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 돌핀 에어버스, 1968.
그림1 돌핀 에어버스, 1968.


■ 지식카페 - (26) 루이지 콜라니

작품마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아… 공기의 빠른 흐름 고려한 공학미에 조각처럼 아름다운 조형미
귀 구조 응용한 스피커·인체공학적 소파·우주선 닮은 트럭 등 시대 앞서간 감각 돋보여


디자이너는 참 희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몸은 현재에 있지만 눈과 마음은 항상 다가올 시간 속에 있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을 보면 현실에서 30㎝ 정도는 공중에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런 디자이너들 중에서도 루이지 콜라니는 한 3m 정도는 공중부양해서 평생을 살아갔던 사람처럼 보인다. 그의 디자인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림1 돌핀 에어버스, 1968

돌고래를 닮은 거대한 항공기의 디자인을 보면 아직도 그가 살았던 미래는 오지 않은 것 같다. 항공기라서 유선형으로 디자인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이 비행기의 몸체를 흐르는 곡면은 여느 비행기의 곡면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은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형태다. 이름처럼 돌고래 몸체 같은 묵직한 유선형의 몸체에 날렵하게 생긴 긴 날개가 붙어있는 모습은 대단한 대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일반 비행기의 두 배가 넘는 규모로 디자인된 것 같은데, 날렵한 날개는 그런 거대한 부피와 무게를 독수리의 날개처럼 가볍게 공기 위로 띄워 올릴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몸통에서 유연하게 이어지는, 돌고래의 지느러미를 연상케 하는 꼬리 날개의 부드러움은 묵직한 몸통의 무게를 공기 중에 모두 분산시킬 것처럼 보인다. 모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항공기를 디자이너가 상상력의 나래를 한껏 펼친 것으로 보기 쉽지만, 콜라니의 이력을 알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디자인만 보면 콜라니는 조각을 열심히 공부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프랑스의 소르본대에서 항공역학을 전공했다. 디자인이 조각품처럼 아름답고 창조적으로 보이지만 그의 디자인에 담긴 의도는 대단히 공학적이다. 실제로 콜라니의 강의를 직접 들어보면 디자이너보다도 엔지니어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무튼 그는 평생 동안 자동차나 비행기, 배 등 사람이 타고 다니는 것을 주로 디자인했던 특이한 이력의 디자이너였다.

그림2 유타(UTAH)-1 초고속 바이크, 1989.
그림2 유타(UTAH)-1 초고속 바이크, 1989.


◇그림2 유타(UTAH)-1 초고속 바이크, 1989

콜라니는 미국 유타주의 넓은 사막에서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바이크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평생 자동차나 비행기 등을 디자인한 그는 공기역학에 일가견이 있다 보니 속도를 최대화할 수 있는 형태들을 여럿 디자인했다. 가만히 있어도 빠르게 달리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바이크의 모양을 보면 콜라니가 공기역학에 정통하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공기의 빠른 흐름을 위해 만들어진 바이크의 몸체이지만 조각처럼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콜라니는 형태 감각이 뛰어난 디자이너로 종종 오해(?)받는다. 본인은 공학적인 디자이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타일이 뛰어난 디자이너로 대접받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조형 감각은 정말 뛰어나다.

그림3 경주용 오토바이 프로토 타입, 1973.
그림3 경주용 오토바이 프로토 타입, 1973.


◇그림3 경주용 오토바이 프로토 타입, 1973

오토바이와 사람의 몸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어서 공기역학적인 형상을 한 경주용 오토바이의 프로토 타입도 조각처럼 아름답다. 공기를 앞바퀴에서부터 유도해 머리와 등 위로 가볍게 보내고, 뒷바퀴 바로 위에 있는 공기 흡입구로 흐르게 만드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곡면은 단지 공기를 빠르게 지나게 할 뿐 아니라 아름답게 춤추게 하는 듯하다. 혼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공기의 아름다운 흐름을 만드는 형태라 더 의미가 큰 것 같다.

그림4 로젠탈을 위한 찻주전자 드롭(Drop), 1971.
그림4 로젠탈을 위한 찻주전자 드롭(Drop), 1971.


◇그림4 로젠탈을 위한 찻주전자 드롭(Drop), 1971

콜라니는 타고 다니는 물체 말고도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물건들도 많이 디자인했다. 특히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서 많은 디자인을 남겼는데, 로젠탈을 위해 디자인한 찻주전자 드롭은 많이 알려져 있다. 공기를 뚫고 달리는 물건은 아니지만 이 찻주전자도 곡면으로만 디자인돼 있는데, 공기를 가르는 곡면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우아하게 흐르는 곡면이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이런 소품 디자인에서는 공학적인 요구가 적다. 그래서 이런 소품 디자인에서는 콜라니의 예술적인 곡면 표현이 두드러진다.

그림5 젠 티세트, 1973.
그림5 젠 티세트, 1973.


