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지난 1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문화일보 인터뷰를 통해 저출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소해야 하며, ‘오늘의 청년’이 아닌 10년 후 청년이 될 ‘미래 세대’를 위해 인구정책을 짜야 한다고 했다. 조 센터장은 오는 29일 문화미래리포트 기조강연에서 인구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소개할 예정이다. 백동현 기자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지난 1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문화일보 인터뷰를 통해 저출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소해야 하며, ‘오늘의 청년’이 아닌 10년 후 청년이 될 ‘미래 세대’를 위해 인구정책을 짜야 한다고 했다. 조 센터장은 오는 29일 문화미래리포트 기조강연에서 인구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소개할 예정이다. 백동현 기자


■ 문화미래리포트 2023 - 인구, 국가 흥망의 열쇠 <끝>

석학에게 듣는다 - (4)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
6월29일 ‘문화미래리포트’ 제2세션 두 번째 강연

서울·수도권에만 몰리는 사회
대학도 ‘인서울’만 고집하게돼
직업·성공에 대한 가치 획일화

경제적 여유가 최우선 된 청년들
높아진 ‘결혼값’에 만혼만 늘어
복지에 돈 쏟아부어도 체감못해

미래세대 중점 둔 인구정책 절실
최소 10년은 내다보고 만들어야
기업도 육아휴직 활성화 등 필요


정리=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보건대학원 교수)은 한국 저출산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수도권 인구 집중’이라고 분석했다. 오는 29일 열리는 ‘문화미래리포트 2023’ 2세션(대전환 시급한 한국의 대응) 강연자로 나서는 조 센터장은 지난 1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여러 도시로 인구가 흩어져 있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는 사람이 모여드는 곳이 ‘서울 등 수도권’ 딱 한곳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젊은이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존’ 자체가 중요해졌고, 개인 선택이 된 결혼과 출산은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조 센터장은 수도권 쏠림 현상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저출산 현상은 해결하기 힘들다고 경고했다. 한국 특유의 획일적인 문화도 저출산 현상에 일조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사는 곳은 수도권으로 획일화됐고, 직업과 성공 등 삶에 대한 가치관도 획일화됐다는 지적이다. 조 센터장은 인구정책의 방향성은 ‘오늘의 청년’이 아닌 10년 후 청년이 될 ‘미래 세대’에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은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도 꼴찌다. 젊은 세대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꺼리는데 해결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나라 저출산 현상의 원인으로 높은 사교육비 등 양육 문제를 많이 거론하지만 보육 환경은 한국보다 어려운 나라가 더 많다. 근본적인 원인은 ‘수도권 인구 집중’이라고 본다. 최근 울산에 갔는데, 울산은 제조업 중심 도시다. 젊은 여성들은 울산을 떠나 서울로 가고 남성들만 남는 구조다. 20∼30대 여성이 100명이라면, 남성은 120명 정도로 성비 불균형이 심하다. 그런 지역에서는 출생아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갈 곳이 ‘서울 수도권’ 한 곳밖에 없다. 프랑스의 경우 사람들이 수도인 파리로만 가는 게 아니라 여러 중소도시로 많이 간다. 이런 나라에서는 경쟁의 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생존’이 중요해지고 결혼과 출산의 중요도는 떨어진다. 경쟁을 통해 교육 수준이 높아지다 보니 이 같은 경쟁 속에서는 당연히 기대 수준도 높아진다. 삶에 대한 기대 수준은 우리나라 청년이 가장 높은 편이다. 보육이나 주거, 사교육, 일과 가정의 균형 등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수도권 쏠림 현상이란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복지 혜택이 늘어나도 출산율은 더 떨어지고 청년들이 체감하는 것은 변하지 않고 있다. 엄청난 돈이 들어갔는데 정작 “나는 혜택을 못 받았다”고 느낀다. 1980년대 초반 태어난 40대 초반에 견줘 1990년대 출생한 30대 초반의 경쟁이 더 심하다. 경쟁의 압박이 더 심화하면서 주거 복지 문제로는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다. 복지 수준은 높아졌지만 경쟁 수준도 같이 높아져서다. 경쟁 압박을 낮추려면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소해줘야 한다. 삶의 양식이 다양해져야 하는데 우리는 ‘수도권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게 공식처럼 돼 있다. 단시간에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내년, 내후년에 출산율 반등 등 당장 효과를 보려고 하면 인구정책은 다 꼬인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에 악영향을 미친 한국 특유의 사회적 배경이나 문화적 요소를 꼽는다면.

