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카페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25) 국가 지도자와 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성경엔 “독주, 떠들게 하고
포도주는 거만하게 만들어”

‘알렉산드로스 = 술꾼’ 평가
절제 무장 땐 거침없는 진군
자제력 잃고 술 탐하다 멸망


애주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의 이야기는 가나의 혼인잔치일 것이다. 한껏 흥이 오른 잔칫집에 술이 똑 떨어졌다. 흥이 깨질 판에 예수는 뜻밖의 이적을 행한다. 빈 항아리에 물을 채웠더니 고품질의 포도주가 된 것이다.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고, 신랑은 하객들로부터 칭찬과 축복을 잔뜩 받았다.

술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신비의 묘약이다. 적어도 그리스로마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포도주는 제우스의 아들, 디오니소스 신이 인간들을 위해 빚어낸 선물이었다. “인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인간을 먹여 살리는 곡식과 디오니소스께서 발명한 포도주라오. 가련한 인간들이 포도주를 실컷 마시면 고통에서 해방된다오. 그것은 우리에게 잠을 주고, 일상의 고생을 잊게 해준다오.” “그분은 부자에게도 빈자에게도 근심을 잊게 하는 포도주의 환희를 똑같이 나눠주신다오.”(에우리피데스의 ‘바코스의 여신도들’)

십자가에 죽기 전, 예수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 예수는 빵을 떼며 말했다. “받아 드시오. 이것은 나의 몸입니다.” 포도주를 따라 잔을 주며 말했다. “이것은 나의 피니, 받아 드세요.” 빵과 함께 포도주는 인간에 대한 메시아의 구원을 위한 언약의 징표였다. 그러나 성경은 음주를 철저히 경계한다. “술을 즐겨 하는 사람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마라.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해질 것이다.” “붉은 포도주는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간다. 그것을 보지도 마라. 그대를 독사처럼 물고 쏠 것이다. 그러면 그대 눈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며, 그대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다.”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고, 독주는 떠들게 만든다. 이것에 미혹되는 사람은 지혜가 없다.” 그러니, 하물며 한 나라의 지도자가 술을 탐하고 취한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포도주는 신의 선물이지만, 그것을 탐하고 취해 흔들린다면, 신의 선물을 모욕하는 불경스러운 일이다. 신실한 디오니소스 밀교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과음과 만취는 자신을 망가뜨리고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악마적 행위인 셈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은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 알렉산드로스를 사사하며 훌륭하게 성장했다. 불과 20세에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자,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며 그리스를 통합하고 거대한 제국 페르시아를 향한 원정을 용감하게 감행했다. 인도의 서쪽까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플루타르코스는 금욕적인 생활 태도를 으뜸으로 꼽았다. “알렉산드로스는 널리 알려진 것만큼 술에 탐닉하진 않았다. 그가 술꾼이라는 평을 듣게 된 것은 술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것도 여가가 많을 때에 한해서였다. 그는 급히 처리할 일들이 있으면 여느 장군들처럼 술에도, 잠에도, 운동에도, 사랑에도, 구경거리에도 매달리지 않았다.”(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중 ‘알렉산드로스의 생애’ 23)

그러던 그가 마지막 순간에 부하들의 요청으로 정복의 야망을 접게 되자, 자제력을 잃고 술에 탐닉하면서 급격하게 무너져버렸다. 술을 먹기 위한 주연을 수시로 벌였고, 폭음으로 정신을 잃기 일쑤였다. 자신을 충성스럽게 보필하며 직언을 아끼지 않던 장군을 향해 창을 던져 죽이는 일까지 만취 상태에서 저질렀다. 부하들과 술 마시기 시합을 벌였으며, 그의 강권에 폭음을 하다가 죽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급기야 그 자신도 술병에 풍토병이 겹치면서 33세에 생을 마감했다. 지혜와 절제, 용기로 정의롭게 행동했을 때, 그는 거침없이 진군할 수 있었지만, 자제력을 잃고 술을 탐닉하면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그가 이룩한 거대한 왕국은 순식간에 조각이 났고, 마침내 새롭게 도약한 로마에 의해 정복되고 말았다. 그가 초심을 잃지 않고 처음의 품격과 미덕을 유지하면서 살아갔다면, 서양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술이 절제의 미덕과 함께하면 신의 축복이지만, 오용할 때는 악마의 마약이 된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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