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화미래리포트 2023 - 인구, 국가 흥망의 열쇠
석학에게 듣는다 - (1) 제임스 레이모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6월29일 ‘문화미래리포트’ 제1세션 첫 강연
젊은 나이에 ‘경제적 자립’ 이뤄야 결혼·출산 늘어나
아동수당 효과 없다… 청년들 경제적 지원이 효과적
남성 잦은 야근·여성 가사 전담… 성별분업 ‘비대칭’
동아시아 ‘결혼해야 출산’ 인식 커 비혼출산 드물어
지금보다 훨씬 더 작은 가족 친화적 사회 육성해야
출산율 빠른 회복 불가… 이민자 유입·통합도 해법
제임스 레이모 미국 프린스턴대 사회학과 교수가 “한국이 직면한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경제적인 자립을 조기에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동시에 여성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외국인의 이민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장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레이모 교수는 일본을 포함해 동아시아 국가의 저출산 및 인구 고령화에 대한 인구통계학적 변화의 원인과 잠재적 결과를 집중 연구해온 ‘동아시아 인구문제’의 최고 권위자다. 오는 29일 열리는 국제포럼 ‘문화미래리포트 2023’ 제1세션에서 첫 번째 연사로 나설 예정인 레이모 교수는 문화일보와의 사전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은 인구구조가 매우 급속하게 변화해 사회·경제·정책적 대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어렵다”면서 이처럼 진단했다.
―서구 선진국이 먼저 겪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동아시아 국가들도 고민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유럽에서 초저출산율이 장기간 지속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적용하는 일반적인 프레임워크가 ‘제2차 인구변천’ 이론이다. 간단히 말해, 가족 형성이 의문의 여지없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던 문화가 의식적인 선택으로 바뀌는 가치 변화, 혹은 관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개별화(individuation), 즉 개인 성장의 비중이 커지면서 결혼과 자녀 출산이 선택의 문제가 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 합계출산율이 1960년대와 1970년대 급격히 하락해 1980년대 초에는 대체출산율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이 역시 제2차 인구변천의 측면이 일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다른 요인들도 있다고 본다. 특히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남녀의 성역할에 대해 비교적 엄격한 규범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남유럽의 저출산 현상을 이해할 때 공적 영역(교육·고용)에서 여성의 기회가 급속히 늘어나지만 개인적 영역(가족)에서는 제한된 변화만 일어나면서 긴장 관계가 생기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육아 및 노인 돌봄의 주 책임이 여성에게 부과된다. 이러면 여성들은 개인의 삶과 가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저출산 현상은 더 많은 여성(및 남성)이 결혼 및 출산을 미루기로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셈이다.”
―인구 위기를 먼저 겪은 서구 국가들에서는 어떤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했나. 한국도 유사한 문제들을 겪게 될까.
“서구 국가의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동아시아가 여러 측면에서 변화의 선구자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일본은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심화된 국가이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금세기 후반에는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다만, 서구 사회의 경험에서 4가지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출산율이 매우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 이를 다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제가 아는 한, 오랜 기간 동안 대체출산율 수준 이하로 유지된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국가 중 출산율이 대체출산율 수준을 상회하는 안정적인 수준으로 회복된 국가는 없다. 둘째, 아동수당은 특히 비효율적인 정책 수단임이 분명하다. 부모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시행된 국가 중 어느 곳에서도 재정적 지원으로 인해 뚜렷하게 지속적으로 출산율이 증가했다는 증거는 없다. 셋째, 성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 출산율 감소가 두드러지고 회복이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유럽과 동아시아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가 특히 쉽지 않다. 두 지역은 직장과 가정에서 남녀 역할이 명확히 구분된 규범을 비교적 엄격하게 따른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넷째, 대규모 이민자 유입이 없는 상황에서 출산율 회복과 급격한 인구 고령화를 늦추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자국민 인구의 행동에 상당한 변화를 이끌어내 인구 고령화 및 감소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미미하다.”
―동아시아 국가의 인구학적 특징은 서구와 어떠한 면에서 다른가.
