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정병호·왼쪽)이 1982년 회갑연을 마친 후 고교 3학년이었던 큰아들(정찬성)과 기념촬영을 했다.
장인(정병호·왼쪽)이 1982년 회갑연을 마친 후 고교 3학년이었던 큰아들(정찬성)과 기념촬영을 했다.


■ 그립습니다 - 정병호(1922 ~ 1985)

내 나이 스물아홉에 스물여섯 천생배필을 만나 지금껏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지내온 지 어느덧 올해로 30년째다. 그 사이 우리를 닮은 아들과 딸도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잘 자라주었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그런데 내 가슴속 깊은 곳엔 늘 지금의 행복을 가꿀 수 있게 해주신 그리운 한 분이 계신다.

내가 한 번도 뵙지 못한 장인어른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고아나 마찬가지로 자랐다고 한다. 가정의 따스함을 늘 그리워했던 장인어른은 늦은 나이에 장모님을 만나 6남매를 낳고 행복해하셨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농사일이었지만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이웃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셨고 자식들에게 한없이 다정다감한 분이셨다.

추운 겨울날이면 손수 밀가루 반죽을 하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찐빵을 만들어 놓으셨다. 1시간 넘는 거리를 걸어서 온몸이 꽁꽁 언 채로 학교에서 돌아오는 자식들에게 뜨끈뜨끈하고 먹음직스러운 찐빵을 내주면서 자식들이 호호 불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마냥 기쁘게 바라보곤 하셨다. 아버지의 이런 보살핌으로 형제들 모두 행복하고 정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랄 수 있었다.

뜨거웠던 1985년 여름, 아내가 고1 때 장인어른은 큰 사고가 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사고가 나기 며칠 전 아내는 사고를 예견한 불길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애써 꿈은 현실과 반대라고 생각하면서 혼자서만 끙끙 앓았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공교롭게 사흘 후 장인어른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셨다. 아내는 자신의 꿈 탓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에 심한 충격을 받았고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무엇을 해도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를 너무 좋아했던 아내의 소박한 소원은 그분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돌아가신 장인어른께서도 생전에 아내에게 “순옥이만큼은 내가 고르고 골라서 좋은 신랑에게 시집 보낼 거야”라고 말씀하곤 하셨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후 아내는 나를 만나기 전에 세 번의 선을 봤다. 그런데 생전 장인어른과의 약속 때문이었는지 선을 보기 전날 밤이면 아버지가 아내의 꿈속 상견례장에 나타나 상대편 신랑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무 말씀도 안 하고 그냥 뒤돌아 가셨다. 어김없이 세 번 모두 그렇게 꿈속에 나타나셨다. 학창 시절 아버지의 사고를 잊지 못하고 있던 아내는 선을 볼 때마다 나타나는 아버지의 선몽을 예사롭게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나를 만나기로 한 전날 밤엔 찾던 신랑감이라 생각이 들었는지 꿈에 나타나지 않으셨다. 나로서는 쑥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아내는 그걸 아버지의 승낙이라고 여겼다.

아내는 훗날 내게 고백했다. 내가 좋아서 결혼했지만, 사실은 자상하고 인자하신 시아버님을 보고 내가 더 맘에 들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항상 그 품이 그리웠고 못다 부른 아버지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원 없이 부르고 싶었다고 한다.

평생의 배필을 만나게 해주신 장인어른이 고맙고 그립다. 나를 선택(?)하신 것에 대해서도 은혜를 갚을 것이다. 우리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지키는 것이 장인어른께 보답하는 길이리라. 이제 곧 장인어른의 기일이 다가온다. “아버님, 좋은 인연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나 뵙고 싶습니다. 제가 아버님 몫까지 따님 잘 챙기고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사위 김용만(한국기자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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