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립습니다 - 권중원 전 서울 남강고 교사(1935∼2023)
지난 20일 회사에서 일하다가 오후 회의를 준비하던 점심시간 즈음. 아버지가 계셨던 병원으로부터 혹시라도 위독하실 수 있다는 전화를 받고 뛰어나간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입니다. 아버지 권중원 님을 떠나보낸 큰 슬픔으로 경황이 없던 저희 가족에게 많은 위로를 주시고, 힘든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크나큰 위안이 됐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1935년 충남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돌아가신 지난 20일까지, 교직을 평생의 소명으로 알고 계셨습니다. 선친이 봉직하셨던 학교는 단 두 곳. 고향인 충남 임천중학교 그리고 서울 남강고였습니다.
평생의 일이셨던 영어 교과서 저술을 위해 종일 영어문장을 컴퓨터 자판에 가다듬고 계셨던 모습은, 이제 수십 장의 흑백 사진 같습니다. 선친의 건강이 급작스럽게 나빠지기 전인 지난해 12월 중순까지만 해도, 휴일에 찾아뵐 때마다 보이던 모습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The God gave us life gave us liberty).” 아버지가 집필하던 영어 교재의 머리말로 준비했던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명언이었습니다. 권중원 님이 의미로도 그리고 문법설명으로도 제일 좋아하시던 문장. “2호 동사 앞에서 끊어 읽어봐”라고 하시던….
아버지는 사업가이셨던 할아버지를 따라 1945년 해방 때까지 만주에서 자라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사업장인 충남으로 돌아오셔서는, 고등학교를 고향과 가까운 군산으로 진학하셨습니다. 군산고를 졸업하신 뒤에는, 고려대에 입학하셨습니다.
중국어와 독일어까지 구사하셨던 아버지는, 영어와 일본어를 편하게 읽으셨습니다. 대학생 시절, 일본 서적들로 나세르(1918∼1970) 이집트 대통령의 1952년 자유 장교단 쿠데타를 분석하시고는, 한국에서의 군사정변을 예견하셨다고 어르신들께 들었습니다.
학업을 마친 뒤부터는 염전과 조림사업을 하라시는 할아버지의 말씀 대신, 교편을 잡으셨습니다. 할아버지 친구이셨던 신용호 교보 창업자의 동업 제의도 정중히 거절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교직이 즐거우셨나 봅니다. 당직이신 휴일에 교무실로 꼬맹이였던 저를 데려갔던 기억이 몇 편의 비디오처럼 떠오릅니다. 교사용 책상 위에 장미 한 송이를 꽂아두고, 낡은 가죽 케이스의 소니 라디오를 켜시더니 교향곡을 틀어주셨습니다. 그러고는 “꽃과 음악과 인간이 있는 자리”라며 제게 하하 웃어주는 장면이 담긴 뿌연 동영상.
학생들에게는 일체 손찌검을 안 하셨고, 그야말로 인격적으로 대해주셨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을 찾아주신 십수 명 제자들의 후일담입니다. 남강 졸업생들이 집으로 삼삼오오 찾아왔던 모습은, 제 학교생활과 비교해 생각할 때마다 신기했습니다. 이런 교육관은 선친의 천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소명과 섬김을 실천하고자 하신 신앙의 힘도 크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버지는 먼저 가신 어머니와 함께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살아오셨습니다. 하루를 새벽마다 무릎 꿇은 채 묵상과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와의 식사 때, 감사기도가 없던 때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명절과 기일은 언제나 가족예배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영혼은 벌써 어머니와 좋은 곳에서 만나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22일 발인을 마치고, 경기 의왕시 백운호수 근처 의왕 하늘 쉼터로 모셨습니다. 지난 2018년 소천하신 어머니와 나란히, 전망 좋은 자리에 계십니다. 24일 삼우제 때 뵈니, 저희 모두를 웃으며 내려다보시는 듯했습니다. 아버지의 빈소를 찾아주시고 저희 가족을 위로해 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권선무 BC카드 전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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