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변방의 일개 용병대장인 오도아케르가 천 년 이상 서양 고대사를 독점해온 로마제국,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을까?”
역사인물시리즈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의 제 1권인 ‘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 사라지는 순간’은 이같은 의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살아가는 데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질문들을 예리하게 던진 뒤, 명쾌한 답변을 한다. 저자는 세계사 격변기의 주요 장면을 클로스업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호걸의 역사’보다는 역사에서 그다지 조명받지 못하던, 이율배반적이고 부정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 인물들을 끄집어내 독특한 시선, 심리학까지 동원해 맛깔나게 요리한다.
우리의 어렴풋한 공부 기억에는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켰다’는 단문 정보뿐이다. 오도아케르가 누구인지, 로마는 정말 어떻게 망했는지, 그 과정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고, 어떤 인물들이 등장했는지, 전문가조차도 잘 알지 못한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조차 “로마제국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고 허탈해했을 정도다. 책은 로마제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드는 그 씁쓸한 뒷모습을 추적, 흥미진진하고 맛깔스런 역사의 별미 요리, 그 흥미로운 시간여행으로 안내한다. 어쩌면 로마제국의 화려했던 천년의 역사보다 시오노 나나미가 표현한 대로 ‘시시껄렁한’ 그 순간에 더 많은 통찰이 그 빛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김영사 편집장 출신으로 웅진씽크빅, 메가스터디 대표이사를 역임한 저자는 흥미진진한 역사의 결정적 순간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작금의 지적 현실에서 질문을 찾아내 재해석하고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중적이고 별스런’ 갖가지 역사 인물들을 요리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저자는 동로마 재상 크리사피우스가 훈족의 영웅 아틸라의 콘스탄티노플 침공을 왜 시대의 변화로 읽지 못하고 아틸라 개인의 일탈로 해석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가 하면, 훈족의 영웅 아틸라와 마지막 로마인 아에티우스의 시대를 건 진검승부처인 카탈라우눔 전투, 바로 이 평원에서 훈족의 아틸라와 서로마 제국의 아에티우스의 진검승부가 펼쳐지는 장면을 클로스업한다. 제대로 된 한판 승부에서 아에티우스가 이겼지만 도망가던 아틸라에 대한 포위를 해제하고 도망가게 하는 바람에 서로마역사는 뒤바뀌었다. 아에티우스가 카이사르처럼 부패한 로마제국을 ‘접수’ 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지 모른다. 서로마 황제는 아에티우스가 두려운 나머지 환관의 모략에 따라 황궁으로 알현하러 온 그를 칼로 베어버린다. 로마의 마지막 희망이 허망하게 사라진 순간이었다.
저자는 로마가 사라지는 ‘비겁한 시간의 군력자’로, 서로마제국 황제 4명을 폐위시키지만 급사하고 마는 게르만족 출신 서로마 장군 ‘잔대가리의 귀재’리키메르를 비롯, ‘로마 약탈자’ 아틸라에게 자신의 딸을 바치며 충성 맹세로 그의 심복이 됐다가 서로마 권력을 장악하지만 게르만족 용병들에게 최후를 맞는 오레스테스란 인물을 낱낱이 까발린다. 게르만족 용병 지휘관들에 의해 추대되지만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르지 않는 바람에 서로마제국 문패를 닫게 한 오도아케르 등 서로마제국 멸망에 기여한 인물들을 통해 천년왕국 멸망의 필연적 이유를 보여준다.
2권 ‘한(漢)의 몰락, 그 이후 숨기고 싶은 어리석은 시간’은 오백년 제국 한나라 몰락에 기여한 ‘권력자들과 지식인의 관계’를 조명해 시사하는 바 크다. 서양에 로마가 있다면 중국에는 한(漢)이 있다. 로마가 그리스 문명을 흡수해 서양 문화의 원류를 만든 역사의 호수였다면, 한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문명을 천하에 퍼뜨려 동아시아 문화의 꽃을 피운 역사의 뿌리였다. 서로마와 마찬가지로 한나라도 어떻게 멸망했는지 잘 알지 못하고 서로마가 시시껄렁하게 멸망했다면, 한은 흐지부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나라가 무너지면서 400년 이상 계속된 분열의 시기, 그 ‘어리석은 시간의 지식인들’을 낱낱이 까발린다. 그들을 통해 동서고금 반복된 지금 이 땅의 권력자와 지식인의 관계를 대비시킨다. ‘망탁조의(莽卓操懿)’ 묶어 불리는 왕망·동탁·조조·사마의가 그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중적 인간 왕망이다. 개혁을 위해 패륜을 저질렀고, 개혁에 대한 평가로 패륜을 이해해주기를 기대했지만 역사는 오히려 그의 패륜에만 주목했다. 평가의 대상에서마저 아예 제외된 왕망의 공과, 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에누리 없이 보여준다.
저자는 한이 무너진 이후 오랜 분열의 시간, 그 어리석은 시간을 지배한 권력자들은 하나같이 성정이 꼬였다면서 이들의 심리를 파헤친다. 또 당대 최고 석학이면서 조조의 양자이자 사위로, 권력의 중심에 서지만 이중적·허위의식으로 결국 패가망신하는 하안도 흥미로운 인물이다. 정권교체기 타락하고 부패한 정치 권력에 등을 돌리고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냈다는 ‘죽림칠현’에 대한 상식을 뒤집는다. 끝끝내 관직을 거부한 이는 혜강 밖에 없었고, 현실의 속됨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실패하지 다시 속됨과 어울렸다는 이들 지식인의 이중성을 파헤친다. 출간 준비 중인 3권 ‘어두운 하늘에 뜬 두 개의 태양’, 4권 ‘중국 중세를 관통하는 관롱의 피’, 5권 ‘칭기즈칸, 그 이후가 궁금하다’, 5권 ‘칭기즈칸, 그 이후가 궁금하다’,6권 ‘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미미하리라’ 등 세계사를 특유의 시각으로 감칠맛나게 요리하는 저자의 후속작이 기대된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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