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베스트 리더십 - 프로야구 10개 구단 주장 각양각색 리더십
솔선수범형
KIA 김선빈 훈련 도우미로 나서
NC 손아섭 흥 돋우며 승리 따내
화합형
KT 박경수 후배에 먼저 다가가
한화 정우람 웃음띤 얼굴로 조언
LG 오지환 고참 모임까지 주선
실력·카리스마형
SSG 한유섬 말수 적지만 ‘행동’
삼성 오재일 “개인보다 팀 우선”
키움 이정후 가장 어린 주장으로
“야구엔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휘하는 감독과 선수단을 아우르는 주장, 2명의 감독이 팀을 이끈다.”
오는 4월 1일 2023 신한은행 쏠(SOL) KBO리그가 막을 올린다. 프로야구 개막이 5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구단 주장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 10개 구단 선수단을 이끌 주장은 SSG 한유섬(34), LG 오지환(33), KT 박경수(39), KIA 김선빈(34), 삼성 오재일(37), 키움 이정후(25)와 NC 손아섭(35), 두산 허경민(33), 롯데 안치홍(33), 한화 정우람(38)이다. 한유섬과 오지환, 박경수, 김선빈, 오재일은 지난해에 이어 ‘연임’됐고, 이정후와 손아섭, 허경민, 안치홍, 정우람은 올해 새로 주장 완장을 둘렀다.
프로야구 전체 평균 연차는 8.5년, 나이는 28세. 주장 10명의 평균 연차는 15.7년, 나이는 34.1세다. 연차와 나이가 가장 많은 주장은 박경수로 39세, 21년 차다. 반면 이정후는 25세, 7년 차로 가장 적다. 프로야구 전체 선수의 평균 나이보다 어린 주장은 이정후뿐이다.
10개 구단 주장의 올해 평균 연봉은 6억500만 원이다. 프로야구 등록선수 전체(신인·외국인 선수 제외)인 589명의 평균 연봉은 1억4648만 원. 올해 주장들은 평균보다 약 4.13배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 10개 구단 주장이 대부분 연차가 많은 30대이고, 특히 공헌도가 높기 때문이다. 유일한 20대 주장 이정후는 3년 차였던 2019년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 해당 연차 최고 연봉 신기록을 세웠다. 10개 구단 주장 중 허경민이 12억 원으로 가장 많고, 이정후가 11억 원으로 그 뒤다. 연봉이 가장 적은 주장은 박경수로 2억 원이다. 정우람, 오재일, 손아섭, 한유섬, 안치홍 등 절반인 5명의 연봉이 5억 원이다. 연봉 10억 원 이상인 톱13 중 주장은 허경민과 이정후, 2명뿐이다. 투수, 내야수, 외야수 최고 연봉자 중 주장은 없다.
주장은 팀의 구심점이다. 늘 동료들의 곁을 지키며 누구보다 팀 속사정을 잘 꿰고 있어야 하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28명의 대규모 1군 선수단을 이끌어 가야 하는 종목 특성상 주장의 역할이 막중하다. 팀의 중심인 주장이 흔들리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각 팀의 주장을 맡은 선수들은 어떤 리더십 유형일까.

△솔선수범형 = 야구장 안팎에서 먼저 몸을 움직여 동료들을 이끄는 솔선수범형 주장은 선수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마련이다. KIA 김선빈과 NC 손아섭, 롯데 안치홍 등이 ‘솔선수범’으로 선수단을 휘어잡는다. 김선빈은 지난달 일본 오키나와(沖繩)에서 진행된 2차 전지훈련에서 배팅볼 투수로 변신해 취재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현역 선수가 배팅볼 투수로 나서는 것은 이례적인 일. 게다가 김선빈은 투수가 아닌 내야수다. 김선빈이 자청해 마운드에 오른 것은 배팅볼 투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KIA는 1차 미국 애리조나 전지훈련 종료 후 현지 기상악화로 입국이 지연됐고, 선수단이 이틀에 걸쳐 나뉘어 오키나와로 이동했다. 이에 김선빈은 자청해 마운드에 올랐다. 김선빈은 “아직 모든 구성원이 (일본에) 들어오지 않아 배팅볼을 던져준 것뿐”이라면서 “다른 이유는 없다. 팀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과거 프로야구 주장은 소속팀 사령탑이 선임하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2010년 이후 선수단 투표가 대세다. NC 주장 손아섭은 2021시즌 뒤 롯데에서 NC로 이적했고 올해 투표를 통해 주장이 됐다. 손아섭이 투표를 통해 주장에 선출됐다는 건 1년 만에 NC 선후배들의 신뢰를 얻었다는 의미다. 손아섭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퍼트리는 리더형이다. 지난해 9월 14일 삼성과의 홈경기가 대표적인 예. NC는 지난해 9월 6일부터 11일까지 6연승을 질주하다, 13일 연패가 끊겼다. 분위기가 자칫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 손아섭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더그아웃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야구장엔 버즈의 노래 ‘가시’가 흘러나왔고, 손아섭은 이 노래를 따라부르며 열창했다. 선수단은 다시 하나로 뭉쳤고, 승리를 따냈다. NC는 9월 한 달 19승 14패로 승률 5할이 훌쩍 넘는 성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마지막까지 5강 진입 경쟁을 펼쳤다. 박민우는 “1년간 같이 하다 보니 (손)아섭이 형이 왜 대단한 선수이고 그 열정과 투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느꼈다. 우리 팀 모든 선수가 그런 부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형님처럼…화합형 = 좋은 주장이 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과거 프로야구 주장은 감독의 지시사항을 후배들에게 전달하고, 군기반장으로 선수단을 휘어잡는 게 주요 업무였다. 그러나 요즘엔 균형 감각이 필수다. 고참과 신예,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가교 역할이 최우선 덕목이다. 주장은 열린 마음을 갖고 선수단 내 다양한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래서 올해 프로야구 주장들은 화합형이 대세다. 주장 경력 5년 차인 KT 박경수의 매력은 헌신과 배려다. 매사 궂은일에 앞장서 구단과 선수단의 신뢰를 얻었다. 특히 구단이나 코칭스태프의 지시사항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선수들의 의견을 수렴해 코칭스태프에게 적극적으로 건의한다. 여기에 자상한 성품까지 더해졌다. 박경수는 후배, 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넨다. 그래서 그의 곁은 항상 후배들로 북적인다. 2021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다친 뒤 치료 후 숙소에 돌아왔을 때, 그의 방으로 후배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던 게 좋은 예다. 당시 박경수는 다음날 후배들을 위해 커피 40잔을 돌려 화답했다. 이강철 KT 감독은 “팀에 대한 애착과 소속감이 남다른 만큼 모범적인 주장”이라고 치켜세웠다.
