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영 기자의 베이스볼 스펙트럼 - 전·현직 프로야구 감독들의 다양한 ‘등번호 철학’
김인식, 화투서 합이 9 되는 ‘81’
김용희, 팔팔한 기운 담은 ‘88’
홍원기, 코치때 단 후 줄곧 ‘78’
염경엽, 승승장구 함께 한 ‘85’
서튼, 1970년생 의미하는 ‘70’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감독들은 특정 등번호를 고집했다. SK(현 SSG)와 한화 등을 이끈 ‘야신’ 김성근 전 감독은 38번을 사용했다. 38번은 화투에서 ‘광땡’을 뜻하는 번호. 김 전 감독은 길한 숫자에 팬들이 기억하기도 쉬워서 38번을 선택했다. 김인식 전 야구대표팀 감독도 화투의 숫자를 택했다. 화투에선 숫자의 합이 ‘9’가 돼야 좋은 수. 김 전 감독은 OB(현 두산)와 한화 등에서 81번을 등에 새겼다. 김경문 전 NC 감독은 74번을 고수했다. 행운의 7과 불길한 4를 섞은 것. 인생과 야구에는 길과 흉이 공존한다는 자신의 인생 철학을 담은 것이다. 김용희 전 SK 감독은 “팔팔하다”는 어감 때문에 88번을, 김시진 전 롯데 감독은 “선수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는 이유에서 79를 달았다.
2023 신한은행 쏠(SOL) KBO리그를 소화 중인 현역 감독들의 등번호에도 저마다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올해 두산의 지휘봉을 잡은 이승엽 감독의 등번호는 77번. ‘국민타자’로 불린 이 감독은 현역 시절 사용한 36번이 자신의 이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36번 대신 77번을 선택한 것은 행운의 ‘7’을 두 개 붙여 “두 배의 행운을 받고 싶다”는 의미였다. 올해 삼성 사령탑으로 오른 박진만 감독은 70번을 쓴다. 70번은 박 감독의 프로 첫 스승이자 롤모델이었던 ‘원조 국민 유격수’ 김재박 전 현대 감독이 사용했던 번호다.
처음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썼던 번호가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홍원기 키움 감독은 처음 코치가 된 2009년부터 줄곧 78번을 쓰고 있다. 이후 번호를 바꿀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홍 감독은 “코치로 처음 부임했을 때 가졌던 그 마음가짐을 잃지 말자는 다짐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김원형 SSG 감독의 70번, 김종국 KIA 감독의 74번, 강인권 NC 감독의 82번도 같은 경우. 김원형 감독은 “사실 134를 쓰고 싶었다. 선수와 코치 시절 사용한 등번호(48·16·70번)를 더했더니 134가 나오더라. 134는 내가 현역 시절 올린 승수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 자릿수 등 번호는 1군에서 잘 사용하지 않아 70번을 쓰는 중”이라고 말했다.
등번호를 바꿔 승승장구한 사례도 있다. 염경엽 LG 감독은 지도자 변신 후 75번을 달았는데, LG 코치 시절엔 팀 성적이 별로였다. 이후 2012년 넥센(현 키움) 사령탑으로 이동하면서 85번을 선택했고, 이후 팀을 4년 연속 가을 야구 무대에 올려놓아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염 감독에게 85번은 행운의 숫자. 핸드폰 등 모든 소지품엔 85번이 크게 새겨져 있다. 이강철 KT 감독은 2019년 첫 사령탑 취임 후 71번을 선택했다. 공교롭게도 그해 KT가 71승(2무 71패)을 챙겨 구단 사상 첫 5할 승률에 성공했다. 이후부터 이 감독에게 71번은 부적과 같은 번호가 됐고, 이 감독은 2021년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외국인 사령탑의 등번호도 눈길을 끈다. 프로야구 코치진은 70번대 이후의 번호를 가져가는 게 일반적. 하지만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이례적으로 3번을 쓴다. 수베로 감독은 현역 시절 13번을 달고 유격수로 활약했다. 수베로 감독은 지도자로 전업 후 13번을 달고자 했지만, 고국인 베네수엘라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선 주전 유격수들이 13번을 사용해 앞자리 숫자를 뗀 3번을 선택해 사용하고 있다. 1970년생인 래리 서튼 롯데 감독은 자신의 생년을 의미하는 70번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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