“첫 번째로 구별되는 점은 동아시아에서는 결혼과 출산 사이에 지속적인 강한 연결 고리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서구 국가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분리되면서 혼외관계(동거)와 비혼 출산이 크게 증가한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여전히 결혼이 자녀를 갖기 위한 유일한 조건이 되고 있다. 비혼 출산은 드물며(한국과 일본에서 전체 출산의 2%가 미혼모 출산) 혼외관계는 대부분 결혼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 인구통계학적 측면보다는 사회경제적 측면과 더 관련이 있는 두 번째 주요 차이점은 부부간 성별 분업이 매우 비대칭적이라는 점이다. 남성의 야근이 흔하고 여성이 가사노동과 육아에 대해 거의 온전히 책임을 지는 일본과 한국에서는 이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또 다른 차이점은 세대 간 동거와 육아 및 노인 돌봄 등 세대 간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세대 간 동거는 현저히 감소했지만, 여전히 서로 가까이 살면서 육아를 위해 조모에게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네 번째 주요 차이점은 낮은 사망률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기대 수명은 상대적으로 높다. 낮은 영아 사망률, 전 생애에 걸친 양호한 건강 상태, 높은 노인 생존율 등이 반영돼 있다. 저출산이 급격한 인구 고령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지만, 낮은 사망률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섯 번째는 동아시아 국가로의 이민자 유입이 상대적으로 적고, 동아시아 국가로 이주한 사람들의 영주권 취득률이 저조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인구 위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며, 향후 전망은.
“한국은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 수준에서 초저출산 국가로의 전환이 매우 단기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특별한 사례에 속한다. 1965년에만 해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5.0명 수준이었다. 일본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인구구조 변화가 한국에서는 매우 급속하게 발생하면서 사회·경제·정책적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경제적 장벽에는 한정된 자원 및 그에 따른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높은 비용이 모두 포함된다. 임금이 높아지고 고용 안정성이 향상되면 젊은 남녀가 결혼과 자녀를 갖는 데 있어 경제적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느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청년기의 자립을 지원하는 정책은 이러한 측면에서 효과적일 수 있다. 청년층이 경제력을 갖출 수 있도록 투자를 하는 것이 양육비 절감이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투자보다 더 효과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정책적 노력에는 비용이 많이 수반되는 노동 시장, 주택 시장, 교육 정책에 대한 개입이 따라와야 한다. 그 비용은 세수 증대 또는 지출을 재분배해 충당해야 하므로 해결하고자 하는 인구통계학적 문제에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의 인구 위기 대응을 위한 방법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현실적인 길이 있다. 하나는 젊은 나이에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아동수당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젊은 나이에 결혼과 출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주거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임금을 높여 주며, 가족 친화적인 근무환경 등 사회경제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안정적 직장, 일정 수준의 소득, 내 집 마련에 대한 강한 규범적 기대가 있는 사회에서의 정반대 현실은 결혼·출산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린다. 정부가 사회적 규범이나 개인의 신념 및 기대를 바꿀 수도 없다. 결국 정책적 수단과 기업 정책을 통해 청년층의 능력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이들이 젊은 나이에 자립을 이룬다는 규범이 통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또 다른 길은 이민을 대규모로 늘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내외적 장애물이 많다는 데 있다.”
―한국의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앞서 언급한 2가지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구통계학자이자 동시에 정책 입안자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일단, 어떤 정책이 도입되든 수십 년간 지속된 초저출산의 영향을 쉽게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의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통계학적 영향을 신속히 되돌리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인구 안정 상태에서 인구 감소로 전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새로운 평형에 도달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가임 연령의 젊은 이민자를 대거 받아들여 사회에 통합하는 게 가장 신속한 방법이지만 이는 사회·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실행이 매우 어렵다. 그런 점에서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큰 방안은 현재의 한국과 비교해 훨씬 더 작고 고령화된 가족 친화적인 사회를 육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인구위기 극복 위한 정책적 노력에 초점… 동아시아 인구문제 전문가
제임스 레이모 교수는…
제임스 레이모 교수는 ‘한·중·일 동아시아 인구문제’를 다루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2000년에 미시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린스턴대로 옮기기 전 19년 동안 위스콘신매디슨대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프린스턴대에선 글로벌 재팬랩의 창립 이사이자 프린스턴대와 도쿄(東京)대 간 전략적 파트너십 담당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레이모 교수는 일본의 저출산 및 인구 고령화와 관련된 인구통계학적 변화의 원인과 잠재적 결과를 연구해왔다. 그의 인구학 지식은 거시경제 전반을 아우르며, 정치와 경제적 성장에서 제도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그의 연구에는 결혼 시기와 이혼, 경기 침체 및 출산율, 결혼 및 여성 건강, 미혼모의 복지, 독신 생활, 가족 변화 및 사회적 불평등, 노년기 고용 및 건강, 노인 건강의 지역적 차이에 대한 분석이 포함돼 있다. 국가가 인구감소 위기 극복을 위해 어떤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밝혀 준다.
레이모 교수의 연구는 아메리칸 소시올로지 리뷰, 미 사회학 저널, 인구학 등과 같은 최고의 학술지에 게재됐다. 그는 현재 동아시아 인구통계 및 불평등 연구(READI) 연구 학자 커뮤니티의 공동 이사, 미 인구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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