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원폭탄에 신음하는 대한민국 - (2) 위험에 노출된 공무원들

“생활비 모두 썼다” 며 돈 요구
거절하자 위협적 언행 이어가
경고에 더 흥분하며 얼굴 가격

“불친절하다” 며 보호막 밀어
모니터 쓰러지며 얼굴에 부상

CCTV · 경찰 공조 등 대책에도
대부분 민원 현장선 무용지물




지난달 15일 부산 사상구의 한 행정복지센터에 50대 기초생활수급자 A 씨가 찾아왔다. 술에 취한 상태였다. 그는 “생활비를 모두 썼다”며 이곳에서 일하는 공무원 B 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B 씨가 이를 거절하자 A 씨는 위협적인 언행을 이어갔다. B 씨는 악성 민원 매뉴얼에 따라 보디캠을 착용하며 현 상황을 촬영하겠다고 알렸는데, A 씨는 되레 흥분하며 B 씨 얼굴을 주먹으로 여러 차례 가격했다. 수차례 얻어맞은 B 씨는 정신을 잃었다.

정부가 악성 민원인의 폭언·폭행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투명가림막 설치, 웨어러블 카메라 착용 등의 조치를 내놨지만, 민원 현장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 공무원들은 민폭(민원폭탄·민원폭력)을 일삼는 악성 민원인에 대해서는 분리 대응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3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부터 안전한 근무환경 구축을 위해 전국 민원실에 △투명가림막 설치 △CCTV 확충 △웨어러블 캠, 공무원증 녹음기 등 개인 보호장비 확충 △행정기관과 경찰관서 간 공조체계 강화 △안전요원 배치 등의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 같은 대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공무원과 민원인을 분리할 목적의 투명가림막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실제 지난해 9월 6일 C 씨는 인천 서구에 있는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D(여·27) 공무원이 불친절하다고 주장하며, 욕설까지 하면서 D 씨 바로 앞 투명 아크릴판 소재의 코로나19 방역보호막을 강하게 밀었다. 그 충격으로 D 씨의 모니터가 함께 넘어지면서 D 씨 얼굴을 가격했다. 서울 한 구청에서 일하는 민원 담당 공무원은 “투명가림막, 코로나19 보호막 등이 실질적인 방어막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또 인력 한계로 대다수 민원실에 경찰관이나 보호 요원이 없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원 공무원들은 한계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1년 11월 서울시 및 구청 산하 사업소 등의 민원 담당 공무원 5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복수 응답)가 실태를 잘 보여준다. 응답자들은 △6개월간 최소 1회 이상 ‘적절한 응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불평을 제기’(89.2%) △‘제도적으로 불가능한 민원에 대해 무리하게 요구’(89.0%) △‘민원인의 불쾌감을 드러내는 무언의 행동’(88.6%) △‘모든 잘못을 민원 담당 공무원의 잘못으로 탓하는 행위’(87.1%) △‘직접 관련 없는 나와 우리 조직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난’(85.2%) △‘모욕적인 비난, 고함, 욕설 등의 행위’(80.9%)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물리적 폭행(29.7%)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협박(23.3%) △원치 않는 신체접촉이나 성희롱(18.1%)을 겪은 공무원도 많았다.

민폭을 일삼는 악성 민원인에 대한 대응 강화 및 법 개정을 통한 처벌 강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크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정당한 법 집행, 공무 집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을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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