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랑합니다 - 어머니 장기순 여사
“엄마! 더운데… 스타킹 벗으세요. 요샌 다들 맨발로 다녀.” 일요일 아침, 교회에 모시고 가려고 엄마 집에 들렀습니다. 오늘도 엄마는 나갈 채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발이 숭(흉)해서….” 괜찮다는 딸들 말에, 마지못해 스타킹을 벗고 크림 바른 손으로 두 발을 문지르십니다. 색이 변하고, 울퉁불퉁 두꺼워진 발톱….
아버지는 수년간의 투병 끝에 마흔 중반에 세상을 등지셨습니다. 엄마가 서른아홉 되시던 해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니들 아빠가 죽고 나니까, 나는 모르는 빚쟁이들과 올망졸망한 자식 여섯만 남아있더라. 어떻게든 내 새끼들 공부시키고 잘 먹일 생각밖에 안 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바로 장삿길로 나섰습니다. 처음엔 미역이며 생강 등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파셨습니다. 요새같이 더운 여름엔, 머리에 물건을 이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다 보면, 땀에 전 웃옷에 허옇게 소금기가 배어났다고 합니다. 지금도 자식들보다 숫자 계산이 빠르신 엄마는 그 영민함과 배포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전라도 한 도매시장에 상가를 마련해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막 문을 연 시장이어서 주변 사람 모두 말렸지만, “그냥 있는 것만 하면 편안하지만, 발전은 없을 것 같아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행상에서 시장 좌판으로, 그리고 아래대를 상대하는 큰 손이 되셨습니다.
장사를 그만둔 지 15년이 넘었지만, 엄마는 지금도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2시면 일어나십니다. 두어 달 전에는 건조대에 걸린 엄마의 낡은 속옷 때문에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서랍장 속에 쌓아놓은 새 옷들은 언제 입으려고 아끼시느냐? 제발 새것 좀 입으시라. 아껴야 새것도 있는 것이다, 100만 원에서 10원만 빼도 100만 원이 아니다, 단돈 1000원씩이라도 저축하며 살아라. 때론 이런저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자식들에게 엄마는 질책하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습니다. 놀랄 정도로 차분하게 대처하시는 모습을 보면 맘이 한결 가벼워지곤 합니다. 아들아이의 사춘기 시절, 아이와 기 싸움을 하는 제 모습을 보시곤 “애(어)미는 늘 따스운 햇살과 같아야 한다. 그 거무(거미) 만한 어린 것이 누구를 의지하고 살겄냐? 애미가 냉랭하면 어린 것은 정처가 없어져. 그리 만들면 안 돼야!”
지난겨울, 딸 다섯이 엄마를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우린 닷새 동안 한방에서 지냈습니다. 여행 일정을 맡은 막내가 어릴 때처럼 모두 한 이불 속에서 장난치며 이야기하고 싶어서 큰 방 하나만 예약했다고 하더군요.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운 첫날엔 너무너무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 옛날 시골 안방에 누워 그랬던 것처럼 밤새 엄마에게 재잘댔습니다. 하루 저녁엔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엄마가 우리를 위해 장사하느라 고생하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너무 바쁜 엄마 때문에 외로웠다.” 막내가 처음 털어놓는 속내입니다. 우리 6남매는 바쁜 엄마 대신 할머니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엄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미안하다. 자식들 잘 먹이고 공부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너무 돈 버는 데만 신경을 쓴 거 같구나. 그리고 고맙다. 하나도 비뚤어 나가지 않고 잘 커 줘서.” 돌아누운 언니도, 동생도, 나도 엄마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참았습니다.
발가락 나오는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현관을 나서시는 엄마. 돌아오는 주말에는 숍에 모시고 가 발톱도 다듬고, 예쁘게 페디큐어도 해드려야겠습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오래오래 우리들 곁에 계셔주세요.
박영순 한국장애인개발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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