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포도뮤지엄에 전시된 우고 론디노네의 설치작 ‘고독한 단어들’. 광대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장재선 선임기자.
제주 문화투어 성지로 떠오른 포도뮤지엄이 현재의 전시를 무료로 2개월 연장한다.
포도뮤지엄(총괄디렉터 김희영)은 "당초 7월 5일 종료하는 것으로 예정했던 전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를 여름 방학 기간 연장해서 9월 3일까지 진행하고, 사전 예약자들에게 뮤지엄을 무료로 개방한다"고 20일 밝혔다. 사전 예약은 네이버 해피빈 혹은 네이버 플레이스에서 ‘포도뮤지엄’을 검색해 원하는 방문 날짜와 시간대를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는 이주자들과 소수자들이 겪는 소외·아픔을 예술로 들여다보고, 그것이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전시이다. 정연두, 이배경, 강동주, 리나 칼라트, 알프레도&이자벨 아퀼리잔, 오노 요코, 우고 론디노네 등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미디어아트, 설치, 영상, 회화, 조각 등 장르도 다양하다.
정연두 작가의 영상 설치작‘사진 신부’ 를 둘러보며 한 관람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장재선 선임기자
필리핀 출신으로 호주로 이주해 활동하는 부부 작가 알프레도&이자벨 아퀼리잔의 ‘주소’는 이민자들의 애옥살림을 표현한 설치작품이다. 포도뮤지엄 제공.
오노 요코의 ‘채색의 바다’는 난민보트를 은유하고 있는데, 관객들이 희망의 단어를 써서 함께 만들어가는 체험형 작품이다.
한국 현대미술 대표작가인 정연두 성균관대 교수의 ‘사진 신부’는 영상과 설치, 조각으로 이뤄져 있다. 20세기 초 하와이의 조선 노동자들과 결혼하기 위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던 어린 여성들의 삶을 주제로 삼았다. 필리핀 출신으로 호주로 이주해 활동하는 부부 작가 알프레도&이자벨 아퀼리잔의 ‘주소’는 50㎝짜리 택배 상자 140개를 쌓아 올려 만든 대형설치 작품이다. ‘모든 삶을 박스에 구겨 넣어 이민을 가야 했던’ 디아스포라의 삶이 들어 있다.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아내이자 전위예술가인 오노 요코의 ‘채색의 바다’는 난민 보트를 은유한다. 올해 90세인 요코가 제주의 뮤지엄에 작품을 설치한 것과 관련, 김희영 총괄디렉터는 "간곡한 메일을 써서 성사시켰다"고 밝힌 바 있다. 당대에 가장 주목받는 현대미술 작가인 우고 론디노네는 광대들이 등장하는 설치 작품 ‘고독한 단어들’을 선보였다. 인간이 홀로 24시간 고립됐을 때 보이는 모습들인데, 각각의 광대들은 제목처럼 고독해보이지만 한 공간에서 독특한 풍경을 함께 이뤄내고 있어 미묘한 울림을 선사한다.
포도뮤지엄이 자체 제작한 테마 공간. 공항 안내판을 연상시키는 설치 작품 ‘디파처보드’는 세계 각지에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시각화했다.
뮤지엄 측은 초청작가들의 작품들 사이사이에 ‘테마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자체 창작품을 선보이며 전시 주제를 강조했다. 지난 해 7월 5일 개막한 이후로 온·오프라인에서 32만 여명이 관람했다. 김 총괄디렉터는 "포도뮤지엄은 제주도라는 특성상 전시를 길게 하는 편인데도 막상 종료 시점이 다가오면 서운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며 "이번에도 많은 분들이 전시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여름방학 기간 동안 무료 개방을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한편 포도뮤지엄은 SK㈜ 자회사인 휘찬이 지난 2021년 4월 제주 서귀포 안덕면에 개관했다. 공익사업을 하는 티앤씨재단(T&C Foundation)의 대표이기도 한 김 총괄디렉터가 이끌고 있다. 개관전 ‘너와 내가 만든 세상’은 가짜 뉴스와 혐오라는 주제를 다뤄 예술을 통해 사회적 인식 개선을 꾀하겠다는 의도를 뚜렷이 표방했다. 신선하면서도 의미있는 기획이라는 찬사를 들었으나, 메시지가 다소 강하다는 시각도 있었다. 두 번째 전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는 주제에 천착하면서도 예술 작품들 자체의 감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뮤지엄 측은 "개관 이후 오프라인 관람객만 15만여 명이 다녀갔고, 브이알(VR)·메타버스(Metaverse) 등 온라인전시는 62만 여명이 함께 했다"라고 밝혔다. 이 뮤지엄이 자리한 안덕면은 관광객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중산간 지역이었지만, 이제는 꼭 가봐야 할 곳으로 떠오르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