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엄정화 ‘눈동자’

"살아있네." 이 말을 유행어로 만든 영화가 바로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다. 하지만 관객들의 입을 통해 스멀스멀 퍼졌다기보다는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유난히 자주 (발음도 유별나게 ‘싸라있네’) 사용한 영향도 조금은 있을 성싶다.

 한국기업평가연구소가 6월의 브랜드평판 빅데이터를 발표했는데 드라마 부문 1위는 엄정화, 예능 부문 1위는 유재석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록’(tvN 6월 7일 방송)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을 보니 ‘살아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마침 그날의 부제는 ‘포기하지 마’다. 지금도 살아있고 여전히 살아남은 엄정화가 증언한다. "자신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사랑할 수 있으면 좋아하는 것 하나라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막상 시작하면 또 다른 시야가 열린다."

 잘나가는 그들이라고 늘 좋은 일만 있었겠는가. 우리말에 엎친 데 덮친다는 말이 있다. 마치 세상이 나를 버릴 것 같은 공포의 단어다. 하지만 이 말보다 더 좋은 말이 그 주변에 어슬렁거린다. 바로 ‘엎치락뒤치락’이다. 끝날 때까지 예단할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게임이다. ‘쉬운 건 하나도 없어 그 속에 기쁨 느끼면 그걸로 돼’(엄정화 ‘페스티벌’)

 유재석은 KBS대학개그제(1991)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속담의 유통기간까지 바꿔가며 차근차근 차곡차곡 예능의 탑을 구축한 인물이다. 엄정화는 MBC합창단(1989) 출신이다. 당시 지원 자격이 전문대 졸 이상이었는데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엄정화는 특채(12기)로 전속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다. 함께 어울려 노래하는 것이랑 학력이랑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가.

 1990년대 초 최고인기를 누리던 탤런트 최진실(1968~2008)은 가끔 쇼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이때 합창단원 엄정화가 음악적 도움을 주었고 두 사람은 자매 같은 사이가 된다. 둘이 쇼 프로에 함께 출연했던 적이 여러 번 있다. 최진실을 섭외한 PD로서는 ‘또 엄정화?’했던 기억도 난다. ‘별책부록’의 수모에 엄정화가 날개를 접었다면 30년 후 ‘닥터 차정숙’엔 다른 여배우가 나왔을 거다. 예전에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3년 고개’는 한번 넘어지면 고작 3년 살고 죽어버리는 고개다. 그러나 슬기로운 자는 다르게 해석한다. 한번 넘어지면 3년밖에 못 사니까 만약 열 번 넘어지면 30년을 살고 스무 번 넘어지면 60년을 더 살지 않겠는가 말이다.

합창단 시절엔 가수 민해경, 양수경의 코러스에 불과했던(?) 엄정화는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3)에 캐스팅되면서 가수로서도 존재감을 가지게 된다. 이때 만난 음악인이 바로 신해철(1968~2014)이다. 그가 작사 작곡한 노래 ‘눈동자’를 통해 엄정화는 비로소 자체 발광한다. 초심의 노래에 빠져보니 대중과 스타의 운명 같은 관계로 들린다. ‘아주 오래전에 느껴왔던 나를 보는 눈동자 그 어느 곳에 있어 봐도 피할 수 없어’ 갑상선 암으로 목소리마저 잃을 뻔한 엄정화는 지금 억울함의 리스트보다 감사함의 리스트를 채우는 중이다. 그래서 한 마디 한 마디가 반짝인다. "작더라도 자기 스스로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요."

작가·프로듀서·노래 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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