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사부와 빌라의 외부 모습.
그림 1 사부와 빌라의 외부 모습.


■ 지식카페 - 최경원의 세상을 바꾼 디자인 - (27) 르 코르뷔지에

사부와 빌라 거실에는 천장 없어… 2층이지만 마당 같은 실외공간을 만들어 개방감 살려
경사지에 지어진 라 투레트 수도원은 빈 공간 제대로 살려… 안팎 구분하는 서양식 건축 관습 벗어나


건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거의 철골과 콘크리트, 유리를 주재료로 만들어진 현대 건축이다. 이런 건축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를 알고 넘어가야 한다. 현대 건축을 만든 선구자 중 한 명으로서 현대 건축의 본질을 실현했고, 극한의 감동을 주는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현대 건축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건축은 2차 세계대전을 기준으로 크게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눌 수 있다. 전반기의 걸작으로는 사부와 빌라가 꼽힌다. 이 집은 개인 주택으로 르 코르뷔지에가 현대 건축의 가치를 애초에 어디에 두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림1 1층이 거의 안 보이고 2층의 존재감이 압도적인 사부와 빌라의 외형

겉으로 봐선 장식이 하나도 없고 입방체 모양의 기능주의적 외형이어서 전형적인 초기 모더니즘 건축으로 보인다. 그런데 1층이 2층의 그림자에 가려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 1층을 튼튼하게 지어 2층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도록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1층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여서 집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바벨탑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고대부터 건축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사부와 빌라는 그런 오래된 염원을 이런 방식으로 실현했다는 설명이 많다. 그런데 이 건물이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은 이 집 안에 들어가서 만나게 되는 공간 때문이다.



◇그림2 건물 2층 거실에서 보이는 다이내믹한 공간과 하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2층 거실이 가장 안쪽에 있다. 그런데 집의 가장 안쪽에서 만나게 되는 광경이 놀랍다. 분명히 2층인데 큰 거실의 유리벽을 통해 마당과 같은 실외 공간이 개방적으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천장이 없는 공간으로 하늘이 그대로 거실 벽에 쏟아지고 있는 것은 그 어떤 주택에서도 보지 못한 놀라운 광경이다. 바깥에서 봤을 때는 견고한 입방체 모양의 2층 건물로 보였지만, 안쪽 공간은 더 없이 개방적이다. 장식은 하나도 없지만 이런 창조적인 공간으로 르 코르뷔지에는 이미 2차 대전 이전에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건축의 가능성을 확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3 롱샹성당

그림 3 롱샹성당.
그림 3 롱샹성당.


2차 대전 이후 그는 아파트 단지나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개발 작업을 많이 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전쟁 직후 파괴된 도시를 재건해야 하는 당면한 문제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때 그는 그의 대표작이자 현대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롱샹성당을 디자인했다. 이 성당은 1950년대에 지어졌는데 지금 봐도 도저히 건축물이라고 보기 어려운 모양이다. 21세기 들어 일반화되고 있는 프랭크 게리나 자하 하디드의 유기적인 건축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형태다.

입체파 화가로도 활약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행보를 생각할 때 이 롱샹성당은 입체파 조각이라고 할 만하다. 현대 미술적인 외형도 외형이지만 이 건물은 앞, 뒤, 양면이 모두 정면처럼 만들어져 있다. 건물을 빙 둘러가면서 살펴보면 각 위치에서 보이는 형태들이 모두 다른 이미지이고, 예술적으로 뛰어나다. 서양의 건축 역사에서 건물은 고전 건축이든 현대 건축이든 항상 정면을 중심으로 디자인됐다. 롱샹성당은 그런 서양의 건축 전통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현대건축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었다. 그것은 바로 공간이었다.



