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태재대 총장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태재관 로비에서 교육 혁신을 상징하는 문구 ‘더 넥스트 앤서’의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염 총장은 대한민국의 교육이 과거 산업화시대의 틀에서 벗어나 자율성과 창의성을 키우는 미래형 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윤슬 기자
염재호 태재대 총장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태재관 로비에서 교육 혁신을 상징하는 문구 ‘더 넥스트 앤서’의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염 총장은 대한민국의 교육이 과거 산업화시대의 틀에서 벗어나 자율성과 창의성을 키우는 미래형 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윤슬 기자


■ 파워인터뷰 - 염재호 태재대 초대 총장

과거엔 SKY 나오면 평생 양반
20세기 지식주입해 먹고 살지만
21세기엔 학력보다 재능 중요

수능은 수학 능력만 보는 시험
지역대학들까지 서열화 시키듯
점수화해 ‘포기자’만들면 안돼

50년 된 장학퀴즈도 바뀌어야
검색하면 될 걸 왜 머리에 넣나
차라리 1박2일 그룹 미션 하길


인터뷰 = 이용권 사회부 차장

대한민국의 교육열. 한때 한국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세계적 관심사였지만, 현재는 대한민국 교육을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치맛바람으로 대표되는 어머니들의 잘못된 교육열을 이 시대 교육의 시급한 개선과제라고 했다. 염 총장은 “엄마들이 자녀를 공부 기계로 만들려고 한다”며 “공부 잘하는 기계를 만들어 봤자 컴퓨터를 못 따라간다”고 했다. 챗GPT 등 첨단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미래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개인의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지식암기 위주의 교육을 강요하는 건 부모들의 책임이 크다는 의미다. 염 총장은 그들이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잘못된 교육관을 갖도록 유도하는 사교육 시장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염 총장은 2015∼2019년 고려대 총장을 지내며 심층면접 선발과 ‘출석부, 상대평가, 시험감독’ 등을 없애는 3무(無) 정책 등의 교육 혁신을 시도했던 교육자다. 지난 11일 염 총장을 서울 종로구 태재관에서 만났다. 그가 초대 총장을 맡은 태재대는 캠퍼스 없이 온라인으로 토론 수업을 하는 21세기형 혁신 대학이다.

―고려대 총장을 지냈는데, 다시 태재대다. 이유가 있나.

“이제 전통적인 방식의 대학 운영은 한계다. 현재 대학의 틀은 20세기에 만들어진 건데, 당시는 대량 생산 체제를 위해서 세분화된 전공을 효율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가르쳤다. 그런데 21세기는 맞춤형 시대로 바뀌었다. 과거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개념들은 컴퓨터나 자동화 시스템으로 하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데 아직도 교육은 그걸 못하고 있다. 요즘 ‘공부 잘하는 기계를 만들어 봤자 컴퓨터를 못 따라간다’는 말을 자주 한다. 우리가 아무리 달리기를 잘해도 자동차 못 따라간다. 근데 교육은 여전히 그걸 가르치고 있다. ‘달리기 잘하면 자동차보다 빨리 달릴 수 있어, 해봐.’ 근데 그럴 필요가 없다. 자동차는 그냥 타고 가면 된다. 그런 개념으로 새로운 걸 해야 하는데, 아직도 전공 중심이다. 태재대가 새로운 형태의 대학으로서 우리나라 고등 교육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메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방식의 새로운 대학이 필요한가.

“저는 학부하고 대학원을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학년 때 보통 교양 과정을 보면 국어, 영어, 수학, 물리, 화학 등을 가르친다. 그런데 1학년 때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전공은 3∼4학년 때 하더라도 자기가 어떤 적성에 맞는지를 테스트하고, 그다음에 제대로 된 전공을 하는 거다. 우리는 리더가 가져야 할 기본 역량을 교과목으로 가르친다. 개인의 역량 세 가지, 사회적 역량 세 가지다. 개인 역량 세 가지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 두 번째가 창의적 사고, 세 번째가 자기주도학습이다. 사회적 역량에서는 소통과 협력, 다양성과 공감, 글로벌 화합과 지속가능성 등이다. 이런 이슈들을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거다. 이를 기본으로 전공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다. (대학들의) 학부에서는 이런 교육이 돼야 한다.”

―대학이 변해도, 대입 체제에 맞춰진 초·중등 교육은 그대로다.

