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간 200억 원이 넘는 기부를 실천해 국세청으로부터 ‘아름다운 납세자상’을 받은 박흥석 럭키산업 회장이 광주 광산구 하남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실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문호남 기자
지난 50년간 200억 원이 넘는 기부를 실천해 국세청으로부터 ‘아름다운 납세자상’을 받은 박흥석 럭키산업 회장이 광주 광산구 하남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실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문호남 기자


■ M 인터뷰 - ‘아름다운 납세자상’ 받은 박흥석 럭키산업 회장

1972년 ‘흥국상사’ 창업하며
‘조금씩이라도’ 원칙 세운 뒤로
비싼 밥·술 먹을 돈 아껴 기부

심장병 아동 성금 전달로 시작
50년째 소년·소녀가장 등 후원
돈은 돌고 도는 것…나눌때 행복

가족에게도 ‘주위 살펴라’ 강조
‘아너 소사이어티’ 자녀도 나와
감사 편지 읽을 때 큰 보람 느껴


인터뷰 = 김대우 전국부 차장 ksh430@munhwa.com

“소년·소녀 가장들이 돈이 없어 밥을 굶고 있다거나 공부를 못 하고 있다고 하면 마음이 짠해 5만 원도 주고 10만 원도 주고 하던 것이 어느덧 50년이 됐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기부를 멈추지 않을 겁니다.”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아름다운 납세자상’을 받은 박흥석(78) 럭키산업 회장. 그는 1973년 수술비가 모자란 심장병 어린이에게 성금을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5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기부를 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받았다. 1972년 12월 슈퍼마켓 유통업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으니 만 1년이 안 돼서부터 기부를 실천한 셈이다.

지난 21일 광주 광산구 하남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실에서 만난 박 회장은 “아이고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남들에게 알리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며 인터뷰 요청에 거듭 손사래를 쳤다. 그냥 차나 한잔하자며 마주 앉은 것이 자연스레 이런저런 문답으로 이어졌다. 박 회장은 얼마를 기부하겠다고 미리 액수를 정해놓지 않는다.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고 하면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열어 몇 십만 원이든 수억 원이든 형편에 따라 기부 가능한 금액을 내놓는다. 지금까지 그렇게 기부한 금액이 2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지난 50년간 부인에게 “가족들과 집안 살림은 신경 안 쓰고 남들 후원만 한다”는 타박을 들어왔지만 그의 기부 실천은 팔순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납세자상을 받은 소감은.

“대통령 표창도 받아보고 국무총리상, 동탑산업훈장 등 수없이 많은 상들을 받아봤지만 국세청으로부터 아름다운 납세자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기부를 해온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상 받는 것을 거부했지만 국세청의 간곡한 부탁으로 시상식에 참석했더니 나도 알지 못하는 과거의 기부 사례 등을 영상으로 틀어주며 ‘헤비급 기부천사’라고 극진하게 예우를 해줬다. 그 어떤 상을 받았을 때보다 의미가 있고 기분이 좋았다.”

―기부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1972년 28살에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슈퍼마켓에 라면 등 생필품을 납품하는 유통업이었는데 이름의 첫 글자를 따 상호를 흥국상사라고 지었다. 구멍가게 수준이었지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이익이 나면 조금씩이라도 기부를 하자고 원칙을 정했다. 그 원칙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모두가 어렵게 살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에서조차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 골목길 도로포장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 포에 1500원 하던 시멘트를 5포씩, 10포씩 기부를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1970∼1980년대에는 소년·소녀 가장들도 굉장히 많았다. 당시 거주지였던 광주 북구에서 확인된 소년·소녀 가장만 300가구가 넘었다. 초등학생 가장이 몸이 아픈데도 돈이 없어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그냥 있을 수가 없어 매년 생활보조금을 주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50년 동안 기부를 실천하게 됐다.”

―기부를 해오는 동안 가족들의 반대도 있었을 것 같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하는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장학금을 50만 원·100만 원씩 주곤 했는데 그게 지역신문에 나면서 곳곳에서 후원 요청이 들어와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특히 부인이 아이들과 집안을 내팽개치고 기부에만 신경 쓴다며 타박을 해 이해시키느라 고생 좀 했다. 그 이후론 될 수 있으면 알려지지 않게 조용한 기부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한번은 어떻게 알았는지 무슨 활동을 하는 단체인지도 몰랐던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회장직을 맡아달라고 해 얼떨결에 2대 회장을 하게 됐고, 그것을 계기로 우리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기부 활동을 더 열심히 하고 있다.”

