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구속영장 기각률 20% 육박
증거인멸·도주 가능성 낮으면
중대한 혐의에도 잇단 불구속
檢 “발부 기준 너무 까다로워
국민 눈높이 맞는 실질심사를”
법원 “원칙따라 구속여부 결정”
유죄가 인정될 경우 실형이 충분히 예상되고, 불구속 수사 시 피해자를 접촉해 위해할 우려가 있는 사건 등에서 최근 구속영장 기각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 전국 법원 구속영장 기각률도 올해 들어 2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에서는 “법원이 구속 요건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보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하지만 법원은 “영장 실질심사 원칙에 맞춰 구속 여부가 이뤄진다”고 반박한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지숙 서울남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추천해 5억여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A 씨의 구속영장을 지난 11일 기각했다. 김 부장판사는 “혐의 내용이 중하지만 불구속 수사 원칙,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와 수사 경과 등을 보면 도주와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안이 중대해도 도주 및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낮으면 불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규훈 인천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지난 10일 주차 문제로 여성을 폭행해 갈비뼈를 골절시킨 전직 보디빌더 B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피해자 보호 등을 고려해야 하는 사건이었지만,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건에서도 구속영장 기각 사례가 눈에 띄고 있다. 이른바 ‘50억 클럽’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영수 전 특별검사,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탈옥 시도를 도운 혐의를 받은 누나 김모 씨도 구속을 피했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전국 법원은 올 5월까지 청구된 1만800건의 구속영장 가운데 2097건을 기각해 약 19.4%의 기각률을 보였다. 지난해 18.6%, 2021년 17.8%보다 높아지는 추세다.
검찰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속영장 기각이 너무 많다고 불만이 나오고 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사실관계가 확실하고 실형이 예상되면 사안의 중대성을 이유로 구속영장이 나왔다”며 “최근에 국민 법감정에 맞지 않는 기각 사례가 다수 있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은 구속의 사유로 증거 인멸과 도망의 염려 등을 명시하면서 범죄의 중대성, 피해자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무죄 추정 원칙과 피의자의 방어권 등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영장 실질심사 원칙에 맞춰 구속 여부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법원의 압수수색영장 심문 제도 도입 움직임 등을 봤을 때 법원에서 검찰을 견제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검사 출신들이 정부에 다수 등용되는 것 등이 법원 내부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현웅 기자 leehw@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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