“제가 고려대에서도 수능으로 안 뽑고 면접으로 뽑았다. 1인당 15분 이상 심층면접 해보면 어떤 학생인지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대구교육청은 토론식 수업을 많이 늘렸다. 고등학교 때부터라도 본인 생각을 계발할 수 있게 훈련해야 한다. 유명한 이야기도 있지 않나. 케네디 가문의 로즈 케네디는 식탁에서 항상 자녀들에게 토론하게 했다. 저는 엄마들, 젊은 부모들이 무엇을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보면 ‘TV 뉴스 같이 봐라, 토론해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런 훈련을 하나도 안 받고 그냥 외운 것만 말한다. 이번에 장학퀴즈가 50년 됐다. 올해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의견을 물어봐서 없애라고 했다. 퀴즈들이 스마트폰으로 20초 검색만 하면 다 맞힐 수 있는 시대인데, 왜 머리에 넣어 가지고 다니나. 그거 잘하는 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나. 차라리 1박 2일 미션을 통해 어떤 그룹이 창의적으로 잘하는지 보여주는 게 더 의미 있다고 했다.”

―모두가 창의적 교육을 원하고 사교육은 원치 않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걸 못하고 있는 이유가 결국 틀을 안 바꾸고 말만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과 같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1990년대부터 팀제로 다 바뀌었다. 그런데 팀으로 일하지 않는다. 팀이라는 건 문제 해결형 조직이다. 미션을 혼자서 못 하니까 팀으로 같이 푸는 거다. 풀고 나면 그다음 프로젝트를 하는 게 팀이다. 근데 우리는 총무과는 총무팀, 회계과는 회계팀으로, 예전에 있던 업무 그대로 하고 이름만 팀으로 바꿨다. 교육도 창의적인 것이 필요하다. 근데 수능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창의적이 되겠나. 대치동 가서 테크닉을 배울 수밖에 없게 된다. 이건 국가가 관리해서 그렇다. 우리나라 지역 대학들 거의 90%가 소위 SKY 대학과 똑같은 형태로 돼 있다. 예를 들면 문과대학, 종합대학 등 틀이 다 똑같다. 다 똑같으면 순서가 정해진다. 지역 대학은 완전히 달라야 한다. 한서대를 보면 활주로도 있고 항공기도 보유해 파일럿을 육성한다. 등록금을 많이 받아도, 지역에 있어도 경쟁력을 갖추고 살아남는다. 그런데 SKY와 같은 불문과, 독문과 갖춰 놓은 대학들은 점점 없어진다. 똑같아지면 당연히 줄을 서는 거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태재관 집무실에서 정부는 교육 개혁을 주도하기보다는 교육 현장이 창의적이고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간접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염재호 태재대 총장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태재관 집무실에서 정부는 교육 개혁을 주도하기보다는 교육 현장이 창의적이고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간접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교육개혁, 왜 정부가 정답 갖고 있다 생각하나… 자율에 맡겨라”

교육 개혁, 사교육 시스템처럼
정부가 정답인양 나서선 안돼
즐기는 것 하면서 돈 버는 세상
대학보다 학부모 먼저 변해야

초등부터 ‘의대 열풍’ 안타까워
의사도 “청진기 사라진다” 예언
돈 벌기 위해 간다면 잘못 선택

외국선 출석률로 우수성 안따져
외워서 시험 잘 보는 학생보다
프로젝트 잘 하는 학생 키워야


―대학부터 변하면 되는 건가?

“아니다. 제일 먼저 변해야 하는 건 엄마들이다. 엄마들이 자녀를 컴퓨터 하고 경쟁하는 공부 기계로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서울대 나와도 결국엔 다 똑같다. 사실은 성공하고, 굴지의 대기업 CEO 되는 사람은 SKY 나온 사람이 아니고 성격 좋고 리더십 있는 사람이다. 1970년대 좋은 대학 나오면 평생 잘 먹고 잘살 것 같다는 그 개념을, 21세기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대기업들은 그렇게 뽑지 않는다. 공채 없어진 거 아시나? 지금은 대졸 신입사원 뽑지 않는다. 엄마들은 아직도 30년 전 본인 대학 다닐 때 생각하는 거다. 자녀들은 지금이 아니고 30년 후를 사는데도 말이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는데 아직도 예전 생각에 머물러 있다.”

―현재의 의대 열풍은 어떻게 보나.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일단 독점이다. 인원을 독점 제한하는 것. 두 번째는 30년 뒤에 어떻게 바뀔지 생각하지 못하는 거다. 제가 의대 본과생들에게 특강할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미국 10위 안에 들어가는 논문 잘 쓰는 심장외과의가 쓴 책이 두 권이 있다. 하나는 청진기가 사라진다. 두 번째는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다. 앞으로 의료 체계가 완전히 바뀔 거다. 이제는 환자가 의사를 판단한다. 이미 (의사 정보를) 다 찾아보고 간다. 예를 들면 지금 인기과인 영상의학과 10년 뒤면 사라질 수 있다. 디지털 인공지능(AI)이 판독한다. (의대 열풍)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의대 가는 친구들도 앞으로 20년 뒤면 완전 달라질 거다. 죽어가는 사람을 고치기 위해 의대 가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다고 하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잘못 잡았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챗 GPT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는 어떻게 되나.

