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합니다 - 김재남
10년 동안 이사를 네 번이나 했다. 가도 가도 반지하 그늘은 늘 그 자리, 헤어날 길이 없는 오늘도 궁리를 해보지만 갈 곳이 없다. 가난은 생활이 불편할 뿐, 죄는 아니라지만 나는 죄인 같다.
“죄송한데 1년만 더 봐주시면 안 될까요? 1년 후에 꼭 올려 드릴게요.”
끝없는 슬픔의 꽃말을 가진 알리움처럼 애원했으나 주인은 냉정했다.
“안 돼요. 다른 데는 벌써 2000씩 올랐어요. 1500만 원 올려 달라는 건 무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
주인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쩔 수가 없었다. 돈을 마련하든지 나가든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코로나로 너나없이 어려운 시기에 돈을 어디서 구할까. 누구에게 부탁할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남에게 돈 빌리는 일인데, 벚꽃 흩날리는 이 봄날, 내가 그 길에 서 있다.
“미영아, 너 혹시 돈 좀 있니?”
“애는 요즘 코로나 시대에 돈이 어딨니? 근데 왜 무슨 일 있어?”
“응, 전세금 올려 줘야 해서.”
“아, 그래? 그럼 300 정도는 여유 있는 데 이거라도 보낼까?”
철원에서 억척스레 토종닭을 키우는 미영이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혈육보다 더 가까운 친구다.
“그래 고마워”하고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 위로 눈물이 꽃잎처럼 떨어졌다. 나는 다시 핸드폰 속에 저장된 친구들을 손끝으로 오르내리며 맹인 점자 더듬듯 하나하나 눌러보았다. 답은 모두 예상대로였다.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듯, 믿었던 몇몇 친구에게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언니, 나 전세금 올려 줘야 해, 돈 좀 있어?”
어쩔 수 없이 남태평양 괌에 사는 언니한테 부탁했다. 그러나 괌 역시 코로나로 관광객이 없어 최악의 불경기라며 다른데 복잡하게 부탁하지 말고 넷째 외삼촌한테 전화해 보라고 했다.
그렇지. 그 외삼촌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마니아급 마라토너로 울트라 100㎞를 뛰고 풀코스도 30여 회 완주한 집념의 사나이로 유명한 삼촌은 성격이 곧고 호불호가 정확해서 때론 차갑게 느껴지지만, 정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뇌하수체에 15㎜ 혹이 발견되어 예민한 삼촌에게 돈 얘기는 인사가 아니었다. 깊은 고민으로 여러 날 밤을 새웠다. 삼촌 이외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삼촌, 머리도 아픈데 미안해. 1200만 원만 빌려줘.”
“무슨 일 있니?”
“응, 전세금 1500만 원 올려 줘야 하는데 1200이 모자라.”
“아 그래? 근데 넌 왜 나한테만 부탁하니? 다른 삼촌도 많은데….”
“그냥 삼촌이 좋아서….”
“지랄하네. 알았어. 1년 안에 갚아라.”
삼촌은 구차하게 길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울음이 터져버렸다. 돌아가신 엄마를 유난히 닮은 외삼촌은 조카들에게 항상 따뜻했다. 뇌 혹이 짓누르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은혜를 베풀어 준 우리 삼촌은 나에겐 엄마요, 아버지다. 얼마 전 돈을 못 갚아서 미안하다고 전화를 드렸다.
그러자 삼촌은 “수영아, 그 돈 안 갚아도 된다. 신경 쓰지 마라”하시며 만두나 한번 만들어 달라 하셨다. 언젠가 삼촌 생일 때 내가 만들어 보낸 만두가 맛있었다고 하시며 부탁한 것이다. 나는 삼촌과 전화를 끊고 또 울었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을까. 요즘 형제간에도 금전 문제로 싸우는 세상이다. 물질이 결코 피보다 진할 수 없다는 우리 삼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삼촌, 만두피 얇게 만들어 보낼 게 기다려!” 벚꽃이 바람에 흩날린다. 나도 덩달아 흩날린다.
광명시 철산동에서 조카 박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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