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냉’은 ‘去(갈 거)’와 ‘冷(찰 랭)’이 합쳐진 한자어인데 한자를 알아도 뜻을 파악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去’는 ‘제거(除去)’에도 쓰이니 ‘없애다’의 뜻으로 이해하면 조금 쉬워진다. 한자의 뜻을 조합해 보면 차가운 것을 없앤다는 뜻인데 사전에서는 약간 데운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흔히 쓰는 말은 아니지만 냉면집에서는 너무 차갑지 않은 냉면을 가리킨다.

음식은 따뜻하게 먹어야 할 것과 차게 먹어야 할 것이 따로 있는데 따뜻하게 먹어야 할 것이 더 많다. 그래서 ‘면’이라 하면 보통 따뜻한 국수를 가리키니 차갑게 먹는 면을 따로 ‘냉면’이라 한다. 그런데 냉면을 거냉해서 내면 ‘차갑지 않은 냉면’이 되니 ‘네모난 원’만큼이나 이상한 말이 된다. 그러나 냉면을 즐기고 싶지만 차가운 것이 장기에 부담을 준다면 차가운 기운을 걷어내고 먹는 것도 방법이니 그리 이상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냉면은 본래 겨울 음식이었는데 더울 때 먹는 음식으로 인식이 바뀐 데에는 냉장고가 큰 역할을 했다. 냉장고 덕에 한여름에도 얼음을 얻을 수 있고 음식도 차게 보관할 수 있으니 기온과 관계없이 냉면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냉면뿐만 아니라 각종 술과 음료수도 차게 해서 먹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우리는 소주, 맥주, 막걸리 등 모든 술을 차게 해서 마신다.

중국을 방문해 본 이들은 미지근한 맥주에 당황스러워하기도 한다. 중국인들은 상온 맥주도 즐겨 마시니 차가운 것을 따로 주문하지 않으면 겪게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의외로 거냉한 술, 즉 상온의 미지근한 술을 마셔보면 청량감은 없을지 모르지만 술 본연의 맛이 더 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냉기로 덧씌워진 음식과 음료 탓에 그 본연의 맛을 모르거나 맛없는 것을 냉기로 덮은 것을 먹는 경우도 많다. 날이 더워질수록 찬 것을 많이 찾다 탈이 나는 일도 많아지니 적당히 거냉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