◇그림4 더 없이 감동적인 실내공간

성당 건물 주위를 한 바퀴 돌다가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대단한 충격에 빠지게 된다. 예술적 충동으로 가득 찬 건물 외형과는 달리 성당 안은 종교적 성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여러 성당을 다녀 보면 실내 공간에도 외형 못지않게 장식이 많다. 그런데 이 성당 실내에서는 장식이라고는 하나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것은 어두운 실내와 두꺼운 벽체를 타고 흘러내리듯 들어오는 빛의 강렬한 대비로 만들어지고 있다. 순전히 불규칙하게 뚫린 창으로 비치는 빛만으로 최고의 감동을 자아내는 이 건축가의 솜씨는 지금까지 그 어떤 첨단의 건축도 흉내 내지 못하고 있는 경지다. 건축이나 디자인이 첨단의 재료와 기술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림5 수녀님과 하나가 되고 있는 롱샹성당

이 성당에 갔을 때 수녀님이 앉아 있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뇌리에 박혀 있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롱샹성당의 실내 공간 그 자체도 엄청난 감동이었지만 이 성당에 거주하고 있는 수녀님들이 있어야 그 감동이 완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성당은 현대 건축이지만 그 어떤 고전적 성당보다도 위대해 보이고, 그 어떤 현대 건축보다도 감동적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 성당은 건축 순례객들로 붐비고 영원한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림6 경사지에 자리 잡고 있는 라 투레트 수도원

그림 6 라 투레트 수도원.
그림 6 라 투레트 수도원.


르 코르뷔지에가 롱샹성당을 완성하고 나서 또 다른 걸작 종교 건축을 디자인한 것이 바로 라 투레트 수도원이다. 이 성당은 우선 경사지에 자리 잡고 있는데, 경사지를 활용한 디자인이 매우 독특하다. 건물과 경사면 사이에서 형성되는 불규칙하게 뚫린 빈 공간을 그대로 둬서 건물이 성벽처럼 단단해 보이면서도 빈틈들이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이것은 안과 밖을 반드시 구분하는 서양의 건축적 습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건물 안에 들어 있는 감동적인 공간들이다.



◇그림7 라 투레트 수도원 예배당의 감동적인 실내 공간

그림 7 라 투레트 수도원 예배당의 내부.
그림 7 라 투레트 수도원 예배당의 내부.


예배당 부분은 바깥에서 보면 성벽 같은 구조인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굳건한 벽체 틈새로 들어오는 자연 빛이 벽을 타고 흐르면서 대단히 개방적이고 숭고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장식 하나 없지만 예배당으로서 더없이 완벽한 공간임을 느낄 수 있다.



◇그림8 수도사들의 방

수도사들이 기거하는 방들은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공간이 좁고 길다. 어떻게 보면 감옥의 독방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긴 공간을 세 부분으로 나눠서 매우 기능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먼저 출입구 쪽에는 책장을 높게 세워 바깥 공간과 차단했고, 그 바로 안쪽에는 침대를 둬 독립적인 개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 앞에는 작은 책상을 둬 학습할 수 있게 해놨다. 그리고 책상 바깥쪽에 테라스를 둬 공간적 사치를 한껏 누릴 수 있게 했다. 검소한 공간이지만 수도사들이 기거하는 데에는 최고로 디자인돼 있다.



◇그림9 가운데 중정 공간

이 수도원의 가장 특징적인 공간은 수도원 가운데의 빈 공간이다. 그런데 이 공간은 그냥 비워진 게 아니라 매우 복잡하고 역동적인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노출 시멘트로 만들어졌는데, 오가는 복도나 계단 등이 어울려서 자아내는 공간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공간감이 정말 대단하다. 최첨단의 현대 건축도 따라가지 못할 공간 구성이다.

이처럼 르 코르뷔지에는 엄청난 건축적 가치를 실현했는데 지금까지도 넘어설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여전히 현대 건축의 흐름을 앞서가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건축들은 그의 건축에 빚진 바가 아주 많다. 그래서 한 번쯤은 이 위대한 건축가의 업적을 살펴보면서 건축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1887∼1965)

- 1887년 : 스위스 뇌샤텔주 라쇼드퐁에서 출생

- 1910년 10월∼1911년 3월 : 페터 베렌스 사무실에 근무, 미스 반데어로에, 발터 그로피우스 만남

- 1918년 : 오장팡과 만나 에스프리 누보 창간

- 1920년 : 르 코르뷔지에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

- 1927년 : 바이젠 호프 주택

- 1928년 : 사부와 주택

- 1930년 : 빛나는 도시(La Ville radieuse) 출판

- 1947∼1952년 : 위니테 다비타시옹

- 1950∼1954년 : 롱샹성당

- 1952∼1959년 : 인도 찬디가르 도시계획

- 1957년 : 일본 국립 서양 미술관

- 1957∼1960년 : 라 투레트 수도원

- 1965년 8월 27일 :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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