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억 규모 다단계 사기 의혹… 수사권 조정 후 ‘장기화’

투자자 171명, 2020년에 고소
이듬해 수사권 조정… 警 이송
불송치→이의제기→보완수사
불명확한 책임소재속 3년 표류

피해자 “사기꾼들만 좋은 상황”


전국적으로 3만 명의 투자자 피해를 일으켰던 ‘가상자산 티코인 다단계 의혹’ 수사가 검경의 책임 떠넘기기로 3년째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던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이 부여되고 이로 인해 책임소재가 불명확해지면서 검찰과 경찰이 사건을 ‘핑퐁’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3년째 희망 고문을 당하고 있다”며 “그 누구도 결론을 내주질 않으니 사기꾼들에게만 좋은 제도”라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14일 서울 송파경찰서 등에 따르면 티코인 투자자 171명은 지난 2020년 9월 이모 씨 등 4명을 특가법상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고소했다. 이들은 2017~2019년 불특정 다수 투자자를 상대로 “티코인에 투자하면 AI가 자동으로 트레이딩을 하면서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티코인 또한 전망이 좋아 엄청난 가치상승이 기대된다”고 속여 총 39억9251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고소장을 받은 동부지검은 송파서에 수사를 지휘했고 ‘2020년 12월 8일’이라는 ‘데드라인’까지 줬지만 2021년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 여파로 지휘는 이행되지 않았다. 송파서는 해를 넘겨 고소 10개월 만인 2021년 7월 이 씨 등을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했다. 그러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고소인들은 이의제기 신청을 통해 “차라리 사건을 검찰에 강제로 넘겨달라”고 경찰에 요구했고, 동부지검은 8월 송파서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그 사이 투자자들이 경찰의 권유에 따라 이 씨 등을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고소한 사건이 별도 사건번호를 달고 진행되면서 절차가 더 복잡해졌다.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는 경찰이 2021년 7월 21일 송치했고, 6일 뒤 검찰이 보완수사 요청을 했다.
6개월 뒤인 2022년 2월 송파서는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를 송치하고 나머지를 송치결정 유지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지만, 동부지검은 2개월 뒤 ‘2차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이후 현재까지 송파서는 이 사건을 다시 수사하고 있다. 검경 핑퐁으로 사건이 장기 표류 중인 셈이다. 이 기간 고소인들을 거쳐간 담당 검사와 경찰 수사관만 8명이 넘는다.

피해자들은 검경 간 서류만 오갔을 뿐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피해자 A 씨는 “교묘한 사기일수록 사기꾼들이 처벌을 더 잘 피해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피해자 입장에서 수사관들은 골치 아픈 사건이라고 무혐의로 쉽게 판단하거나 질질 끄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보완수사 요구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갖게 된 수사종결권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다. 문제는 티코인 수사 사례처럼 보완수사가 이뤄지면서 사건 처리가 늦어진다는 것이다. 2020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보완수사는 2021년 8만523건, 2022년 10만3185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또 지난 4월 기준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한 사건 중 경찰이 6개월 이상 붙들고 있는 사건 수는 7195건에 달한다. 검찰에 수사지휘권이 남아 있던 수사권 조정 이전에는 고소·고발 사건을 3개월 이내에 처분하는 것이 검경 불문율이었다. 특히 사기, 배임, 횡령 등 사건 구조가 복잡한 사건일수록 ‘경찰의 송치→검찰의 보완수사 요구→재송치→보완수사 재요구’가 반복되는 사례가 많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면 본인 사건이 아니게 되고, 경찰은 끝낸 사건을 다시 수사하려다 보니 질질 끄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사건 처리가 점점 늦어지는 핵심원인은 제도가 바뀌면서 수사요원이 사건 지연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며 “가상자산처럼 기존의 법이나 판례로 규율이 어려운 새로운 범죄행위 수사에서 수사 지연이 더 잦다”고 설명했다.

강한·김규태 기자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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