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선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실태조사부 선임
해외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작품 정보에는 작품명, 제작 시기 등과 함께 크레디트라인(credit line)이 포함된다. 크레디트라인은 주로 ‘입수 경위’라고 번역한다. 그 이유는 ‘1960년 구입’ ‘1990년 ○○○ 씨 기증’ 등과 같이 주로 작품이 언제, 어떻게 기관에 들어오게 됐는지에 관한 내용이 크레디트라인에 담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크레디트라인의 길이가 긴 경우가 있다. 이는 소장기관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많다는 것이니 보는 사람에게는 분명 이점이다. 다만, 이때는 크레디트라인을 단순히 ‘입수 경위’로 옮겨 쓸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이 소장한 이응록(李膺祿)의 ‘책거리’(사진)가 그 예다.
‘책거리’는 ‘코렛 재단, 감정가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으로 입수했고 아시아미술협회의 지원으로 새로 장황(粧䌙)함’이라는 장문의 크레디트라인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원래 미국의 한 대학 도서관에 보관돼 있었다. 졸업생이 대학에 선물로 남긴 것이었다고 한다. 그림의 소재와 가치를 알게 된 아시아미술관 측은 대학으로부터 작품을 구입하고, 대학은 그 비용으로 ‘한국학 연구도서 구입기금’을 마련했다. 당시 그림은 낱폭으로 분리돼 있었으나 원래는 병풍이었던 것을 알고 있던 미술관 측은 작품을 입수한 후 병풍으로 장황했다.
‘책거리’의 긴 크레디트라인은 미술관이 대학에 지불한 비용의 대부분을 코렛 재단과 감정가위원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했으며, 낱폭으로 분리돼 있던 그림을 병풍으로 장황한 것은 아시아미술협회가 그 비용을 지원한 덕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크레디트라인이 이렇게 길어진 것은 ‘책거리’가 오늘날 아시아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기까지 그만큼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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