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테스트 통한 서열화 조장
‘학원 입학 위한 학원’도 속속
사교육 저연령화의 주범 지적


“학원 ‘레테’(레벨 테스트)에 합격하려고 과외선생님을 끼고 1년을 고시 공부하듯 매달렸어요.”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H 학원 본관에서 만난 초등학교 5학년 A(12) 군은 학원 ‘레테 합격’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혹독하게 공부했는지를 토로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H 학원은 ‘안티 카페’가 있을 정도로 가혹하게 공부를 시킨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학원에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는 친구들도 많아 다행이란 생각”이라고 했다. 이날 이 같은 레테에 합격한 초등학생 10여 명은 자기 몸만큼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연신 땀을 훔치며 강의실로 향했다.

정부가 영어유치원 편법 운영 단속 강화 등 영유아, 초등생 대상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내놨지만 사교육업계에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공포 마케팅’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28일 학원가에 따르면 서울에만 16개 지점을 둔 H 학원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레벨 테스트를 치르기로 유명해 입시업계에서 이른바 ‘H 고시’로 불린다. 이 학원은 대학 입시처럼 미리 시험을 접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국 16개 지점에서 같은 날 같은 문제로 일제히 시험을 진행한다. 지난 3월 초등 과정 레벨 테스트에는 전국 초등학생 4582명이 응시해 상위누적 0.72%까지 최상위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10명 중 하위 6명의 학생은 점수 미달로 아예 입학조차 못 했다.

이 같은 레벨 테스트를 통한 학생 서열을 조장하는 ‘공포 마케팅’이 학원가에서 경쟁적으로 도입되면서 사교육을 받는 연령대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선 H 고시 같은 레테를 통과하기 위해 대비하는 학원도 있었다. ‘학원 입학을 위한 학원’ 등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과외 시장에도 레테 합격 전용 상품이 여러 개 운영되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서울, 경기도 등의 초등학교에서 중간·기말고사 같은 지필 시험이 폐지됐지만 정작 학원에선 ‘줄 세우기’가 경쟁적으로 이뤄지는 구조였다.

서열 조장이 심화하면서 영·유아 등 미취학 아동들까지 시험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서울 강남 등 영어유치원에선 ‘영재 교육 표방’을 명목으로 매주 레벨 테스트를 보는 것을 홍보하고 있었다. 대전 지역에 거주하는 30대 김모 씨는 최근 4세 딸 아이에게 과외 선생님을 붙여줬다. 아이는 기저귀 없이 대·소변을 가리고 30분 동안 부모와 떨어져서 시험을 볼 수 있는 훈련도 하고 있다고 한다. 김 씨는 “6세에 입학하려면 ‘문장’ 단위로 시험을 보는데, 5세까지는 ‘바나나는 yellow(노란색)’와 같이 단어 단위로 시험을 본다”며 “미리미리 준비해서 빨리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높은 반, 고등 교육 과정으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의 욕망구조는 서열화에서 비롯된 공포 심리에서 자극된다”고 설명했다.

권승현·전수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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