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어른 모두 좋아하는 얼음 과자, 아이스크림은 귀족의 디저트에서 보통 사람으로 디저트로 민주화된 음식이다. 게티 이미지
아이와 어른 모두 좋아하는 얼음 과자, 아이스크림은 귀족의 디저트에서 보통 사람으로 디저트로 민주화된 음식이다. 게티 이미지


오로지 입의 즐거움을 위한 음식 디저트는 가장 인간다운 요리인지도 모른다. 생존을 위해서만 먹는 다른 동물에게는 디저트란 쾌락의 음식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동안 디저트의 과학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보았다. 기체와 액체, 고체 사이의 상(相) 변화를 주어 입속에서 탁탁 터지고 포근포근 말랑말랑한 감촉을 주는 에멀션, 겔, 무스의 3가지 재료 구조도 공부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디저트인 과일부터 시작해 달콤한 식후 빵, 우유 등 유제품을 활용한 각종 크림 디저트의 다양한 변주를 경험하기도 했다. 오늘은 디저트 과학의 마지막 편으로 근대 과학이 낳은 새로운 디저트인 아이스크림과 사탕 과자, 초콜릿, 푸딩, 젤리, 케이크의 달콤한 맛에 빠져보기로 하자.

아이스크림은 16세기 이탈리아 나폴리의 연금술사들이 눈이나 얼음에 소금 또는 질산칼륨을 첨가하면 과일, 꽃 등 다른 물건도 얼릴 수 있다는 걸 발견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19세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얼음 산업이 등장할 때까지 아이스크림은 귀족을 위한 고급 음식이었다. 17세기 후반에 궁중 요리사들이 포도주나 달콤한 식후주를 얼린 샤벳(cherbet)을 선보였다. 또 이미 나와 있던 유제품 크림과 커스터드 푸딩을 얼려 얼린 크림과 얼린 푸딩으로 내놓았다. 얼린(iced) 크림(cream)이 지금의 아이스크림 어원이다.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귀족 부엌에서 일하던 요리사들이 대중식당을 열면서 얼음과자는 보편적인 디저트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1768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간된 ‘제과점 주방에서 얼음과자를 만드는 기술’은 아이스크림만을 다룬 첫 번째 디저트 요리책이다. 18세기까지 호수나 연못, 얼음창고에서 귀족들만 구할 수 있던 천연 얼음이 산업혁명 이후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얼음 상품으로 퍼져나갔다. 아이스박스와 냉장고의 발명이 이어졌다. 이탈리아는 젤라토란 이름의 과일 아이스크림을 탄생시켰다. 미국에서는 돌아다니며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상도 생겨났다. L자형 손잡이를 돌리면 원통 안의 우유가 빙빙 돌면서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졌다. 차임벨을 울리며 동네방네 아이들을 불러모으는 아이스크림 노점상은 저질 재료와 자극적인 단맛으로 정통 제과사들의 비웃음과 반발을 샀으나 이후 식당, 드럭스토어, 열차, 비행기 등 모든 장소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사탕 과자는 설탕으로만 만든 순수 사탕도 있지만, 과일이나 견과류에 설탕을 입힌 설탕 절임에서 출발했다. 봉봉, 드라제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 초기 사탕 과자는 귀족들의 디저트였다. 설탕 자체가 비싼 식재료이고 만드는데 특수한 기술과 장비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생강 설탕 절임이 아직 남아있듯, 몸에 좋은 계피·고수·아니스 등에 설탕 코팅을 해 알약처럼 보신용으로 먹고 실제 치료 약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예쁜 파스텔 톤의 요르단 아몬드는 오늘날까지도 유명하다. 초콜릿은 남미의 아즈텍, 마야인들이 카카오 추출액을 마시던 풍습에서 비롯됐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16세기에 유럽으로 카카오 콩을 가져와 이 신비의 음료를 핫 초콜릿으로 만들었다. 음료로 출발한 초콜릿은 아이스크림의 재료로, 커스타드 크림과 사탕 과자에 입히는 외피로 애용됐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과학자들이 코코아에서 버터를 분리해 가루로 만드는 법을 개발했고 이를 기초로 판형 초콜릿이 세상에 등장했다. 케이크, 쿠키 등의 제조에도 초콜릿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해 브라우니 같은 히트작도 나왔다. 푸딩도 이집트 시대부터 애용된 역사적인 디저트이다.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서는 쌀로 만든 라이스 푸딩이 지역마다 제 각기의 맛을 뽐냈다. 고형의 푸딩은 고대 그리스의 고기 또는 블러드 푸딩에서 유래된 것으로 창자에 고기를 채운 소세지와 같은 짭짤한 음식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17세기에 창자 대신 촘촘한 면포에 과일, 설탕, 향신료 등을 뭉쳐 디저트 푸딩으로 거듭났다. 젤리는 젤라틴을 원료로 하인을 거느린 귀족들이 주로 즐기던 디저트였으나 19세기 후반 중산층으로 보급되면서 주류 디저트로 등극했다.



달콤한 빵 케이크는 과거 서구 문명권 국가에서는 결혼하기 전에 처녀들이 익혀야 하는 필수 요리로 꼽히기도 했다. 그만큼 특별한 날에 먹는 명절 음식으로 사랑받았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
달콤한 빵 케이크는 과거 서구 문명권 국가에서는 결혼하기 전에 처녀들이 익혀야 하는 필수 요리로 꼽히기도 했다. 그만큼 특별한 날에 먹는 명절 음식으로 사랑받았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


디저트의 왕자로 가장 보편적인 케이크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치즈 케이크에서 유래됐다. 원래 유제품 치즈와 꿀로 만든 납작한 원반 형태였다. 중세 때는 기독교 수도원이나 수녀원에서 생강으로 만든 진저브래드가 탄생했다. 효모 대신 달걀 흰자를 써서 빵을 부풀린 스펀지 케이크 중 프랑스의 마들렌은 프루스트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와 유명해졌다. 19세기에 오븐과 새로운 조리기구들이 발명되면서 아몬드 케이크, 당근 케이크, 초콜릿 케이크, 코코넛 케이크, 파운드 케이크 등 다양한 케이크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시아에는 중국의 월병이나 일본의 모치가 유명하다. 케이크의 사촌이지만 사과, 복숭아, 호박, 크렌베리, 피칸, 고구마 등 다양한 과일과 채소로 만드는 파이도 미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영양 과잉으로 비만이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자 사람들은 지방과 단백질로 가득 찬 본식을 줄이고 소량의 후식 디저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후식은 이제 본식보다 더 사랑받는 식탁의 주역으로 대접받는다. 맛있는 디저트 가게를 찾아 맛보고 SNS에 감상평을 올리는 미식가들이 넘쳐난다. 분자 요리사들은 액체질소를 이용한 급속 냉각 디저트를 개발해 21세기의 디저트 맛을 보여주었다. 오래된 전통을 계승해 과거의 맛을 되살리는 젊은 도전자들도 맛의 세계에 풍성함을 더해주고 있다. 디저트를 먹을 때도 그 역사와 조리법, 물리·화학적 법칙까지 화제로 올리며 서로 즐거움을 나눈다면 달콤함은 몇 배로 늘어날 것이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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