“교육 자체가 일단 바뀔 거다. 제러미 리프킨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아직도 20세기 산업사회의 사회적 유전자를 가지고 살아서 문제라고 했다. 예를 들어, ‘꼭 취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 취업을 해야 한다는 건 인류역사에서 100∼150년에 불과하다. 1940년대 말 미국도 주 70시간 근무했다. 지금 유럽은 30시간이다. 주 4일 근무제가 10년 안에 우리나라에도 올 거다. 주 3일 근무 아니면 일주일에 회사에서 한 20시간만 일하는 것으로 바뀔 거다. 그래도 충분하다. 머리만 쓰면 된다. 그럼 뭐하고 사냐고? 그림도 그리고 색소폰 불고, 하고 싶은 거 하는 거다. 제조업 시대나 산업사회의 시대가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이어아키(Hierarchy)가 있고 거기 들어가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거 같고…, 이는 불쌍하게 애들을 키우려는 거다. 예전에 김수현 씨가 쓴 드라마 중에 아버지가 의사인데 아들이 편의점에서 맨날 아르바이트만 하고 대학도 안 갔다. 뭐할 거냐 했더니 돈 모아서 여행 다니면서 여행기 써서 먹고살 거라고 했다.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그랬는데 이젠 그게 가능한 시대다. 블로그, 유튜브 등으로 자기가 즐기는 걸 해도 돈이 된다. 시대가 이렇게 바뀌는데 20세기 산업화 시대 사고를 못 깨고 있다.”

―왜 깨지 못하는 걸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온 사회적 DNA를 쉽게 못 바꾼다. 두 번째는 굉장히 조심스러운데 우리나라의 사교육이 기업화되면서 비즈니스를 잘하기 때문이다. 마술 피리를 잘 불어 사교육 안 하면 죽는 줄 알고 다들 나방처럼 간다. 게임 좋아하고 공부에 관심 없다는 남학생 부모가 조언을 구해오면 내버려두고 군대만 보내라고 한다. 고졸로 살아도 요즘은 잘 산다. 군대 갔다 와서 공부하겠다는 학생도 있다. 2∼3년만 준비하면 SKY 다 들어갈 수 있다.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지 않고, 본인의 동기가 없어서 하지 않았던 거다. 유치원에서부터 아이를 달달 볶아 엄마하고 원수가 된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전문대에 가면 포기하는 엄마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다. 그냥 내버려 두고 스스로 알아서 개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모들이 대학 가서 놀라고 하는 것도 잘못됐다. 아이들이 대학을 노는 데인 줄 안다. 인생에서 최고의 절정기에 놀면서 등록금을 버리는 거다. 이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대학이 어떤 곳이어야 하나. 현재는 취업 양성소 같은 느낌이 강하다.

“학생들이 계속 공부만 하고 경쟁만 하다 보니까 회사도 경쟁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올 A 받으면 취업이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점점 바뀌고 있다. 학점은 안 본다. 구글 같은 데는 3∼4일 동안 같이 살아보면서 면접해 어떤 사람인지를 본다. 우리도 중소기업이나 다른 회사에서 검증돼 있는 애들을 뽑는다. 경력상으로는 학생이 올 A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근데 엄마들도 저러면 잘 가겠지 생각하는 거다. 물론 잘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적응하지 못해서 나가는 경우가 많다. 과잉해석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엔 아직도 양반 신분제 영향이 많은 것 같다. 고시만 되면, SKY만 나오면 나는 이제 평생 양반이고, 그럼 평생 잘 먹고 잘살 거라는 믿음은 잘못된 인식이다. 인생이 100년인데 18세에 어떻게 인생을 결정짓나. 지금은 그게 아니다. 세상이 바뀌었다.”

―대학 교육 체제는 어떤가?

“교육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에서 출석 부르는 데가 우리나라밖에 없다. 교환 학생으로 온 외국 학생들이 왜 쓸데없이 5∼10분씩 매일 출석을 부르냐고 묻는다. 요즘 프로젝트도 많이 하는데, 프로젝트 잘하는 학생이 우수한 거지, 매일 선생님 농담 적는 학생이 우수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가 다녔던 스탠퍼드대는 교수가 시험 감독을 못 하게 돼 있다. 학생들은 시험을 정직하게 치르겠다는 명예 선서에 서명하고 시험을 본다. 미국의 리더가 될 학생들을 감시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학생이 책을 보고 시험을 봤다고 항의해도 처벌을 못 하게 돼 있다. 생각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하지 않고 책을 보고 쓸 수 있는 문제를 냈다는 것이 잘못됐다는 의미다. 시스템이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외워서 중간고사·기말고사를 본다.”