두산 주장 허경민도 대표적인 화합형 주장이다. 허경민은 올해 호주 스프링캠프 출국을 앞두고 “아내의 허락을 얻어 총알(돈)을 장전했다”고 기뻐했다. 허경민은 올해 처음 주장 완장을 찼고, 캠프 목표를 전 선수와 식사로 잡았다. 허경민의 아내는 남편에게 식사 자금을 건네 지원사격했다. 허경민은 올해 스프링캠프 기간 내내 휴식일을 이용해 후배에게 밥을 샀다. 때로는 쇼핑몰에 들러 저연차, 저연봉 선수들에게 신발과 옷도 선물했다. 두산 관계자는 “올해 캠프에서 선수 대부분이 허경민과 식사 타임을 가졌다”고 귀띔했다. 한화 주장 정우람은 올해 10개 구단 주장 중 유일한 투수다. 정우람의 얼굴엔 늘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정우람의 별명은 긍정왕. 정우람의 야구 철학도 “그래도 웃자”이다. 그런데 ‘주장 정우람’은 이런 쾌활한 성격으로 선수단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한다. 한화 홍보팀 관계자는 “격의 없이, 자연스럽게 다가와 친근하게 조언하니 따르지 않는 후배가 없다”고 설명했다. LG 오지환도 비슷하다. LG 내에서 선후배들이 의지를 많이 한다. 오지환은 야구장 밖에서도 바쁘다. 후배들을 알뜰살뜰 챙기고, 고참 선수들의 모임을 주선한다. 오지환은 구단 프런트의 생일까지 챙겨주기도 한다.
△실력파·카리스마형 = 프로야구 선수단엔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그래서 주장은 쓴소리를 마다치 않는 ‘악역’을 맡아야 한다. 일부 감독은 주장에 막대한 권한을 주기도 하는데, 주장이 선수단에 미치는 영향력은 코치를 능가하는 때도 종종 있다. 또 주장에게는 구단마다 다르지만, 매달 100만 원 직책 수당을 준다.
그래서 예전부터 카리스마는 주장의 덕목 중 하나였다. SSG 한유섬은 카리스마가 넘친다. 한유섬은 달변가가 아니다. 무뚝뚝한 성격에 말수도 적다. 하지만 말보단 행동을 우선시한다. 그리고 부지런하다. 훈련할 땐 가장 먼저 ‘출근’한다. 훈련과 경기가 끝나면 뒷정리까지 도맡는다. 한유섬의 별명은 악바리. 타고난 근성으로 부단히 노력했고, KBO리그를 대표하는 슬러거가 됐다. 여기에 누구보다도 야구에 대한 성실함과 진지함으로 솔선수범하며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후배들은 같이 생활하면서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한마디 한마디 이야기 듣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된다.
반면, 삼성 오재일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이끈다. 오재일은 2005년 현대에서 데뷔했지만 10년 동안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슬러거가 됐다. 자수성가한 스타 출신이지만 거만하지 않다. 온화하고 침착한 말투는 후배들에게 엄청난 설득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할 말은 하는 스타일. 한없이 자비로울 것 같지만, 참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배려와 희생이란 원칙을 위반하는 것. 나보다 우리, 개인보다 팀을 우선시했고 이를 어기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몸값이 높은 스타 선수들 사이에서 주장이 제 목소리를 내려면 성적이 뒷받침돼야 한다. 프로야구는 적게는 몇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모인 집단이기 때문. 20대 주장인 이정후는 실력으로 주장에 올랐다. 이정후는 지난해 타격 5관왕에 오르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키움이 나이보다 팀 안팎에서 차지하는 정신적 비중, 그리고 성적을 더 많이 고려한 것이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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