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미 문화부 차장

짧고 빠른 영상 매체가 지배한 시대. 이에 ‘역행’하는 책과 책을 쓰고, 만들고, 읽는 이들을 위한 ‘축제의 장’은 건재했다. 지난 14∼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 얘기다. 올해 도서전은 31개국 481개 출판사가 참가하는 등 엔데믹 이후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집계한 누적 관람객 수 역시 전년보다 30% 증가한 13만 명. 매일 개장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고, 강연과 사인회 등을 위해선 ‘오픈런’까지 불사해야 했다. 책의 힘과 매력은 여전했다.

그 풍경은 고무적이었으나, 아쉬움도 있다. ‘도서전의 얼굴’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도서전은 올해 30대부터 70대까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6인의 여성 작가를 내세워 홍보에 나섰다. 그런데 이들 중 과거 ‘문화계 블랙리스트’ 간여 의혹을 받는 작가가 있으며, 홍보대사로 ‘부적절하다’는 문제 제기가 일어났다. 문화예술 단체들이 항의 시위를 했고, 일부 작가는 도서전 불참을 선언했다. SNS에서는 독자들의 ‘보이콧’ 움직임도 감지됐는데, 결국, 해당 작가가 개막 3일 만에 사퇴 의사를 밝히며 일단락됐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옥에 티’라 했고, 또 누군가는 ‘퇴보’라 했다. 둘 다 아니다. 전자는 사안을 작고 가볍게 만들어 버리고, 후자는 도서전이 걸어온 길을 알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올해 65회를 맞는 도서전은 국내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문화행사다. ‘재고떨이’로 인식되던 때도 있었으나 도서정가제라는 ‘도전’을 만나 오히려 성장했고, 이제는 위기를 발판 삼아 성공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올해 더욱 진화했다는 평인데, 판권 계약이나 입장객 수치를 가져오지 않아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온갖 잡음과 소동에도 불구하고, 도서전 현장을 찾아 ‘애정하는’ 작가와 출판사를 향해,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을 향해 전진하는 독자들을 봤다면, 저작권 상담센터에 북적대던 해외 출판 관계자들을 봤다면 말이다.

K-컬처의 세계적인 인기와 함께 그 원천인 ‘K-북’에도 관심이 쏠린다. K-북의 가장 큰 전시장이자 발신 장소인 도서전 앞에 더 큰 문이 열린 셈이다. 도서전을 후원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K-북 미래 비전 선포식’을 연 것도 그 기대감을 반영하며, 도서전 관계자들 역시 ‘아시아 대표 저작권 마켓’ ‘세계 4대 도서전’을 목표로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니까, ‘옥에 티’도 ‘퇴보’도 아닌, ‘진통’이 맞다. 도약을 위한 필수 ‘성장통’에 가깝다.

이 통증은 도서전이 놓친 것을 일깨워준다. 지금의 도서전과 K-북의 근원, 다시 말해 도서전이 커지는 동안, 함께 성장하고 더 똑똑해진 사람들, 바로 ‘K-독자들’이다.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라는 주제를 내건 도서전이 동물과 식물, 인공지능(AI)을 논하기 전에, ‘사람의 마음’부터 살폈다면, 이번과 같은 논란이 발생했을까. ‘괜찮겠지’‘과거 일인데’라는 안이한 생각에 갇혔을까. K-콘텐츠의 바탕이라는 자부심도 좋고, 판권 수출에 속도를 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를 가능케 한 K-독자들의 마음을 잃어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도서전뿐만 아니라, 요즘 부쩍 ‘K-북의 미래’를 외치는 문체부도 명심할 사안이다.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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