◇그림5 젠 티세트, 1973

일본의 다도에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찻주전자와 잔의 디자인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 그것도 동아시아의 과거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특이하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역시 콜라니스러운 구석이 눈에 띈다. 뼈의 관절 같은 구조를 주전자에 적용한 것이나, 주전자의 손잡이와 물이 나오는 주구를 하나로 만든 구조, 앞뒤로 기울여서 차를 따라 마시게 한 것들은 역시 엔니지어로서의 콜라니를 잘 느끼게 해준다. 그렇지만 검은색과 도자기의 재질은 고전적인 이미지를 잔뜩 머금고 있다. 그러면서도 잔과 주전자의 몸체를 전부 부드러운 유기적인 곡면으로 디자인해서 콜라니의 손길을 잘 느낄 수 있다.

그림6 3D 스피커 박스, 1980.
그림6 3D 스피커 박스, 1980.


◇그림6 3D 스피커 박스, 1980

이상한 모양의 조각품 같은 이 스피커 박스는 콜라니의 엔지니어링적인 아이디어가 잘 적용된 특이한 디자인이다. 스피커의 모양은 사람의 귀 구조를 응용한 것인데, 스피커와 사람의 귀의 결합이 아주 은유적이고 의미가 있다. 이런 디자인을 보면 콜라니가 문학적인 성향도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곡면에 유기적인 조형미와 귀의 기능적 구조를 응용한 공학적 접근, 귀와 스피커의 은유적 표현 등 하나의 디자인에 많은 가치를 담아내는 콜라니의 디자인 능력이 고도로 표현된 스피커이다.

그림7 쿠쉬 소파, 1969.
그림7 쿠쉬 소파, 1969.


◇그림7 쿠쉬 소파, 1969

콜라니가 디자인한 쿠쉬 소파는 공기역학이 아니라 인체공학이 잘 적용된 디자인이다. 공기역학과 인체공학은 전혀 다른 공학적 분야인데, 둘 다 유기적인 곡면으로 표현된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하다. 그리고 둘 다 공학적인 영역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콜라니는 제품이나 가구 디자인에서는 유려한 곡면적 디자인을 인체공학적 차원에서 많이 다루면서 많은 걸작을 만들었다. 쿠쉬 소파는 그런 그의 가구 중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디자인이다. 형태를 보면 아주 역동적이어서 마치 공기역학적인 형태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 의자는 사람이 앉았을 때 가장 편하도록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됐다. 몸을 뒤로 기대 거의 누운 자세로 앉게끔 디자인돼 있는데,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자의 형태가 매우 조각적이다. 의자로 사용하지 않을 때는 실내를 장식하는 조각품으로서의 역할도 해 훨씬 더 기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8 트럭, 2002.
그림8 트럭, 2002.


◇그림8 트럭, 2002

콜라니가 꾸준히 디자인해온 것 중 하나가 트럭이다. 트럭이라고 하면 공기역학이나 조형적 아름다움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은데, 그가 새로운 버전으로 디자인한 트럭은 우주로 날아갈 것같이 생겼다. 트럭의 앞부분이 요란스러워 보이는 것은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형태를 세로로 쪼개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 공학적 이유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거의 우주선에 육박하는 첨단의 느낌과 함께 조각 같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트럭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 직접 확인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디자인이지 않을까 싶다. 트럭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디자인을 선보였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70세를 넘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 디자이너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고, 감각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콜라니는 1928년에 독일에서 출생했고, 10대 후반부터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대학에서 공기역학을 배웠으며, 그 이후로 2019년에 사망할 때까지 현역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시기를 따져보면 그는 거의 70년 이상 디자인 작업을 했던 진정 위대한 디자이너였다. 그가 남겨놓은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들은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줬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나타나고 있는 유기적인 디자인의 뿌리가 됐다.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루이지 콜라니Luigi Colani(1928∼2019)

- 1928년 : 독일 베를린에서 출생
- 1944년 :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에서 회화와 조각 공부
- 1948년 : 파리 소르본대에서 항공역학 학사
- 1950년대 : 피아트, 알파로메오, 란치아, 폭스바겐, BMW 디자인
- 1950년대 중반 : 프랑스 자동차 회사 시트로엥과 작업
- 1963년 :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모노코크 스포츠카 디자인
- 1965년 : 프리츠한센의 의자, 알파로메오 자동차 디자인
- 1970년 : 독일 자센베르크 근처 하코텐 성에 스튜디오 설립
- 1970년대 초 : 로젠탈을 위해 Drop 차 세트 디자인
- 1982년 : 일본 이주, 캐논 카메라 개발
- 1984년 : 대형 셸 디자인
- 1986년 : 캐논 T90 카메라 디자인
- 1988년 : 브레멘 예술대학 교수
- 1997년 : Schimmel Pianos의 피아노 Pegasus 디자인
- 2003년 : 스피드스터 샤크 자동차 디자인
- 2019년 :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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