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팝 아이돌 상표권 쟁탈전
아이돌 “계약 끝나도 우리 이름”
기획사 “투자한 회사에 상표권”
H.O.T. 법적 분쟁 5년만에 승리
K-팝시장 커지며 멤버역량 중시
기획사의 상표권 독점 지양 추세
전속계약 끝난 갓세븐·인피니트
무상 양도 받아 모범 사례 꼽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고전 ‘홍길동전’의 한 대목이 아니다. 2023년 현재, K-팝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K-팝 시장의 산업화와 더불어 유명 아이돌 그룹들이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주장하기 위한 상표권 쟁탈전이 거세지는 추세다. 인지도의 실질적 주체인 스타들의 손을 들어주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장기간에 걸친 법정 공방 속 활동에 제동이 걸리며 이미지에 생채기를 입기도 한다.
1세대 아이돌 그룹인 H.O.T.는 최근 5년 넘게 지속된 상표권 소송에서 승리했다. 지난 23일 대법원 2부는 김경욱 전 SM엔터테인먼트 대표가 H.O.T. 재결합 콘서트를 주관한 공연기획사를 상대로 낸 상표권 침해금지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H.O.T.의 소속사 대표를 지낸 김 씨는 그 상표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해 왔다. 2018년 H.O.T.가 재결합 콘서트를 열려 하자 로열티 지급을 요구했고, 결국 이 콘서트에서는 ‘H.O.T.’라는 이름 대신 풀네임인 ‘High-five of Teenager’로 열렸다. 그러자 김 씨는 동일·유사한 표장을 사용해 저작권과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다. 앞서 H.O.T.와 동시대에 데뷔한 그룹 신화 역시 2015년, 12년의 싸움 끝에 상표권을 양도받아 ‘신화’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이처럼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상표권 분쟁을 겪은 후 가요기획사들은 그 권리를 선점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재계약이 불발된 후 그룹명을 개별적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그룹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멤버들의 역량이 중시되면서 소속사가 일방적으로 상표권을 등록해 권리를 독점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걸그룹 티아라의 소속사는 2018년 상표권 출원을 거절당했다. 당시 특허청은 “널리 알려진 저명한 연예인 그룹 명칭을 소속사에서 출원한 경우에 해당하기에, 상표법 제34조 1항 제6호에 해당하여 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룹 NRG 역시 상표권 등록을 시도했으나 소속사와 멤버 간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불발됐고, 걸그룹 여자친구의 경우, 하이브 산하 쏘스뮤직이 특허청에 ‘G-Friends’라는 이름에 대한 상표등록출원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했다.
법무법인 존재 노종언 변호사는 “상표권은 특허청에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브랜드임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지, 부동산 등기처럼 그 권리가 누군가에게 완전히 귀속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기 때문에 권리관계를 두고 법적 분쟁이 발생하곤 한다”면서 “신인일 때는 브랜드로서의 가치가 작기 때문에 소속사가 임의로 상표권을 등록할 수 있지만, 스타가 된 후에는 멤버들의 동의 없이 임의로 상표권을 등록해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 특허청에서도 해당 브랜드가 ‘누구를 통해 인지도를 쌓았나?’ ‘대중에게 인식된 브랜드 가치의 귀속 주체가 누구냐?’가 판단 기준이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승적 차원에서 소속사가 멤버들에게 상표권을 양도한 경우도 있다. 지난해 5월 JYP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이 종료된 그룹 갓세븐은 상표권을 양도받아 본래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JYP는 2014년 갓세븐 관련 상표권을 획득했으나 이를 조건 없이 멤버들에게 돌려줬다. 이달 중순에는 그룹 인피니트의 상표권이 전속 계약이 만료된 멤버들에게 무상 양도됐다. 상표권 등록 조회서비스인 키프리스 조회 결과, 2010년 울림엔터테인먼트가 상표권을 출원한 ‘인피니트’는 지난 4월 21일 자로 그룹의 리더 김성규가 대표인 인피니트컴퍼니로 이전 등록됐다.
두 그룹의 상표권 양도는 K-팝 시장의 모범 사례로 손꼽힌다. 표준계약서상 최대인 7년의 전속 계약이 만료된 후 이견이 생겨 해체되며 본래 이름을 쓸 수 없는 아이돌 그룹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8년 표준전속계약서 상에 ‘계약 기간이 종료된 후에는 상표권 등의 권리를 기획사가 가수에게 이전해야 한다’(8조)고 권고하면서도 ‘기획사가 상표 개발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하는 등 특별한 기여를 한 경우엔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고 기재했다. 결국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법적 분쟁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한 중견 가요기획사 대표는 “‘내가 갖지 못하면 망가뜨리겠다’는 마음으로 상표권 분쟁을 벌이는 경우가 적잖다. 결국 멤버를 잃은 소속사도, 그룹명을 잃은 멤버들도 활동할 수 없기 때문에 산업적 측면에서 큰 손실”이라며 “K-팝 무대가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그룹의 수명도 길어졌다. 이에 따라 상표권을 둘러싸고 적절한 합의점을 도출해 각 그룹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힘들게 일군 지식재산권(IP)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충고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