“‘획일성’이다. 수도권으로 획일적으로 집중되고 있고, 성공에 대한 가치관도 획일적이다. 이 같은 현상을 만들어 낸 건 기성세대다. 대표적인 예가 ‘대학’이다. 기성세대들은 서울과 지방 거점 국립대 등에서 공부했지만 정작 자녀들을 ‘인서울’로만 보내고 있다. 성공도 가파른 피라미드 구조다. 장소는 서울 소재 대학, 좋은 직업은 의사와 변호사 등 소위 말하는 ‘사’ 자에 몰려 있다. 한국 사회가 섬 같은 구조라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 같다. 워낙 조그만 나라에서 자원도 없고, 있는 자원을 나눠 쓰기가 쉽지 않다. 한국 사회를 발전시켰던 원동력이긴 하지만 이제는 글로벌 시장이 훨씬 넓다. 전문직은 사실상 내수용으로 해외에서는 시장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들은 결혼과 출산의 전제 조건으로 경제적 여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꼽고 있다. MZ세대 내부에서 혼인과 출산의 계층화가 우려되는데 어떻게 보나.

“MZ세대는 워낙 교육 수준이 높고 경쟁감이 충만하게 자란 이들이다. 자신들이 느끼기에 ‘준비’가 충분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지 않는다. 준비란 것은 여러 가지 측면을 뜻한다. 통상 경제적 여유와 미래 전망 등을 따진다. 결혼에서 계층화되는 것은 분명하다. 경제적 지위가 부모로부터 대물림되고 있다. MZ세대의 결혼 기준도 높은데 이걸 준비하느라 시간을 보내면서 ‘만혼’이 되는 거다. 준비가 안 돼 결혼을 미루면서 ‘결혼값’만 높아졌다. 출산 기준도 덩달아 높아진다. 출산과 결혼 계층화는 앞으로 더 뚜렷해질 수 있다. 잘 사는 집부터 못 사는 집까지 편차가 있다. 준비된 사람만 아이를 낳는데 이 편차가 좁아지면 경쟁은 더 심화된다. 편차가 있을 때 공교육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진다. 공교육이 안 바뀐다면 아이들은 배울 게 없다. 유치원만 봐도 과거에 비해 영어유치원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이 한 명, 한 명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아지고 더 힘들어지게 된다. 10년 후 청년이 될 세대들의 숫자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똑같은 경쟁감을 가지고 산다면 실질적인 경쟁은 줄어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 목표는 ‘오늘의 청년’이 아닌 2030년대를 살아갈 ‘미래의 청년’을 위해 짜야 한다. ‘오늘의 청년’만 보거나 당장 몇 년 내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을 찾지 말아야 한다. 최소 10년 이상 시야를 멀리 둬야 한다. ‘오늘의 정책’이 지속될 경우 2030∼2040년대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 중점을 둬야 한다. 인구 정책은 미래 세대에 맞춰야 한다.”

―정부의 저출산 정책 지원은 기혼자 중 자녀가 있는 사람들을 중점으로 이뤄지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미혼과 기혼자 중 자녀가 없는 사람들에겐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는데.

“규범적으로 보면 회사가 자녀가 있는 가정에 사회복지를 추가로 더 주는 거다. 자녀의 유무에 따라 생활방식이 다를 거고 그 어려움을 보완해주는 것이다. 수익자인 회사의 입장에서는 회사가 유지되고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자녀가 있는 구성원에게 혜택을 줘야 이득이 된다. 국민연금만 봐도 중장년세대는 앞으로 미래 세대에 기댈 수밖에 없다. 현재 상황만 따져보면 불공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금과 건강보험 등은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시스템인 만큼 수익자에는 개인과 가정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도 포함된다. 한 사회에서 여러 세대가 공존하기 위해선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를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출산보다는 결혼이 선결 조건인데, 출산보다는 결혼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저출산 대책 방향성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혼 청년들이 결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청년정책’인데 이 역시 필요하다. 일자리도 일종의 복지다. 하지만 국가가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순 없다. 이는 민간 영역의 문제다. 청년 정책이 복지 중심으로 가서는 안 된다. 선택지가 ‘서울’ 하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선택지를 늘려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정책은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경기 성남시 판교와 서울 강서구 마곡이 좋은 예다. 두 곳에 입주한 기업 숫자가 적지 않고 업종도 여성들이 선호하는 분야가 많다. 스타트업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서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 등 민간 차원에서는 어떤 대응이 필요한가.

