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전 조작 ‘펜타곤 페이퍼’ 폭로 엘즈버그 사망
하버드대 졸업, 핵전쟁 게임이론 연구…반전운동도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하기 위해 무력 충돌을 조작했다는 내용의 일명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대니얼 엘즈버그가 16일(현지시간)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엘즈버그의 가족들은 캘리포니아주 켄싱턴의 자택에서 엘즈버그가 췌장암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3월 췌장암 진단과 3∼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엘즈버그는 1931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1954년 해병대에 입대했으며, 1958년부터 랜드 연구소에서 핵전쟁 관련 게임이론 등을 연구했다. 1964년까진 로버트 맥나마라 당시 국방부 장관의 고문으로 일했다.
1965년 엘즈버그는 민간 평화 프로그램 평가를 위해 베트남에 1년 반 동안 머무르면서 민간인 사망, 죄수 고문, 파괴된 마을 등 베트남전의 현실을 확인했다.
이후 그는 1967년 미국이 베트남전 개입을 위해 무력 충돌을 조작했다는 내용이 담긴 펜타곤 페이퍼 작성에 참여하고, 랜드 연구소로 돌아왔다. 그러나 좌절과 환멸을 느끼고 반전 운동에 참여했다. 엘즈버그는 랜드 연구소를 그만둔 뒤인 1969년, 몰래 복사한 펜타콘 페이퍼를 들고 베트남에서 만난 NYT 기자 닐 시핸을 찾아가 ‘미합중국-베트남 관계, 1945년~1967년’을 유출했다.
이 문서는 린든 존슨 행정부 말기 국방부와 민간 외교 전문가들이 작성한 것으로, 미국이 베트남전에 직접 참전하는 계기가 된 ‘통킹만 사건’ 일부가 미군에 조작됐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미국은 1964년 8월 2일 미군 구축함 매덕스호가 통킹만 일대에서 북베트남군 어뢰정으로부터 공격받았고, 이틀 뒤인 4일 공해 상에서 2차 공격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이를 빌미로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과 지상군 투입을 결정했다.
엘즈버그는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분류되기도 했으며, 스파이행위와 음모, 정부재산 도용 등 혐의로 기소돼 1973년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판사는 불법 도청 시도가 있었고 닉슨 대통령이 판사 자신에게 연방수사국(FBI) 국장 자리를 제안하는 등 다방면으로 불법적인 압력을 행사했다며 이 사건을 기각했다.
엘즈버그는 훗날 당시 상황에 대해 “펜타곤 페이퍼를 복사했을 때 나는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도 “그것이 베트남전의 종전을 앞당길 수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운명이었다”고 언급했다.
엘즈버그는 베트남전이 끝난 뒤 반전 운동가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해왔다.
권승현 기자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