―수능을 보는 대학 입시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수능) 없애야 한다. 저희 때도 예비고사였는데 수능은 수학할 수 있는지, 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지 정도로 검정고시처럼 하면 된다. 검정고시에서 100점 받았다, 98점 받았다고 해서 훨씬 똑똑한 학생은 아니지 않나. 수능도 수학 능력만 보면 되는데, 어느 순간 국가가 독점해서 점수화해 전국의 학생들을 줄 세워 놓으면서, 밑에 있는 학생들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왜 그런 것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게 무슨 능력인가. 그럼 대치동 가서 수능 훈련받은 학생과 시골에서 한 번도 사교육 받지 않은 학생이랑 누구를 뽑아야 하나. 논의해 봤더니 과학고 나온 애들 많이 뽑자고 이공계 선생님들이 그러는데,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고 학생들은 카이스트나 서울대 못 가서 본인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들어와서 똑같이 가르치니, 물리·화학은 이미 배운 거라 재미도 없어 하고 놀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부터 한 번 놀던 버릇이 있어서 졸업할 때까지 계속 논다. 근데 시골에서 학교장 추천을 받고 온 학생들은 열심히 한다. 그럼 우리는 누구를 뽑아야 되느냐. 잠재력을 보고 원석을 뽑는다. 그래서 대학들을 내버려 두라는 거다. 만약 대학이 이상한 학생을 뽑거나, 뒷돈을 받고 뽑는다 그러면 그 학교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아웃된다.”

―정부가 교육 개혁의 칼을 빼들었는데.

“개발도상국일 때는 정답을 가지고서 끌고 가면 됐다. 지금은 정부가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아직도 정답을 주려고 한다. 사교육 시장과 같다. 정답만 맞히게 하려고 한다. 내가 하면 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왜 정부가 정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정부가 나설 필요 없다. 오히려 정부는 에코 시스템, 간접적인 환경을 잘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이런 걸 만들어주지 않고 지금도 나서서 끌고 가려고 한다. 꼭 과외 시키는 엄마와 같다.”

―그럼 정부는 교육 현장을 자율에 맡겨야 하나.

“그렇다. 사실은 전 세계에서 사립대학이 이렇게 많은 나라는 한국, 일본, 미국밖에 없다. 다른 나라들은 고등 교육을 모두 정부가 투자해 국립으로 운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정부가 돈과 힘이 없으니, 독지가들이 비용을 내 사립학교를 세워 나라를 키운 거다. 그런데 이제 와 정부가 컨트롤하려는 거다. 미국은 헌법적 가치에서 교육을 받을 권리는 기본권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더 내고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좋은 사립대학이 있는 것이고, 아이비리그 등록금이 7만∼8만 달러다. 1억 원에 달한다. 내가 스스로 돈 내서 더 많은 교육을 받겠다는데 못하게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독지가들이 투자해 설립한 사립대학들도 이제는 다 똑같이 공립화하려고 하고, 국가가 개입하고 모든 것을 컨트롤하려고 한다. 교육부가 미래 지향적이지 않고, 과거 지향적이다. 지금은 비판을 많이 받아서, 바뀐다고 그러는데 모르겠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에듀케이션(education)의 어원이 라틴어 educere다. 밖으로 내보내다, 이끌어내다는 의미다. 교육은 끌어내는 거지 집어넣는 게 아니다. 20세기에서는 대량 생산 체제이기 때문에 정형화된 지식을 집어넣으면 그거 가지고 30년 먹고 살았지만, 이제 21세기에는 교육의 본질로 돌아와야 한다. 각자 가진 탤런트를 이끌어내야 된다. 옛날에는 한 반에 60∼90명 콩나물 교실이었으니 그것을 못 했지만, 지금 우리나라 초·중·고는 교사당 학생이 17명이다. 핀란드에서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똑같은 시험 문제로 테스트하는 게 법으로 금지돼 있다. 왜냐면 각자 다르니까. 지금 잘하는 애들이 있고 고3 가서 잘하는 애들이 있다. 핀란드에 물어봤더니, 학기 초에 선생님이 학생과 1 대 1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현재 상태에서 약속한다고 하더라. 그리고 연말에 그걸 성취한 학생은 A, 못한 학생은 B나 C를 준다. 똑같이 자로 재는 게 아니라 각자 다르게… 교육은 그래야 한다.”

