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랑합니다 - 이영균 前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
이영균 선배님은 원래 산이 좋아 국내외 많은 산을 오르내리던 중 같은 산악회 후배가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자랑하자 ‘나도 한 번 도전해 볼까?’하는 마음으로 2003년 3월 달리기를 시작했다. 열심히 달리면 건강에 좋을 것 같아 여기저기 마라톤대회를 찾아다닐 때 비슷한 시기에 마라톤을 시작한 나와 우연이 아닌 필연적으로 몽골 마라톤에서 첫 만남이 이뤄졌다.
선배님은 몽골에서는 세 가지를 꼭 해봐야 하는데, 우선 말을 타봐야 하고, 밤하늘의 은하수를 봐야 하고, 드넓은 초원을 봐야 한다고 했다. 밤잠을 설쳐가며 꼭두새벽에 바로 머리 위로 쏟아지듯 펼쳐지는 은하수를 볼 수 있도록 알려주신 분이다. 몽골 하늘에서 본 은하수를 비롯해 드넓은 초원과 말타기는 지금도 그리워하는 것처럼 선배님과는 아주 질긴 인연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ROTC 마라톤클럽이 격년제로 진행하는 ‘휴전선 155마일 DMZ 이어달리기’까지 함께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라톤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시각장애인과 동반주를 하면서 자신의 두 눈으로 보면서 달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남들처럼 100㎞ 울트라 마라톤에도 도전했는데 밤새 달리다가 여명을 맞이하면서 농부가 괭이 들고 집을 나서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고 한다.
함께 달리기하면서 또 다른 의리의 진면목을 보게 된 것은 선배님이 동국대 산악부 선후배로 박영석 대장을 만났을 때였다. 박 대장이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14좌 등정 후 에베레스트(8848m)를 티베트 쪽에서 올라 네팔로 넘어오는 횡단등반을 시도할 때 응원 메시지에서 특별한 약속을 했다. 박 대장이 수직으로 에베레스트 산 8848m를 오르면 선배님은 수평 마라톤으로 8848㎞를 달리겠노라고. 그러자 박 대장이 ‘그날에는 직접 등에 업고 마라톤 골인 라인을 밟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고 박 대장은 2011년 10월 18일 안나푸르나 신루트 개척등반 시 눈사태에 휩쓸려 영원히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끼던 후배를 잃은 슬픔을 억누르고 선배님은 2020년 7월 19일 마라톤(42.195㎞) 210회를 완주하며 수평으로의 8848㎞ 달리기 약속을 지켰다. 아쉽게도 박 대장의 등에 업히지는 못했지만 미망인을 비롯해 수많은 산악인이 마라톤 대회장에 와서 축하와 함께 박 대장을 다 같이 추모했던 일은 잊을 수가 없다.
최근에는 손주들과 스포츠 클라이밍을 즐기면서도 슬픔에 눈시울을 적신다. 평소 아이들과 캠핑을 몹시 즐겼던 큰아들의 2021년 12월 예상치 못한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손주들을 위해 할아버지로서 아빠를 대신해 매주 토요일마다 상암동 박영석 기념관(서울시 산악문화체험센터) 실내암장에서 기초교육을 받고 함께 등반하며 손주들을 돌보고 있다.
그렇게 손주들과는 2022년 여름에는 울산암에 올랐고, 2023년 2월에는 태백산을 올랐는데 손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만간 한라산과 지리산을 오를 계획까지 세웠단다. 앞으로 해야 할 버킷리스트로 얼마 남지 않은 80세가 되면 아내와 둘째 아들, 그리고 손주들과 함께 인수봉을 등반할 것이라 한다. 환갑기념으로 아내는 물론 죽은 아들과도 함께 도봉산 우이암을 등반했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선배님은 80을 바라보면서도 꾸준히 등산과 풀코스마라톤에 도전하고, 손주 돌봄과 변함없는 의리를 보여줘 롤모델로서 자랑하고 싶다.
이랜드재단 정희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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