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고문

책에서 고아(高雅)하고 멋있는 묘사를 접하면, 밑줄을 긋고 싶어진다. ‘한국 산문의 정수(精髓)’로 알려진 소설가 상허(尙虛) 이태준의 1941년 산문집 ‘무서록(無序錄)’은 그런 표현으로 가득하다. 경북 경주 토함산 석굴암을 동틀 무렵에 오른 일을 그린 수필 ‘여명(黎明)’ 한 대목은 이렇다. ‘이윽고 공단(貢緞) 같은 짙은 어둠 위에 뿌연 환영(幻影)의 드러나심, 그 부드러운 돌 빛, 그 부드러우면서도 육중하신 어깨와 팔과 손길 놓으심, 쳐다보는 순간마다 분명히 알리시는 미소, 전신이 여명에 쪼여지실 때는 이제 막 하강하신 듯, 자리 잡는 옷자락 소리 아직 풍기시는 듯.’ 그러고 잇는다. ‘어둠은 둘레둘레 빠져나간다. 보살들의 드리운 옷 주름이 그어지고, 도틈도틈 뺨과 손등들이 드러나고, 멀리 앞산 기슭에서는 산새들이 둥지를 떠나 날아 나간다. 산등성이들이 생선 가시 같다. 동해는 아직 첩첩한 구름 갈피 속이다. 그 속에서 한 송이 연꽃처럼 여명의 영주(領主)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또 다른 수필 ‘가을꽃’에선 ‘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새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또한 명예다’ 한다. ‘흙 속에서 스며 나와 흙 위에 흐르는 물, 그러나 흙물이 아니요 정(淨)한 유리 그릇에 담긴 듯 진공 같은 물, 그런 물이 풀잎을 스치며 조각 돌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푸른 하늘 아래에 즐겁게 노래하며 흘러가고 있다’ 하는 수필 ‘물’도 있다. ‘고완품(古玩品)과 생활’에선 ‘빈 접시요 빈 병이다. 담긴 것은 떡이나 물이 아니라, 정적(靜寂)과 허무다. 그것은 이미 그릇이라기보다 한 천지요 우주다’라고 한다. ‘시는 정지용, 산문은 이태준’ 말도 듣던 그는 1946년 월북했으나. 그 전의 우(右) 성향 활동을 이유로 숙청됐다가 사망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글쓰기의 교범 격인 ‘문장강화’도 1940년 펴낸 그가 1933∼1946년에 살던 집이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11호인 성북구 성북동의 ‘수연산방(壽硯山房)’이다. 걸출한 산문들과 함께, 단편 소설집 ‘달밤’ ‘가마귀’와 장편 ‘구원의 여상’ ‘화관’ 등도 집필한 공간이다. 그의 손녀가 전통차와 인절미 등을 파는 카페로 운영 중이다. 녹음 짙은 나무에서 새소리도 들리는 계절에는 이태준 문향(文香)이 더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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