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영 기자의 오후에 읽는 도쿄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AP 연합뉴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AP 연합뉴스


60·70대가 주류인 일본 집권 자민당 파벌 정치 위주 정치가 분열음을 내고 있다. 방위비·선거구 개편·소수자 문제 등 주요 정책에서 당내 엇박자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시다 총리 장남의 총리 관저 입성 파동으로 인해 내각 지지율이 최대 12%P(마이니치(每日) 기준) 폭락하자, 기시다 총리의 장악력이 더 약해지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당 내 입지가 좁은 4위 파벌 ‘고치카이(宏池會·현재 기시다파)’의 수장인 기시다 총리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요시다 신지 의원교도연합뉴스
요시다 신지 의원교도연합뉴스


최근 파벌 싸움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건 선거구 통폐합이 예정된 혼슈 서부 야마구치(山口) 현 ‘야마구치 3구’다. 당 내 제 1위 파벌 아베파의 수장이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와 기시다파의 2인자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의 선거구가 합쳐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베 전 총리의 지역구였던 야마구치 4구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의 지역구인 야마구치 3구에 사실상 통폐합된다. 자민당은 인구가 많은 지역의 선거구를 늘리고, 유권자가 적은 지방의 선거구를 줄이는 이른바 ‘10증(增) 10감(減)’ 방침에 따라 야마구치(山口) 현 중의원 선거구가 4개에서 3개로 줄였다.

하지만 아베파와 기시다파는 나머지 한 곳인 3구를 놓고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특히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는 아베 전 총리의 지역구를 하야시 외무상에게 내주는 게 아베파에 대한 무시라고 생각해 저항감이 상당했다. 이에 아베파의 숨은 실세라 불리던 아베 전 총리의 아내인 아키에 여사는 남편의 후계자로 나온 자민당 소속 요시다 신지(吉田?次 )의원의 후원회장으로 나서며 기시다파와 사실상 전면전을 시작했다.

아베 신조(가운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6월 14일 어머니 기시 요코(왼쪽) 여사의 94번째 생일을 맞이해 부인 아키에 여사(왼쪽서 세번째), 큰형 아베 히로노부(오른쪽서 세번째), 막내동생 기시 노부오(오른쪽) 방위상 등 가족과 모여 기념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아베 신조 페이스북 캡쳐
아베 신조(가운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6월 14일 어머니 기시 요코(왼쪽) 여사의 94번째 생일을 맞이해 부인 아키에 여사(왼쪽서 세번째), 큰형 아베 히로노부(오른쪽서 세번째), 막내동생 기시 노부오(오른쪽) 방위상 등 가족과 모여 기념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아베 신조 페이스북 캡쳐


아베파와 기시다파가 이렇게 격렬하게 대립한 이유는 야마구치 현이 일본 보수·우익의 심장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야마구치 현에서는 일본 초대총리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포함해 8명의 총리를 배출했고, 선거구 모두가 ‘세습 정치인’으로 이뤄지고 있어, 일본 정치의 축소판이라고 불린다. 야마구치의 대표적인 세습정치 가문은 아베·기시 가문과 하야시 가문이다.아베·기시 가문은 아베 전 총리를 비롯, 아베 전 총리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방위상,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 사토 에이사쿠(さとうえいさく) 전 총리 등을 배출했다. 하야시 가문은 하야시 외무상의 아버지인 하야시 요시로(林義郞) 전 중의원이 야마구치 1현에 출마하며 세습의 역사를 열었다. 요시로는 본래 아베가 후원회장으로 활동해왔으나, 자기 정치를 하기 시작하며 기시·아베가와 50년 간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왔다.

8일 오후 일본 도쿄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요미우리 신문 호외를 시민에게 나눠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8일 오후 일본 도쿄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요미우리 신문 호외를 시민에게 나눠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향후 총리를 노리는 하야시 외무상도 지역구를 양보할 생각은 없다며 맞섰다. 결국 자민당은 지난 16일, 각료 경험이 풍부한 하야시 외무상을 선택했다. 요시다 의원이 비례대표로 밀려나자 아키에 여사까지 동원했던 아베파는 자존심을 구겼다. 하야시 외무상과 가까운 자민당 관계자는 “장관과 정치신인의 경험 차이가 역력한 건 당연하다”며 “총리를 목표로 하는 하야시 외무상은 큰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구 싸움으로 파벌 다툼이 표면 위로 드러난 만큼, 아베 전 총리 이후 응어리가 남아있던 자민당이 분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아베 후원회 전 회장은 “불복하지만, 당이 결정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파벌까지 끌어들인 보수 왕국의 공천 경쟁에 응어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했다.



김선영 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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