고려대 총장 시절부터 교육혁신 고민 … 대선후보 토론회 진행으로 익숙

■ 염 총장은…


염재호 태재대 초대 총장은 시대 흐름을 앞서 읽고 이를 고등교육의 내용·제도 개선으로 연결시켜 온 학계 리더로 꼽힌다. “21세기가 문명사적 전환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해 온 염 총장은 태재대에서 이에 발맞춘 전방위적 교육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염 총장은 지난 1990년부터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행정학·정치학을 가르치다가 2015년 고려대 19대 총장에 올랐다. 더불어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 한국과학재단 이사, 서울연구원 이사 등 고등교육 업무에 꾸준히 매진해오다가 올해부터 태재대까지 이끌게 됐다. 이뿐만 아니라 2019년 SK 이사회 의장 등을 역임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한 모델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대중에게는 2002년 KBS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 합동토론회에서 진행을 맡은 것을 계기로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이후 2003년 ‘염재호 교수의 시사진단’ 등 다수의 TV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염 총장은 오는 9월 태재대 개교를 앞두고 각종 대외 활동으로 분주하게 보내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염 총장은 “한 달에 평균 30권의 책을 사고 최소 3권이상 읽는다”면서 “나에게 공부는 ‘노동’이 아니고 ‘호기심’이어서 지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염 총장은 최근 태재대 교직원 등으로 구성된 북 클럽에서 넷플릭스 조직 문화와 관련된 책을 읽었다면서 “내가 몸담은 조직의 문화를 바꿀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고 실무자들과 토론도 하면서 현실로 연계시켜나간다”고 덧붙였다.

염 총장을 안팎에서 보좌해온 고려대·태재대 교직원들이 그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움직이는 리더”로 평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늘 분주한 염 총장이지만 실은 무엇보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주중 업무 시간에는 서울에 주로 머물지만 여가 시간은 30년 전에 경기 가평에 지은 시골집에서 보낸다”고 소개한 염 총장은 “목요일 밤부터는 시골집에 내려가 푹 쉬면서 책 읽고 생각을 정리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법과대학 행정학과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일본 와세다대 명예 법학 박사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고려대 19대 총장 △한국정책학회 회장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장 △한국과학재단 이사 △한일미래포럼 대표 △SK㈜ 이사회 의장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 △태재대 초대 총장

9월 문여는 ‘하이브리드 오픈캠퍼스’… 서울·뉴욕 등서 프로젝트 수행

■ 태재대는…


‘더 넥스트 앤서(the next answer)’. 21세기형 대학을 표방하는 태재대가 공식 홈페이지 가장 첫 화면에 띄운 문구다. 국내에서 11년 만에 탄생한 4년제 사립대학인 태재대는 오는 9월 정식 개교를 앞두고 있다.

태재대는 과거 대량생산 체제의 교육에서 벗어나 21세기형 교육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계획이다.

먼저 태재대에서는 기숙사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메타버스 캠퍼스를 통해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게 된다. 다만 교수의 일방적인 지식 전달식 강의는 최소화하고 토론이나 프로젝트 중심으로 꾸린다는 방침이다. 강의는 모두 정원 20명 이하의 소규모로 진행되는데 교수와 학생 모두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 염재호 총장은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모든 강의를 녹화하고 학생 발언 시간, 참여도 등을 그래프로 만들어 개개인에게 피드백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기숙사에 머문다고 해서 국내에 발이 묶여있는 것도 아니다. 학생들은 2학년 2학기부터 서울을 거점으로 뉴욕, 홍콩, 도쿄, 모스크바 등에서 각각 1학기씩 머물며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일명 온·오프라인을 오가는 ‘하이브리드(hybrid·혼합)형 오픈캠퍼스’다.

교육과정도 기존 대학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1학년은 정해진 전공에 갇히지 않고 태재대가 추구하는 인재상에 맞는 6대 핵심역량(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자기주도학습, 소통·협력, 다양성·공감, 글로벌 화합·지속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훈련을 받게 된다. 이후 2학년에 올라가 혁신기초학부·인문사회학부·자연과학부·데이터과학과 인공지능학부·비즈니스혁신학부 중 전공을 선택해 심화 과정을 학습한다.

태재대는 교수의 역량 강화를 위해 3년마다 교수 업적평가를 하고 이에 근거해 재계약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등록금은 연간 900만 원 수준이지만 국가 장학금 5분위 이하에 해당하는 학생에게는 전액 장학금이 지원된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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