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석좌교수

글로벌 기술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국가 간 기술 유출 범죄가 늘어나고, 수법도 점점 고도화하며 대담해지고 있다. 개별 기술을 훔쳐내고 인재를 빼가는 것을 넘어 이제는 아예 공장을 통째로 복제한다. 실제로 최근 삼성전자의 전직 임원이 국가 핵심 기술인 반도체 공장 설계 자료를 빼돌려 중국에 복제 공장을 세우려 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적발된 기술 해외 유출 사건이 93건에 추산 피해액만 약 25조 원이다. 그나마 적발된 사건만 이 정도이니 국가경제를 휘청이게 할 수준이다.

이 정도면 기술 해외 유출은 기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안보와 미래 번영을 좌우할, 국가적으로 대응해야 할 경제안보 문제다. 특히, 기술 해외 유출은 나라를 팔아 경쟁국을 이롭게 하고 국가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매국 행위이자 간첩 행위로 인식돼야 한다. 이미 대만과 미국은 기술 유출 범죄를 간첩 행위에 준해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에 머물러 있다. 최근 대법원에서 기술 유출 양형 기준을 대폭 높이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처벌 강화만이 답은 아니다. 돈의 유혹에 약한 인적 취약점을 이용한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직원의 지위 보장과 처우 개선 및 다양한 혜택 제공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직원들의 만족도 향상과 충성도 강화는 기술 유출에 효과적인 갑옷이 될 수 있고, 더 큰 혁신으로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인적 취약점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더 이상 사람을 빼가서 기술을 훔칠 수 없다면 중국은 언제라도 시스템의 취약점을 이용할 것이다. 중국은 세계 최고의 사이버 산업스파이 국가로, 그들이 기술 강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국가 차원의 해킹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시스템 해킹으로 핵심 인재들의 인적 취약점을 찾아낸 후 이를 협박에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적 취약점과 시스템 취약점을 모두 고려한 종합적인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해결책은 반대쪽 문제를 부풀게 할 뿐이다.

다행히 정부는 기술 해외 유출 문제와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국가안보실에 경제안보비서관을 두고, 한미 경제안보대화도 만들고, 얼마 전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에는 최초로 경제안보를 포함시키고 관련 법제 정비를 포함한 핵심·신흥기술 보호와 협력 강화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경제안보 차원의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국가 차원의 거버넌스와 기본 대응 틀은 갖춰졌다. 이제 이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힘을 실어주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정부와 기업 간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국정원 등 관련 기관의 방첩 역량과 보안 역량 강화를 위한 인력 양성과 교육훈련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미국과의 기술 유출 방지 공조 및 정보 공유 노력도 본격화해야 한다.

중국이 우리 기술을 훔치기 위해 천인(千人)계획, 만인(萬人)계획 등 국가 주도의 두뇌 사냥을 벌인다면, 우리도 국가 주도로 경제안보 차원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두뇌 수호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 인재와 기술을 지키고 국가경제를 지켜내기 위한, 말 그대로 한판 경제전쟁을 치러내야 할 때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