“현재 기업 내 복지 제도는 적지 않다. 기업이 따로 만든 사내 가족지원제도도 많다. 문제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느냐다. 직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가족지원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기업이 스스로 평가해봐야 한다. 정부도 기업 직원들이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도 등 가족 제도를 잘 사용하고 있는지를 관리 감독해야 한다.”

―돌봄 공백 등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착안된 스타트업들도 나오고 있다. 스타트업의 기여도는 어떻게 보나.

“스타트업을 발굴해서 액셀러레이팅(지원)하는 ‘블루포인트’라는 투자회사는 ‘인구문제 해결형’ 스타트업을 키우고 있다. 사람들이 결혼을 늦추거나 안 하는 이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 등은 천차만별이다. 그걸 국가가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정부가 그걸 다 하려다간 ‘백화점식 정책’이란 비판을 받는다. 민간 부문은 애자일(Agile·민첩한)하기 때문에 이윤을 추구하면서도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만들 수 있다.”

―한국 젊은 세대들은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 이민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민이 저출산 문제 해법이 된다고 보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들은 인구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기성세대들은 인구가 늘어나는 게 좋다고 본다. 하지만 노동시장에서 이민자와 직접 경쟁해야 하는 젊은 세대들의 생각은 다르다. 기성세대가 인구정책을 만들면 수혜자인 젊은 세대가 실감 못 하는 정책이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민청은 지금 설립해야 10년 후 제대로 외국인 인력을 받을 수 있다. 2030년대에 1990년대 중후반생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면 일자리시장의 판도가 변할 것이다. 구직난은 구인난으로 바뀔 거다. 일본도 이미 겪은 현상이다. 예를 들어 대학생이 모자라면 대학원생도 부족해진다. 대학원생이 안 들어오면 연구·개발(R&D)의 수준은 떨어진다. R&D 역량이 떨어진다면 국가 역량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 경우 외국인 학생이 필요하다. 몇 년도에, 어느 정도 외국인 인력이 필요하다는 예측은 지금도 가능하다.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범부처 합동으로 외국인 노동력을 추산해서 이민청 설립 계획을 짜야 한다.”

■ 국내 인구학 분야 권위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 민간위원

조영태 교수는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국내에서 인구학 분야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1997년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미국 텍사스대에서 인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2년간 미국 유타주립대 사회학과에서 조교수로 근무했다.

지난해 조 센터장은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인구와 미래 전략 태스크포스(TF)’의 공동 자문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인구절벽’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면서 당시 TF는 복지 중심 저출산 대책보다는 사회·경제 전반에 인구 감소 충격파를 줄이는 기조로 전환해 인구정책을 본격적으로 마련하는 방향으로 운영됐다. 현재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과 국민경제자문회의 미래경제분과 위원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인구 미래 공존’ ‘정해진 미래’ 등이 있다. 지난 2021년 펴낸 ‘인구 미래 공존’에서는 2030년 ‘인구절벽’이 체감되기 시작하는 만큼 앞으로 10년을 인구 감소 위기에 대응할 마지막 기회로 삼고 저출산 해법을 모색했다. 지난 2016년 ‘정해진 미래’라는 책을 통해서는 인구절벽이 한국 사회에 미칠 암울한 미래를 경고한 바 있다.

조 센터장은 2015년부터 9년째 베트남 정부에 정책 자문도 하고 있다. 인구 1억 명 돌파를 앞두고 있는 개발도상국 베트남 정부의 인구 및 가족계획국은 인구 구조와 인구의 질적 변화, 그에 따른 사회 변화 등을 살피면서 가족계획을 설계하고 있다.
권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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