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합니다 - 현명하게 살아가는 아들·며느리에게
남편 생일을 맞아 아들 내외가 우리 부부를 집으로 초대했다. 아들 내외는 몇 해 전 직장 때문에 광주로 내려갔다. 남도를 돌아볼 겸 주말을 이용해 내려오라는 거였다. 아들 내외 집에 뭐라도 가져가고 싶은 마음에 필요한 것을 물어보니 수화기 너머 “반찬이요”라는 며느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며느리는 내가 국적도 없는 음식을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줘도 무엇이든 맛있게 먹는다. 솜씨 좋은 친정 할머니와 친정엄마 음식을 수시로 공수해 먹을 텐데도 서슴없이 반찬을 가져와 달라는 며느리의 말이 밉지 않았다. 겨우 1박의 여정이지만 커다란 가방에 짐을 꾸렸다.
멀리 살아 자주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결혼 5년 차인 며느리는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아들 내외가 집에 온다는 연락이 오면 청소와 음식 장만을 동시에 해내느라 바빠진다. 평상시에 대충 청소하던 화장실도 반짝반짝 광이 나게 닦고, 미루던 냉장고 청소는 물론 주방 수납장에 묻은 손자국이며 조리대 구석에 튄 양념 자국도 깔끔하게 청소한다. 그야말로 며느님 맞이 청소를 대대적으로 하는 셈이다. 그러나 청소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푸념이 아닌 흥겨움으로 기꺼이 한다. “아마 며느리는 이런 대변신을 모르고 나를 무척이나 깔끔한 시어머니로 생각할 거야.”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그들도 역시 나와 같았던 모양이었다. 편하게 맞이해도 될 텐데 아직은 며느리가 손님같이 어려운 건 나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시대가 바뀌긴 했다. 시댁에 바리바리 싸 들고 가서는 내내 부엌일만 하다 용돈까지 드리고 오던 시대는 지나갔다. 며느리가 시댁 식구들 눈치 보던 시대는 지나고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 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시대를 잘 타고난 며느리가 부럽기도 하지만 조금이나마 베풀 수 있는 시어머니 위치에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내외의 집은 너절한 짐 따위는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며칠 무척 바쁜 시간을 보냈겠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아들 내외는 남편의 생일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주방을 정리해 주려는데 손도 못 대게 했다. 늘 해 먹이던 것에서 상을 받는 위치 전환이 어색했지만, 가만히 앉아 아이들의 정성이 가득한 생일 만찬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미역국, 수육, 전이며 샐러드 등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음식은 조금도 손색없이 맛있었다. 설거지며 뒷정리와 후식 준비는 아들이 쉴 새 없이 움직여 준비하고 며느리는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싫지 않았다. 부지런히 움직여주는 아들의 손길이 감사했다. 젊은 아들 내외가 합리적으로 집안일을 분담해 가정을 잘 꾸려가는 것 같아 마음이 흡족했다.
내 아들이 날 닮아 덤벙거리는 것을 아는지라 야무진 며느리가 얼마나 살뜰히 챙기며 살고 있는지 보지 않아도 눈에 훤하다. 부부로 살아가며 갈등이 없을 수 없고 일일이 말하지 못하는 힘든 일 또한 많을 것이다. 좌충우돌하던 내 젊은 날, 무엇이든 서둘고 힘겹던 그 시절을 지금 아이들이 살고 있다. 옆으로 눈도 돌리지 못하고 앞만 보며 살아온 나의 철없던 시절과 달리 아이들은 너무 잘살고 있는 것 같아 감사했다. 내가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이듯 아들 내외도 좋은 것만 주고 싶어 한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많은 걸 줄 수 없지만 작은 것이라도 베풀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고 받기만 해야 할 때가 언젠가는 오겠지만, 지금처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
조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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