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이성과 감성의 상호작용을 통해 행동한다. 프로이드 식으로 말하면 작은 기수(이성)가 코끼리(감정)를 모는 것이다. 특히 불안이 요동치면 이성은 속수무책이다. 약삭빠른 사람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수능 ‘킬러문항’ 논란은 ‘불안’ 감정이 정치·경제적으로 어떻게 이용되는지 보여준다. 이 감정은 사교육 시장의 열기를 높이는 땔감이다.
학원에서 킬러문항을 배우는 아동들의 무의식에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특권의식이 뿌리내릴 수도 있다. 킬러문항은 개인적·사회적으로 폐해가 크다고 이성은 말한다. 반면 ‘물수능으로 변별력이 없어진다’ ‘예측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주장들은 교육 참가자의 ‘불안’을 자극한다. 킬러문항을 수능에서 제외하는 것과 변별력은 무관하며, 교육 문제를 푸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이성은 환영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불안을 부추기는 주장은 솔깃하게 만든다. 코끼리(감성)가 요동칠수록 요령 없는 기수(이성)는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이 느끼는 ‘불안’은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개인적 접근과 사회 제도적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와 교사는 아동의 ‘불안’ 감정을 이해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불안할수록 실수도 많으니 불안을 최소화하는 게 최선이다. 또, 시험 후에는 성적을 기다리고, 결과를 토대로 원하거나 가능한 대학에 진학하는 게 최선이다. 이것이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키우는 길이다. 개인적 대처의 제도화도 필요하다. 선진국에서 볼 수 있듯이 부모의 양육 방식을 지원하는 것도 해법이다. 교사가 부모의 양육 지원 역할을 하도록 제도화해 좋은 부모 역할(good parenting)을 훈련받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불안은 대학 서열화 때문이라는 주장도 사실 불안을 부추긴다. 과거 대학 서열화가 만연했지만, 더는 그렇지 않다. 오늘날 최소한 수도권의 많은 대학이 좋은 대학이라고 평가받는다. 지금의 수험생이 졸업할 때면 또 다른 변화가 있을 것이다. 불안해할 게 아니다. 불안은 개인의 역량만 감소시킨다. 물론 교육제도는 계속 개선돼야 한다. 교육 수요자들의 선호에 따라 생긴 서열화를 없애는 것은 개악이다. 반면, 왜곡되거나 차별적인 정부 재정 지원, 동문들의 담합으로 서열화가 생긴다면 그것은 제거해야 한다. 대학의 자율성을 강화해 수요자들의 선택을 받게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외고·국제고·자사고 등을 존치하는 것도 이런 노력의 시발점이라면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인위적 평준화는 복잡 다양한 사회적 부작용만 낳는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킬러문항 논란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슬픔·불안·분노 등 ‘부정적 감정’을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집단은 어디에나 있다. 그렇다고 이들에 대한 비난에만 집중하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킨다. 요동치는 코끼리를 진정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부정적 감정을 서로 이용하는 무능력한 세력이 자라나는 온상이 되기도 한다. 부정적 감정을 이해·포용하면서, 차분하게 그리고 이성적으로 설득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그 근원에 있는 제도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도 매우 효과적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한 걸음 더 발전시키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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