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전자투표기 제작사에 1兆 배상
언론의 자유 아닌 ‘실제적 악의’
방송 영업과 ‘묻지 마 지지’ 탓

피해자의 지속적 통보가 주효
법관 의지와 언론의 자기 감시
극단세력 내치는 정치도 필요


최근 가짜뉴스에 경종을 울리는 소식을 접했다. 미국의 보수 성향 방송사 폭스뉴스가,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스’라는 전자투표 기기 및 서비스 회사가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해 7억8750만 달러(약 1조393억 원)의 배상금을 주기로 합의하고 한발 물러섰다는 깜짝 뉴스였다. 폭스뉴스는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도미니언이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조작해 부정투표를 가능하게 했으며, 이 회사가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우고 차베스와 가까운 외국 기업 소유라는 등 허위 정보를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대선 직후부터 이듬해 1월까지 방송했다.

도미니언이 2021년 3월 소송을 제기한 후 비로소 재판 절차가 시작되려던 지난 4월 18일, 폭스뉴스는 도미니언에 대한 자사의 주장에 허위가 있다는 법원의 판단을 인정하고 합의와 배상의 방식을 택했다. 이 사건을 맡았던 델라웨어주 고등법원의 에릭 데이비스 판사는 사전심리 과정에서, 도미니언의 선거 조작 관여에 관한 폭스뉴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따라서 폭스뉴스가 이러한 허위성을 ‘이미 알고’도 그대로 방송했는지 여부, 즉 ‘실제적 악의(惡意)’를 지녔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렇다면 폭스뉴스는 왜 자사의 뉴스가 허위임을 알면서도 도미니언과 관련된 가짜뉴스를 계속 방송할 수 있었을까? 물론 시청률을 높여 수익성을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컸던 듯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배경에는, 극도로 양극화된 유권자의 분열 구조와 조 바이든 측에 불리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층이 있었다. 진영 논리에 사로잡힌 시청자들에겐 우리 편과 반대편에 대한 감정적 호불호가 지배하는 정서적 양극화 경향이 강해서, 가짜뉴스라 하더라도 상대방에 불리한 것이라면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이 심하다. 여기에다, 당시 대통령이던 트럼프가 부정선거론으로 지지자를 선동하던 중이어서 폭스뉴스의 가짜뉴스는 시청자들에게 의심 없이 그대로 흡수될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폭스뉴스 사건은, 가짜뉴스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를 퇴치하려는 관련인의 집념과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 도미니언은 자신의 평판이 걸린 상황을 두고 폭스뉴스의 왜곡된 뉴스를 방관할 수는 없었다. 그는 소송에 앞서 폭스뉴스의 방송이 이미 그 내용의 허위성을 알면서도 보도한 ‘실제적 악의’에 해당하므로 수정헌법 제1조가 보호하는 언론의 자유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이와 함께 폭스뉴스의 보도가 거짓임을 그 경영진뿐만 아니라, 소속 기자들과 뉴스 제작진에게도 계속 알리면서 보도의 철회를 요구했다. 결국, 폭스뉴스와 대결에서의 승리는 진실을 밝히려는 도미니언 측의 꾸준한 노력과 전략이 뒷받침돼 가능했다.

또한, 폭스뉴스 사건에서 진실이 가려지는 과정에는 이 사건을 담당한 데이비스 판사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데이비스 판사는 사전심리 단계에서 폭스뉴스가 법정에서 진실을 은폐하고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정정하기 위해 특별한 조치를 강구하는 한편, 필요할 경우 도미니언이 요청하는 폭스뉴스 측의 증인을 소환하겠다는 식으로 폭스뉴스를 압박해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기여했다.

가짜뉴스는 민주주의 규범이 그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양극화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불리한 내용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하려는 특정 집단의 태도와, 이 집단을 타깃으로 삼아 존재감을 유지하려는 일부 언론 매체의 합작품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적 정보에 대해 건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훈련된 시민의식 △허위 정보를 가려내려는 언론기관의 부단한 자기 정화 및 감시 노력 △오직 사실과 법률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려는 법관의 의지 △극단적 세력을 거부하고 장기적 안목으로 국정에 임하려는 정치인들의 각오가 가짜뉴스의 폐해를 줄이는 데 필요한 요소다. 정파적 양극화의 견고한 영향력 등 가짜뉴스 확산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갖춰진 오늘날, 가짜뉴스 퇴치라는 과제는 일차적으로 모든 행위자의 결단에 의존해야 함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장기적으로 그 해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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