학자의 행보를 평생 이어나갔다. 반면 그의 제자 플라톤은 그런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구술의 현장을 열심히 기록하고 재구성하며 창작해 수많은 책을 남긴 ‘문자’의 철학자였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소크라테스의 말을 가장 잘 듣지 않은 ‘불량한’ 제자가 플라톤인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플라톤은 그 문자기록 덕에 지금까지도 철학의 대부로 통하고, 소크라테스 역시 자신의 비판과 가르침을 거스른 플라톤 덕분에 지금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예상하고 우려했던 문자의 폐해가 문자의 장점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예수회 신부로서 영문학자였던 월터 옹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1982)라는 책에서 인간이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단계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그는 기억에 의존한 구술문화를 출발점으로 삼았고, 문자문화는 인간이 기억하기 위해 소비했던 뇌의 에너지를 정보의 분석과 지식의 창출에 쏟아부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인류 지성사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정보와 지식의 기록과 검색의 종합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새로운 시대에 진입해 있다고 선언했다. 바로 디지털 시대다. 월터 옹의 책은 디지털 시대의 의미와 가치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진단하며 그 희망과 위험의 여러 가능성을 예견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의 통찰은 최근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생성형 AI 챗GPT의 등장과 직접 연결된다. 그리고 플라톤이 제기했던 문자문화에 대한 우려와 비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입은 문자문화의 혜택 역시 지금 소환될 필요가 있다.
놀라운 혁신을 거듭하는 인공지능(AI)의 기술은 인간의 지적활동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그동안 지식과 정보의 기억과 분석에 집중되었던 우리 뇌의 역량을 디지털의 혁신은 어느 쪽으로 향하게 할 것인가. 우리가 그것들을 적극 활용하면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우리의 새로운 역량을 상상하며 혁신의 방향을 찾고, 무엇을 해야만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 윤리적 지향성을 통찰하고 준비해야 할 때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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