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고싶습니다 - 친구 K
나의 친구 K의 삶을 통해 지난 반세기를 회고해 본다. 그를 통해 지난 반세기를 회고하는 이유는 그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스무 가지 정도의 직업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잣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중산층 가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에야 형제 많은 것은 다반사였고 제 먹을 것은 타고난다고 했던 시대였다. 형들이 많다 보니 잘사는 형도 있었다. 그가 처음 가게를 연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 때였을 것이다. 1974년쯤인데 압구정동에서 선물 가게를 시작했다. 당시 압구정동 길은 포장이 안 된 진흙탕 길이었다. 상가의 한 코너에서 시작한 사업이 잘됐던 것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청년이 하기에는 따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1975년에 중부시장에 있던 큰형의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친구 중 제일 먼저 군대를 갔다. 1977년에 제대를 하고 나서는 강남에 있던 셋째 형의 부동산 사무실로 출근을 한다. 당시는 강남이 개발되며 복부인들의 활약이 슬슬 알려지던 때이다. 돈 있는 분들은 돈 좀 벌던 때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어 트럭을 한 대 구입해 지방으로 다니며 운수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친구 중에 맨 처음으로 장가를 간다. 상당히 어린 나이에 장가를 간 것인데 자기가 돈을 버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신혼 생활을 지금은 금싸라기 아파트가 된 개포동 1단지 주공아파트에서 시작한다. 그러다가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난 게 1982년쯤이다. 당시 이민 붐이 불었는데 하필이면 지구 반대편으로 가 반년간 슈퍼마켓에서 짐꾼을 했다.
당시 700만 원을 가지고 갔는데 아파트를 처분한 돈이었다.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가족을 불러들이려는 의도였지만 영국과의 포클랜드전쟁이 일어난다. 그는 볼리비아로 가서 3개월을 더 버티다가 귀국했다. 그리고 셋째 형과 동업한 사업이 당시 붐이 불었던 룸살롱이다. B라는 극장식 주점으로 박경희 등의 가수를 불러다 시작한 업소는 그런대로 잘되었는데 4년 결산은 부도다. 어음 깡으로 벌어진 일이다. 그는 트럭을 사서 횟감 고기를 도매로 넘기며 조그마한 송어 횟집을 방배동에 오픈했다.
그러나 한 2년 운영하더니 다른 이에게 넘기고 또 무언가를 했는데 별 재미를 못 보았고 큰형이 하던 슈퍼에서 부부가 같이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경기가 예전만은 못했다. 그것도 이삼 년하고 그는 친구 따라 의류 사업을 시작하는데 결론적으로 별 재미를 못 봤다.
그리고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자기 차가 없으니 월급 운전기사다. 그러나 이젠 몸도 예전 같지 않아 쉬기를 밥 먹듯 하니 벌이가 시원찮았다. 그는 멀리 캐나다로 갔다. 딸이 먼저 가 있는데 설거지 알바 수입도 월 300만 원은 된다며 현지 적응을 타진키 위함이다. 자주 만나진 못하겠지만 나는 가서 새 인생을 개척하라고 권유했다. 그라면 능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꿈 또한 귀국 후 접었다. 이번엔 나이 탓이다.
그때그때 어려움을 겪었지만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새 인생을 개척한 그를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버님 세대처럼 큰 전쟁을 겪지는 않았지만 힘든 세월의 부침 속에서 사업도 부침을 겪었지만, 꿋꿋이 격랑을 헤쳐 온 그이다. 또 무엇이 두려울까? 앞으로 그의 인생에서 더 이상의 곡절은 없을 것이다. 설마 있다 하더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의 용사답게 멋지게 극복해 낼 것이다. 지난 반백 년을 허리가 휘도록 힘들게 살았지만 이제 남은 세월을 편안히 쉬면서 지내라고 말했다.
비록 아내에게 고생은 시켰지만, 아들도 야구 선수로 키웠으니 뭐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이다. 그는 다른 욕심을 버리고 지금은 처남 가게에서 운송차량을 몰고 있다. 대략 훑어본 그의 지금까지의 삶인데 다른 이들 같으면 쉽게도 풀렸을 삶이 그에게는 꼬인 실타래처럼 잘 안 풀렸다. 나도 다섯 가지 정도의 직업을 거치며 생존력을 키웠는데 그는 나보다 네댓 배는 더 경험을 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인생 상담을 할 수 있는 내 친구 K 파이팅!!
친구 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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