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하안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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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콘텐츠 ‘넥스트 스텝’- (2)한국영화, 다양성을 살려라

신인 발굴에 사명감 가졌던
중소 제작사들 설 자리 잃고
거대 기업이 투자·배급·상영

이윤 극대화가 최우선 가치돼
검증된 재미 흥행작에만 안주


2000년, 봉준호 감독의 첫 장편 영화 ‘플란다스의 개’가 개봉했다. 이와 함께 박찬욱·이창동·김지운·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동시다발적으로 나왔다. 2000년은 한국 영화의 기념비적 해였다. 이후 20년간 한국 영화는 르네상스를 맞았고, 봉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이 칸 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를 석권한 것은 K-무비의 존재감을 세계 속에 각인시킨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2023년 한국 영화는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소비자’인 관객은 더 이상 한국 영화란 ‘상품’을 기대하지 않고, 넷플릭스라는 ‘공룡’의 부상으로 ‘시장’ 주도권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빼앗겼다. 흥행이 부진하니 개봉을 망설이고, 새로운 영화 제작은 사실상 멈춘 악순환에 빠졌다. 위기를 타개할 돌파구는 있을까. 이 시점에서 ‘제2의 봉준호’는 나올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 않다”는 것이 영화계 중론이다. 가장 큰 이유는 창작자가 주도하는 ‘사업’에서 기업이 주도하는 ‘산업’이 됐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강우석의 시네마서비스, 차승재의 싸이더스, 신철의 신씨네, 심재명의 명필름은 모두 영화인인 개인이 주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재능 있는 신인 감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사명감을 가졌다.

2000년대 초에 흔히 말하는 ‘봉·박·이·김·홍’(봉준호·박찬욱·이창동·김지운·홍상수)이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모험적인 데뷔작이 대중에게 소개됐기 때문이다. 이들 중 더러는 첫 작품이 대중적으로 실패했음에도 재기의 기회가 주어졌다. 봉 감독의 첫 작품 ‘플란다스의 개’가 없었다면 ‘살인의 추억’과 ‘괴물’ ‘기생충’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영화의 파이가 커지면서 기업과 돈이 주도하게 됐다. 2004년 한국 영화 상위 배급사였던 시네마서비스, 코리아픽쳐스, 청어람의 이름이 지워진 대신, CJ ENM, 플러스엠, 롯데, NEW, 쇼박스 등으로 채워졌다.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의 국제적 성과에 CJ의 노고가 있었던 것처럼 대기업의 영화 진출은 순기능도 있지만, 한국 영화의 힘이었던 참신함과 다양성 부재란 과제를 낳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윤 창출이 중요해지면서 신인의 새로운 이야기보다 경력자의 검증된 이야기에 투자·배급을 몰아주는 경향이 커졌다.

한국 영화 개봉 편수가 많아져 경쟁이 심해진 점도 한몫했다. 흥행 실패가 겹치며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게 된 점도 악재다. 극장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전락했다는 점은 특히 한국 영화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영화 산업 전체 매출에서 극장 매출 비중이 지난해 기준 68%에 달할 정도로 한국은 ‘극장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시민 문화향유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화 관람률(48.4%)과 공연·전시 관람률(56.2%)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역전됐다. 1인당 극장 관람 횟수는 지난해 2.19회로 2019년 4.37회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동안 극장은 멀어진 반면, OTT는 일상이 됐다. OTT의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상업성 짙은 장르물로 제작이 쏠린다는 문제가 생겼다. 국내 영화 제작·창작자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보단, 제작대행사처럼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입맛에 맞추는 경향이 커졌다는 것이다.

단순히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줄었다는 점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영화가 더 이상 건강한 성장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새로운 이야기보단 검증된 재미에 기대는 작품이 투자를 받고, 관객 역시 신선함보단 익숙함에 몰려든다. 지난해와 올해 흥행 1위 작품이 ‘범죄도시’ 시리즈의 속편이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인 감독의 데뷔 자체가 어려워졌다. 지난해와 올해를 합해도 ‘올빼미’의 안태진 감독 정도만 눈에 띈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지금도 누군가는 ‘제2의 봉준호’를 꿈꾼다. 그런데 그들의 영화가 세상의 빛을 보기 힘들어졌다”며 “예전엔 다양한 영화가 상대적으로 공정한 상태에서 경쟁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당수 영화가 관객과 제대로 만날 기회도 갖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시점에선 봉준호의 ‘플란다스의 개’, 이창동의 ‘초록 물고기’가 대중을 만나지도 못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크단 얘기다.

영화계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주도로 ‘한국 영화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협의체’를 꾸렸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콘텐츠진흥원도 물밑에서 지원하고 있다. 성적이 부진하니 제작사들이 투자를 하지 않아 자본이 마른 ‘돈맥경화’ 현상을 풀기 위해 제작촉진지원금, 개봉촉진지원금 등의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한국 영화의 성장이 ‘사람’을 통해 이뤄졌듯, 위기 극복을 위해선 ‘사람’에게 힘을 실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쌍천만 감독이자 제작자인 윤제균 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는 “창작자가 주도권을 가지는 환경을 조성해야 영화판이 산다”고 강조했다. 윤 감독은 “돈을 푸는 방법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영화판에 우수한 인재가 들어오려면 정부는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저작권법 보완을 일순위로 들었다. 작곡가의 권리가 보장되는 음악 저작권과 달리 현행법상 영상물 창작자는 제작사와 계약하는 순간, 저작권이 모조리 넘어간다는 이유다. 심 대표는 “지금은 민간에 기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며 “공공적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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