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분 대기하다 첫 연주… 북치고 망치질하고 타자치기까지
■ 무대위 궂은일 타악기 주자
2~3개 악기 다루는 건 기본
대기시간 길어 집중 어려워
바람·천둥소리 표현 위해
악기들 직접 제작하기도
때론 유리깨기 위험도 감수
“음식 양념같은 역할에 보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은 알프스의 압도적 위용이 음악적으로 세밀하게 묘사된 작품이다. 공연장에서 이 곡을 연주할 때 눈길을 끄는 건 알프스에 휘몰아치는 폭풍우와 번쩍이는 천둥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쓰이는 특이한 악기들. ‘신기한’ 악기들을 때리고, 두드리며, 돌리는 건 온전히 타악기 연주자들의 몫이다.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경기 필하모닉에서 타악기를 담당하는 김철우(43) 상임단원으로부터 알프스보다 험난한 타악기 주자들의 ‘고생담’을 들었다. 경기 필하모닉은 27일(경기아트센터), 28일(롯데콘서트홀) 양일간 최수열 지휘자와 함께 알프스 교향곡을 들려준다.
알프스 교향곡엔 바람 소리를 내는 ‘윈드머신’과 천둥소리를 내는 ‘선더시트’(천둥판)가 필요하다. 말은 그럴듯 하지만 시중에 팔지도 않는 악기들이다. 타악기 연주자가 직접 재료를 찾아 발품을 팔고, 두드려보며 소리를 고민해야 하는 순도 100% 자체 제작물이다. 이번 공연에 쓰이는 윈드머신과 선더시트 역시 김 단원과 경기필 악기계의 합작품이다. 김 단원은 “나무통은 가까운 목공소에서 구하고, 쇠파이프는 수원 소재의 철물점에서 구했다”며 “적당한 재료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인사동을 돌아다닌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 악기들을 연주하는 방법은 노동에 가깝다. 선더시트는 알루미늄판을 온몸으로 흔들거나 두드리고, 윈드머신은 나무통에 덮인 천을 열심히 돌려야 한다. 김 단원은 “멋있게 연주하려는 마음은 내려놓고 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알프스 교향곡에서는 들판을 거니는 소들을 묘사하기 위해 카우벨도 쓰인다. 김 단원은 “내가 ‘소’라고 무대 위에서 상상한다”며 “박자를 세면 정박으로 치게 되기 때문에 이미지를 상상하는 편이 낫다”고 노하우를 공개했다.
공연 중 대기 시간이 길다는 점도 타악기 주자들의 고충이다. 알프스 교향곡의 경우 윈드머신은 35분쯤 후에야 등장한다. 김 단원은 “연습할 때는 딴생각을 하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며 “공연에선 큐 사인을 전후로 최대한 집중한다”고 말했다.
남들이 고상하게 자기 악기만을 연주할 때 타악기 주자들은 2∼3개 악기를 오가며 연주해야 한다. 이번 알프스 교향곡에서 윈드머신을 연주하는 사람은 트라이앵글과 스네어 드럼까지 담당하고, 선더시트 담당자는 카우벨도 연주하는 식이다. 오케스트라 타악기 수석이 담당하는 팀파니를 제외하곤 타악기 주자들은 작품마다 역할을 배분한다. 김 단원은 말러 교향곡 6번에선 해머를 들었고, 리로이 앤더슨의 ‘타이프라이터’에선 실제 타이프라이터를 쳐야 했다.
김 단원은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유리를 깨야 했던 순간을 가장 고생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그는 “말 그대로 무대 위에서 통유리를 깨야 했다. 고글 쓰고 장갑 끼면서 내가 이런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나 싶었다”고 말했다. 고생을 감수하게끔 하는 타악기의 매력이 궁금해졌다. “음식으로 따지면 양념 같아요. 없어도 먹을 순 있는데, 있으면 맛이 확 살죠.”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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