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치우다’에서 유래한 후식 디저트는 현대 요리의 본식보다 중요한 코스로 자리잡았다. 게티이미지
프랑스어 ‘치우다’에서 유래한 후식 디저트는 현대 요리의 본식보다 중요한 코스로 자리잡았다. 게티이미지


‘공부란 무엇인가’란 책으로 유명한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김영민 교수는 술을 마시지 않는 대신 디저트에 영혼을 바친다.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달콤한 후식에 탐닉하는지는 책 이곳저곳에 스스로 남긴 어록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그런데 디저트에 열광하는 사람은 비단 김 교수만이 아니다. 19세기 질소비료 발명이 이룩한 녹색 혁명의 식량 증산은 지구 상에서 절대 기아를 거의 몰아내 버렸다. 배고픔의 기억은 까마득히 잊혀졌다. 오히려 과잉 영양분 섭취와 몸매 조절 다이어트가 현대인들의 주 관심사로 정착했다. 맛있고 건강하게 먹되, 되도록 적은 양을 찔끔 먹으려는 풍조는 본식보다 후식에 더 집중하는 주객전도의 식문화를 낳았다. 바야흐로 ‘디저트 전성시대’이다.

문헌상 디저트라는 용어는 14세기쯤 프랑스에서 처음 발견된다. 프랑스어 ‘disservir(식탁을 치우다)’에서 유래한 단어라고 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이 단어가 실린 것은 1600년인데, ‘정찬이나 저녁 식사 후에 나오는, 과일·사탕 등으로 이루어진 코스’라고 정의돼 있다. 하지만 디저트를 먹으려고 식탁을 치우는 일은 없었다. 유럽 국가들도 과거에는 코스별 요리가 시간순으로 나오지 않고, 한식처럼 한꺼번에 산더미처럼 상에 차리는 방식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고기와 생선 사이에 달콤한 음식이 무작위로 뒤섞여 있었던 것이다.

단맛은 앞서 공부했듯, 뇌가 좋아하는 영양소인 포도당 내지 글루코스의 달콤한 유혹이다. 몸을 작동시키는 기본 연료이기 때문에 인간은 아기 때부터 본능적으로 단맛에 끌리게 설계돼 있다. 가장 오래되고 흔한 디저트는 과일일 것이다. 생과일이나 건포도·무화과 같은 말린 과일, 꿀과 설탕 시럽에 넣고 졸인 과일 등은 식후 마무리로, 간식으로, 축하용 요리로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 어디에서든 인기 품목이다.

하지만 과일을 넣은 디저트의 맛을 끌어올리는 설탕과 향신료는 18세기 이전까지 매우 비싼 재료였기에 상류층만이 즐길 수 있었다. 서서히 유럽 전역에서 왕정이 무너지고 귀족의 주방을 담당하던 셰프들은 길거리로 나왔다. 사탕수수 농장에 노예가 투입되면서 설탕의 가격도 싸졌다. 베이킹 문화가 확산되고 페이스트리, 케이크, 커스터드, 아이스크림 같은 새 디저트도 등장했다. ‘디저트의 민주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디저트의 과학을 공부하려면 꼭 알아야 할 재료의 구조 3가지가 있다. 바로 무스, 에멀션, 젤이다. 아니, 주방에서 화장품을 만들려 하느냐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3종의 구조는 말랑말랑하고, 바삭바삭하고, 날아갈 듯 가벼운 식감을 주는 디저트 요리의 비밀이다. 분자 차원에서 설명하면 무스는 기포(氣泡)가 액체 속에 골고루 분포된 상태를 말한다. 먹을 순 없지만 헤어 무스를 상상하면 된다. 에멀션은 지방질의 작은 액체 방울이 다른 액체 속에 분산돼 있는 물질이다. 쉽게 말해 물과 기름이 섞여있는 상태다. 유분과 수분이 적절하게 배합된 화장용 에멀션을 생각해보라. 대표적인 식용 에멀션은 마요네즈이다. 달걀 노른자의 레시틴이 계면활성제 역할을 하면서 첨가한 지방질의 방물이 액체와 공존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젤은 액체가 고체 속에 배합돼 있는 상태의 그물 구조이다. 묵이나 한천, 과일 잼을 떠올리면 된다.

무스는 우유나 크림을 저어 거품을 만들면, 즉 휘핑하면 기포가 그 안에 갇히면서 부풀어 오른 재료가 된다. 거품의 크기가 비슷하고 가능한 작을수록 무스의 안정성이 더 유지된다. 특히 우유, 버터, 마가린, 초콜릿 스프레드처럼 발라 먹을 수 있는 에멀션은 그 안에 공기 방울만 가둘 수 있으면 매우 부드러운 감촉의 무스로 변한다.

무스를 만들 때 기체보다 훨씬 밀도가 높은 액체 속에 기체를 골고루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은 계면활성제 성분 덕분이다. 계면활성제는 거품 표면의 정전기의 힘을 유지해 거품들이 서로 밀어냄으로써 상호 충돌과 합체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또 액체가 약간의 점성을 띨수록 무스가 더 잘 만들어진다. 가두는 힘이 커지기 때문이다.

초콜릿 무스는 전통적으로 달걀 노른자와 흰자를 힘차게 저어 거품을 낸 다음 중탕한 초콜릿을 섞는 방법으로 만든다. 하지만 거품을 집어넣는 U자형 튜브, 즉 사이펀을 이용하면 손쉽게 무스를 형성시킬 수 있다. 다양한 재료의 지방질을 액체 속에 녹여서 에멀션 상태를 만든 다음, 여기에 공기 거품만 집어넣으면 무스로 변신하는 것이다. 무스는 먹을 때 속의 기포가 터지면서 톡톡 튀는 식감을 제공하고 칼로리도 고체 재료보다 더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에멀션은 기체를 넣으면 무스, 굳히는 젤화제를 넣으면 젤이 된다. 고체와 액체, 기체 사이의 분자 구조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에멀션은 수분과 기름이 합체된 성분이기 때문에 불안정한 상태다. 내부 기름 방울이 합체하거나 응집하는 성질이 있다. 작은 지방질 입자가 표면으로 떠오르는 현상은 크리밍이라고 한다. 크림을 형성한다는 뜻이다. 우유로 휘핑 크림을 만들 때 이 성질을 이용한다. 무거운 입자는 아래로 가라앉는 침강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젤은 고체 속에 액체가 갇힌 부드러운 물질이다. 잼,묵,우뭇가사리 등이 대표적인 예다. 게티이미지
젤은 고체 속에 액체가 갇힌 부드러운 물질이다. 잼,묵,우뭇가사리 등이 대표적인 예다. 게티이미지


마지막으로 젤은 화학적 젤과 물리적 젤이 있다. 끈적끈적한 액체 파이 재료를 오븐에 넣고 가열해보자. 내부의 단백질 분자가 넓게 퍼지며 고체 그물을 형성한다. 이 그물이 딱딱하게 굳으며 재료의 수분을 가두는데 이들 입자의 결합은 이전 상태로 돌릴 수 없다. 화학적 젤과 달리, 과일 잼은 식히면 고체 젤로 딱딱해졌다가 열을 가하면 다시 액체로 돌아간다. 이를 물리적 젤이라고 한다. 입자들 사이의 결합이 강해졌다가 약해졌다가 변하는 것이다. 젤에는 고체 속에 액체 대신 공기가 들어간 형태도 있다. 바게트 빵을 예로 들자. 밀가루가 익으며 수분이 다 빠지면서 속에 기포가 형성된 에어로젤이다. 그래서 탁탁 터지며 바삭한 식감을 주는 것이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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