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구시대 현자와 개혁세력 대결
누가 주도하느냐에 국운 교차
중국과 러시아 핵 사용 불안감

尹정부의 체계적 대응 안 보여
국가 지식 생태계 문제도 심각
이벤트 아닌 국가전략 내놔야


지금을 ‘대변혁의 시대’ 또는 ‘대전환기’라고 규정하는 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삶의 방식이 거꾸로 뒤집히는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대변혁 또는 대전환을 드러낸 가장 전형적인 사건은, 먼저 난 자가 나중에 난 자보다 세상을 몰랐다는 데 있었다. 예컨대, 전근대에서 근대로 대전환을 이루던 시기, 전근대 농업사회의 현자는 새롭게 근대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보다 세상을 몰랐다.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 잘 아는 사람을 통솔하려 하니 세상이 거꾸로 뒤집힐 수밖에 없다. 19세기 말 일본은 당시의 대변혁 속에서 빠른 세력 교체를 이뤄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조선은 시대를 읽어낸 젊은 개혁 세력을 짓밟아 버렸다. 그 후 조선은 일본에 나라를 잃었다. 지금 눈부신 속도로 등장하는 신기술들은 세상의 패러다임을 또 한 번 뒤집고 있다. 먼저 난 ‘꼰대’들이 신기술로 무장한 젊은이들을 통솔할 수 없는 시대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전환기(대변혁기)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 질서에 대한 강력한 수정주의 국가의 등장이다. 지금 우리가 아는 세상은 시장경제가 질서의 중심이다. 그리고 과거 약 70년 동안, 강대국의 부상은 모두 시장을 통해 이뤄졌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잿더미가 된 일본과 독일은 역설적으로 승전국 미국이 이끄는 세계 자본주의 시장을 통해 냉전기 세계 2, 3위 강대국으로 부활했다.

하지만 일본과 독일은 국력이 상승할 때 자유주의 국제질서라는 미국 중심의 세계 시장질서에 도전하는 수정주의 국가로 바뀌지 않았다. 부유한 커다란 시장국가가 됐을 뿐이다. 반면, 지금의 중국은 세계 2위로 성장하면서 자국을 강대국으로 만들어 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다.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치면서 하나로 연결된 세계시장과 다자주의에 기반한 세계 질서를 몇 개의 강대국 중심 세력권으로 나누는 다극질서로 바꾸려 하고 있다.

대전환기의 또 하나 특징은, 강력한 금기가 깨지는 것이다. 2차 대전 종전 후 국제정치에서의 금기는 무력에 의한 강대국의 영토 확장과 핵무기의 실전 사용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이 두 가지 금기가 다 깨어질 순간이다. 러시아는 핵무기의 실전 사용 가능성을 흘리고 있고, 중국은 대만 통일을 위해 무력 사용을 불사한다고 공언한 바 있다. 게다가 러시아·중국·북한 같은 수정주의 세력이 핵을 가지고 있어 불안을 증폭시킨다.

대변혁은 나라 안팎의 기존 질서와 삶의 방식에 급진적인 조정을 요구한다. 고도로 발달한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으로 인해 교육·경제·노동·의료·법률·조직·문화 등의 제반 영역에서 기존의 방식이 모두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전개되고 있는 신냉전과 공급망 조정, 자유주의 세력과 수정주의 세력의 합종연횡, 핵전쟁의 가능성 등 모두가 불확실 덩어리다. 이러한 대변혁에 겹쳐서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의 재발 가능성, 기후변화와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는 불확실성을 더 키우고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대전환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이를 마주하는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5월에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6대 국정 목표 및 120개 국정 과제 가운데 이러한 대변혁을 체계적이고 정면으로 다루는 문제의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출범 1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윤 정부는 대전환에 대한 종합적이고 정교한 비전과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 부처는 흩어져 있고,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더욱 아쉬운 부분은 우리나라 지식 생태계의 문제다. 수많은 국책연구소, 민간 싱크탱크, 대학 연구소 등이 있는데도 대변혁의 방향과 성격, 우리나라의 대응 전략 및 추진 체계 등을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굴지의 연구소나 정부 조직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유튜브로도 알 수 있는 외국의 학자들을 불러와 형식적인 이벤트는 많이 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자체 역량과 결합된 후속 연구와 국가 전략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 만들 수 없다면, 또다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남들이 만들어 주는 운명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지적 역량을 모아내는 국가의 컨트롤타워가 가동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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