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원폭탄에 신음하는 대한민국 - 공무원 애먹이는 황당 민원 사례
“면사무소 직원들 수박 먹으며
권하는 이 하나 없다” 불만글
“토지대장 · 자금신청서 100통
임플란트 서류 1000장 발급”
‘업무 마비 목적’ 의 민원 폭주
민원에 대해 회신해 주더라도
답변을 문제삼아 또 꼬리물기
매일 산책하듯 민원센터 찾아
괜히 시비걸며 소리 지르기도
지난 2021년 10월 21일 울산 중구에 있는 한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A 씨는 “토지대장 100통, 저소득층을 위한 생업자금신청서, 임플란트 관련 서류 1000장을 발급해 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이어 그는 “왜 서류를 발급해 주지 않느냐. 공무원들 비리가 있다”고 난동을 부렸다. 서울 한 구청에서 일하는 민원 담당 공무원은 “업무를 마비시킬 목적 등으로 악의적으로 공무원들 애를 먹이는 민원이 자주 있다”고 했다.
전국의 주민센터, 구·시·도청 등 각종 공공기관은 연간 2000만 건에 이르는 ‘민원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연 14억7792만 건에 달하는 법정민원(각종 증명서 발급 등)에 더해 권익위 국민신문고나 각 부처·시·도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접수되는 2000만 건에 이르는 민폭 처리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황당·반복 민원에 행정력 낭비
이 같은 민원은 수위를 높여가며 반복 제기되는 특성이 있다. 문화일보가 확보한 판결문에 따르면, 지난해 1월 28일 오후 C 씨가 서울 양천구 한 주민센터를 어김없이 찾았다. 그는 평소 수시로 이 주민센터에 전화하거나 내방하는 단골 민원인이다. 그는 이날도 “먹을 것을 내놓아라” 며 막무가내식 민원을 반복 제기했다. 이날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장 만나러 왔다. 동장 불러라”며 동장실이 있는 2층으로 향해 주민센터 공무원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2019년 1월에는 60대 민원인 D 씨가 “20년 전 헤어진 동생을 찾아달라”며 인천 중구의 한 주민센터를 찾았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거나 직접 찾아와 욕설하고 행패를 부렸다. 해당 주민센터는 D 씨의 민원 해결을 위해 과거 한 차례 그의 동생을 찾아 만남을 주선했으나, 그는 형과의 만남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시내 한 구청 민원실에서 일하는 공무원은 “매일 산책하듯 가까운 민원센터를 찾아와 괜히 시비를 거는 민원인들이 있다”며 “이유 없이 고집을 부리는 민원인, 소리를 지르는 민원인의 민원 처리에는 두 배 가까운 시간이 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민원 대기 줄이 길어지는 것을 보면 속이 탄다”고 했다.
◇법 집행 거부하고 ‘당해 봐라 식’ 민원
민원 처리에 도가 튼 공무원들도 혀를 내두르는 상황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2021년 9월 부산 해운대구 한 행정복지센터에서는 무작정 “내 주거지를 이전시켜 달라”며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도 있었다. 서울에 사는 E 씨와 그의 배우자는 대통령실 등 38개 기관에 수개월 동안 총 1만4000여 건의 민원을 제기했다.
특히 정당한 법 집행을 수용하지 않고, 민원부터 제기하고 보는 민원인이 많아 문제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1월 26일 부산의 한 구청 2층 민원실을 찾은 F 씨는 “구청이 압수한 내 건축자재를 돌려달라”며 구청장 면담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구청은 정당한 압류 조치를 했는데, 무작정 구청장 면담부터 요구하고 보는 것이다. 지난해 5월 4일 부산 해운대구청에서는 담배를 파는 민원인 G 씨가 “다른 사람이 담배소매인으로 추가 지정됐다”고 민원을 제기했다. 담당 공무원이 “정식 민원서류를 접수하라”고 하자, 그는 가지고 있던 종이뭉치로 이 공무원의 뒤통수를 때렸다.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무작정 경찰과 구청에 달려가는 ‘민원 만능주의’가 사회 전체에 팽배해 있다”며 “이는 심화된 개인주의와 약화한 공동체 인식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손기은 · 전수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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