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 ‘영웅이 존경받는 나라’ 구현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보훈공부 위해 휴일도 반납
선진국 찾아 제도 벤치마킹
직원들도 덩달아 ‘워커홀릭’
국정원 도·감청사건 수사 등
검사 시절 불도저 같은 추진력
국회에선 연 1~2회 법 제정
창조적 아이디어 뱅크 유명
두 차례 총선서 패배했지만
흑색선전 없는 경쟁에 눈길
윤석열 정부는 ‘제복 입은 영웅들이 존경받는 나라’를 표방하고 국가안보와 보훈 중시 정책을 주요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이 같은 정책 의지를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국민에게 알린 일등공신으로 박민식(57) 국가보훈부 장관이 꼽힌다. 박 장관은 보훈의 위상 강화와 윤 대통령 공약인 국가보훈부(部)로의 승격 숙제를 국가보훈처장 취임 1년여 만에 관철시키는 ‘뚝심’과 ‘저력’을 과시했다. 보훈부가 지난 5일 출범과 동시에 정부 19개 부처 중 의전서열 9위로 단번에 톱 10에 진입한 것 역시 박 장관의 논리와 설득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란 평가다.
◇보훈은 국민통합 리더십의 구심점 = 박 장관은 취임 후 보훈 정책이야말로 진보·보수 진영으로 갈라진 망국적인 갈등과 분열을 치유할 국민통합 기제임을 강조해왔다. 보훈부로의 승격은 박 장관의 ‘통합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진보·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그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아무도 선뜻 손을 대지 못한 ‘보훈부 승격’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힘으로 밀어붙여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었다. 야당에 대한 설득 작업, 제복에 대한 존경 등 보훈 위상 강화 필요성에 대한 국민 공감대 확보, 진보·보수를 아우른 보훈단체들의 결집과 지원 등 주도면밀한 준비와 추진력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됐다면 다른 정부 때처럼 순위에서 밀려났을 것이다.
박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 정무위원회 간사를 맡아 야당과 꾸준한 협상을 통해 단 한 차례 파행 없이 2013년 4월 ‘경제민주화법’ 합의안을 이끌어내는 산파역을 한 전력이 있다. 보수진영 내에서 부정적 목소리가 높았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마저 우려를 표시했지만 뚝심을 갖고 야당과 합의안을 관철시켰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아름다운 경쟁도 눈길을 끈다. 부산에서 재선을 지낸 박 장관은 지난 두 차례 총선에서 전 의원에게 잇달아 패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진심 어린 격려와 애정을 보여주는 데 아낌이 없었고, 근거 없는 비방이나 흑색선전은 하지 않았다.
◇불도저 검사 출신 ‘아이디어 뱅크’ = 검사 시절 특유의 뚝심과 소신 행보로 ‘불도저 검사’로 불렸다. 2005년 국가정보원이 김대중 정부 4년간 도청과 감청을 진행했다는 검찰수사가 발표되고, 신건·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피의자로 법정에 섰다. 당시 국정원 도청 사건의 주임검사가 박 장관이었다. 검사 임관 이전 외교부 공무원을 지낸 그는 각각 법조계(신건), 외교부(임동원) 대선배를 자신의 손으로 구속해야 했다. 특수통 검사 출신 박 장관은 법조브로커 김홍수 사건을 수사하며 조관행 전 부장판사는 물론, 검찰 선후배 등을 구속시켰다. 2004년 참여정부 인사가 연루된 ‘오일게이트’ 사건을 담당하는 등 강력한 추진력을 요구하는 권력형 불법 사건을 처리하며 ‘불도저’ 검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때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줄곧 ‘불도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박 장관은 윤석열 정부 초대 보훈처장을 맡으면서 정책 수행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그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호락호락하지 않던 정부직제 개편을 성공시키면서 행정가로서 능력도 인정받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보훈처 안팎에서는 지난 1년간 보훈 관련 보도자료 및 기사 건수가 이전 5년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아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휴일까지 반납하며 각종 보훈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보훈 선진국 제도 도입을 위해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으로 ‘보훈정책 공부’하러 다니는 보훈 수장의 일 욕심 탓에 직원들이 과로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박 장관이 솔선수범하며 발 벗고 나선 데다 직접 보훈 정책·제도 개선 아이디어를 내놓고 독려하자 보훈처 직원들의 ‘우려’는 ‘기대’로 바뀌었다. 62년 만의 보훈부 승격이란 숙원사업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자 직원들도 밤낮없이 일하는 ‘워커홀릭’이 됐다.
박 장관은 ‘아이디어 뱅크’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 대표적 사례가 윤 대통령이 지난 3월 2일 보훈관련 인사 50여 명을 초청해 부 승격 기념 정부조직법안에 직접 서명한 것이다. 부처 신설 관련 법안에 전자결재가 아닌 대통령이 직접 서명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이는 박 장관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해외출장 중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국방장관 등 참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대군인부 승격 법안에 서명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사진을 항시 들고 다녔다. 제대군인처를 연방정부 14번째 내각급 부서로 승격시켜 보훈의 위상을 크게 강화한 미국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 역시 박 장관의 아이디어였다.
◇계파보다는 소신, 뚝심의 정치인 = 박 장관은 재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이쪽저쪽 눈치 안 보며 소신에 충실한 목소리를 내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가 입안한 ‘화학적거세법’은 인권논란에 휩싸였다. 박 장관은 ‘사형제 찬성’이라는 확고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검찰 및 국정원의 통신감청 허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진보진영의 비판을 받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기존의 법을 고치는 ‘법 개정’에 매달린다. 아무래도 새로운 법을 만드는 ‘법 제정’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 1년에 1∼2개씩의 의미 있는 법을 제정하는 등 ‘창조적 아이디어’와 ‘뚝심’을 과시했다. 아동성폭력 근절을 위한 일명 ‘화학적거세법’ 등 초선의원으로서는 한 건도 힘들다는 제정법을 세 건이나 통과시켰다. ‘상습적 아동 성폭력범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 및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 ‘채권의 공정한 추심법’ 등을 통과시켜 어린이·여성·서민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의정 활동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법무부가 관리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 2013년 1000만 원의 성금을 냈다. 정부 예산으로 굴러가는 기금에 민간인으로서는 처음 성금을 냈다. 자신이 2009년 10월 대표 발의해 국회를 통과한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안’에 따라 설치된 기금에 그만큼 애정이 컸기 때문이다.
계파색이 옅은 박 장관은 그간 주요 계파 수장의 뜻이나 당론보다는 자신의 소신에 따른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소속된 계파가 없어 당내 비판적인 목소리를 상쇄할 만한 우군이 많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사안에 대한 입장표명이 명확하다 보니 ‘혼자 튀려 한다’는 지적이 뒤따르기도 했다. 그런 탓에 ‘소신의 정치인’으로 각인됐지만 지나친 소신 행보는 정치인 박민식 앞길에 독이 될 수도 있었다. 2013년 10월 대표적 친박(친박근혜)계 정치인인 서청원 의원의 재·보선 출마 반대 기자회견을 단행하며 친박계의 비판 공세를 받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박 장관은 특유의 소신과 뚝심의 리더십으로 국가보훈처, 국가보훈부를 끌고 가고 있다”며 “보훈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의 특징이 제대로 드러나는 데에는 박 장관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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