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소금밭에 해가 뜨고 있다. 소금은 ‘하얀 황금’으로 불릴 만큼 인간에게 소중한 보석 같은 물질이다. 게이티이미지
바닷가 소금밭에 해가 뜨고 있다. 소금은 ‘하얀 황금’으로 불릴 만큼 인간에게 소중한 보석 같은 물질이다. 게이티이미지


우리가 요리할 때 ‘간을 맞춘다’고 이야기하면 보통 소금을 지칭한다. 물론 간장, 새우젓, 치즈 등 짠맛을 내는 다른 재료도 있지만 이들도 모두 소금에서 출발한 조미 소금이다. 왜 소금은 인간의 음식에서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자리 잡게 됐을까.

그것은 소금의 주성분 나트륨(소듐)이 동물 세포막 이온 펌프를 오가며 체액의 균형을 맞추고 전위(電位)차를 만들어내는 생명의 기본물질이기 때문이다. 사람 몸의 70%는 물이고, 그 물의 소금 농도는 0.9%이다. 소금은 몸 안의 알칼리성을 유지하는 조절 물질이고, 담즙·췌액·장액·위액 등 소화액의 재료이다. 몸 속 물에 소금이 없으면 동물은 목숨을 잃는다. 그래서 사람을 포함한 동물들은 짠맛에 무작정 끌리는 것이다.

동시에 소금은 최초의 천연 방부제였다. 고기와 생선, 채소를 소금에 절이면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이는 장거리 원정 전쟁으로 이어졌다. 소금이 없으면 정복 전쟁도 할 수 없었다. 최우선 순위 국방자산이었던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소금의 역사로 다시 써도 무리가 없다. 육식을 하던 선사 시대에는 별도의 소금 섭취가 필요 없었지만 고대 농경시대로 접어들자 소금을 따로 구해야만 했다. 산에서 얻는 암염, 바다의 해염, 사막의 모래 소금 등 인류는 소금 광산과 소금밭을 경영했다.

소금은 ‘하얀 황금’으로 불리며 화폐로도 쓰였다. 월급이란 영어 단어 ‘샐러리(salary)’는 라틴어 ‘살라이우스(salarius)’가 어원이다. 로마 병사들에게 나눠주던 소금 살 돈이다.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부터 무려 2017년까지 소금 국가 전매제도를 시행했다. 중앙정부의 통치자금이자 강력한 통제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랬던 소금이 현대에 와서는 성인병의 주범으로 악명을 얻고 있다. 고혈압, 당뇨, 심장병, 비만 등 대사증후군의 원인으로 과다 나트륨 섭취가 지목된 이후의 일이다. 저염식은 교양 다이어트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왜 소금은 요리에서 만능 해결사 역할을 할까. 화학적 구성 성분 때문이다. 주성분인 염화 소듐은 물에서 용해돼 양(+)전하를 띠는 소듐 이온과 음(-)전하를 띠는 염화 이온으로 나뉜다. 이들은 어떤 분자보다 작고 움직임이 자유로워 음식 재료에 쉽게 침투한다. 음식 재료에 소금을 뿌리면 삼투압 작용으로 식물 세포벽과 동물 단백질에 영향을 준다. 삼투압(渗透壓)은 액체의 농도 차이로 생기는 압력을 말한다. 세포막 같은 반투막은 막을 경계로 양쪽 액체의 매질(媒質) 농도가 같아질 때까지 서로 통과시킨다. 이를 이용해 채소를 절인다. 소금을 뿌리면 채소의 세포들로부터 수분이 빠져나와 단단해진다. 아삭한 식감을 만드는 것이다. 국수를 삶을 때도 소금을 넣으면 면이 탱글탱글해진다.

소금은 이처럼 짠맛 외에도 다른 재료의 성질을 변형시킨다. 음식의 향을 강화하고 쓴맛을 완화한다. 식감을 좋게 하고, 풍미도 높인다. 독소나 악취를 제거하고 저장 기간도 오래 연장해준다. 서구의 샐러드(salad) 어원은 쓴맛을 없애려고 채소에 소금을 뿌려 먹던 관행에서 유래했다. 고기를 갈아 만든 소세지(sausage)도 근육 단백질을 용해시키기 위해 넣던 소금에서 나온 이름이다. 수박이나 아이스크림에 약간의 소금을 뿌리면 단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시큼한 피클에 소량의 소금을 첨가하면 신맛이 조금 가신다.



생선이나 고기에 소금을 뿌리면 육질이 단단해지면서 육즙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잡아줘 풍미가 올라간다. 게티이미지
생선이나 고기에 소금을 뿌리면 육질이 단단해지면서 육즙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잡아줘 풍미가 올라간다. 게티이미지


고기에 소금을 뿌려두면 근육 단백질이 응고돼 쫄깃한 식감을 준다. 생선에 소금을 치면 근섬유 속에 스며들어 살을 단단하게 뭉쳐 구울 때 부서지지 않게 해준다. 게다가 생선의 비린 맛을 내는 아민, 휘발성 지방산 등이 생선 세포에서 빠져나와 담백해진다. 동물 고기에 소금을 치면 겉면의 단백질이 단단해져 육즙이 빠져나오는 걸 막는다. 그래서 생선은 굽기 20~30분 전에, 고기를 굽기 직전에 소금을 치는 게 좋다. 달걀과 두부를 삶을 때도 마찬가지다. 생선이나 고기를 오래 보존하는 염장법은 간고등어, 햄 같은 가공식품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채소나 과일의 신선도를 유지하는데 소금이 쓰인다. 맛도 좋게 한다. 채소의 주성분인 칼륨(포타슘)은 소금의 소듐과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채소의 색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유기농 채소와 과일을 먹을 때 소금물에 담가놓으면 벌레 유충들이 제거된다.

밀가루로 빵, 국수, 수제비 등을 만들 때 소금을 넣으면 반죽이 더 찰지게 된다. 밀가루 안에 있는 글루텐은 곡물의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이 결합한 것으로, 물에 녹지 않는 단백질 혼합물이다. 글루텐은 탄력성 있는 얇은 막을 형성해 빵을 부풀게 만들어준다. 글루텐은 그물 구조의 피막인데, 소금이 그물을 더 촘촘하게 당겨 탄성을 높인다. 소금이 물에 녹아 양전하의 소듐 이온과 음전하의 음화 이온으로 나뉘면 글루테닌 단백질에서 전하를 띤 부분에 달라붙어 서로 반발하지 못하게 해준다. 그러면 단백질들이 서로 더 가깝게 다가와 결합한다. 글루텐 그물이 치밀해지며 쫄깃한 식감이 강해지는 것이다.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고 나면 미네랄 물이 남는다. 이를 간수(澗水)라 한다. 마그네슘 성분이 풍부해 콩 물에 넣으면 단단하게 굳으며 두부가 된다. 마그네슘 이온은 소듐 이온보다 더 강한 양전하를 띠는데 콩 단백질의 음이온과 강하게 응집하며 고체처럼 단단해지는 것이다.

소금은 요리의 필수품이라는 경제적, 문화적 이유 말고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며 맛을 더해주는 백색의 겸손함으로 인해 종교적인 비유로도 자주 언급됐다. 동양의 불교, 유교, 도교나 중동 이슬람, 서구의 기독교 등 경전은 한결같이 “소금 같은 사람이 되어라”고 신자들에게 설법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소금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뉴트리노 블로그 https://blog.naver.com/neutrino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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