―기부에 대한 철학이 있는가.

“돈은 돌고 도는 것이지 영원히 나의 것이 아니다. 행복이라는 것이 따로 있지 않다. 10만 원짜리 밥 먹을 돈으로 만 원짜리 밥 먹고 나머지를 기부하면 그게 나에겐 행복이다.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지금도 고급 요릿집이나 술집에 가는 걸 꺼린다. 그 돈을 아껴 기부하자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눔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한 사람이 큰 금액을 기부하는 것보다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 다 함께 나눔에 동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이 어느 정도 되나.

“기부를 얼마 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워 놓고 하지는 않는다. 예금이자나 주식 등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수시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는 식이다 보니 정확히 얼마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매년 4억 원에서 5억 원은 하는 것 같다. 자녀들 결혼식이 있거나 하는 해에는 들어온 축의금에 그만큼의 사비를 보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온 기부가 지금까지 200억 원은 족히 넘을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 회장, 광주은행 장학회 이사 등 유독 남을 돕는 일에 열정적인 것 같다.

“남을 도우면 행복하다. 무엇을 얻는 것 이상으로 마음이 편안하다. 열심히 사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고 주변을 위하는 것이고 사회를 위하는 것이다. 비싼 밥 먹고 비싼 술집 다니는 게 행복이 아니다. 앞으로도 주위를 둘러보며 도움의 손길을 건네며 살고 싶다.”

―기부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꼈는가.

“내가 준 장학금으로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이 ‘사장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돼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편지를 써 자주 보내온다. 편지를 읽을 때마다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큰 보람을 느낀다. 시간이 많이 흘러 판검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성공한 사업가가 돼 찾아온 이들도 있다. 지금은 그 사람들이 소년·소녀 가장 장학 사업 등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자신들이 받은 도움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가. 이런 ‘기부 대물림’이 많이 확산했으면 좋겠다.”

―연세가 적지 않다. 언제까지 기부를 실천할 생각인가.

“내가 사는 데까지는 지역 발전을 위해, 더불어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며 사회 환원을 실천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기부가 확산할 수 있도록 전파자 역할도 충실히 할 생각이다. 아들과 며느리 등 가족들에게도 시간이 날 때마다 ‘주위를 살펴라’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 이상을 기부해 아너 소사이어티 명단에 이름을 올린 자녀도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기부천사들을 위해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부는 돈이 많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전기를 아끼고 수돗물 한 방울을 아껴서 형편이 되는 대로 하는 것이 기부다. 한번 하고 마는 기부보다는 적은 돈이라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하는 것이 진정한 기부다. 주위를 살펴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럭키산업 일군 성공 사업가… 하남산단관리공단 이사장 맡아 ‘中企 육성’ 열정도
■ 박 회장은…


광주=김대우 기자 ksh430@munhwa.com

1945년 전남 해남군에서 태어난 박흥석(78) 회장은 28세이던 1972년 자신의 이름을 딴 흥국상사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여러 부침을 겪다 롯데·CJ제일제당·삼양식품 등의 광주·전남 대리점 총판을 운영하며 사업을 키워 칫솔, 섬유유연제 등을 제조하는 지금의 럭키산업을 일궈내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알렸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고객과 사회로부터 받은 사랑은 반드시 사회에 환원한다’는 원칙과 ‘인재가 미래다’라는 교육관에 따라 사업에서 이익이 날 때마다 다양한 장학 사업·기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박 회장은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위해 거래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어려워진 회사 경영을 ‘노사상생협력 공동선언’을 통해 극복하는 등 화합경영에 힘쓰고 있다.

1998년에는 지역 민영방송사업에까지 진출해 광주방송문화재단 이사장을 거쳐 KBC 광주방송 대표이사 사장을 10년(2001∼2011년) 동안 역임하며 지역 언론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지역사회의 추대로 2002년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2008년에는 광주은행 장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데 유독 많은 관심을 보였다. 광주를 연고로 한 프로축구 시민구단인 광주FC 대표이사(2010∼2012년), 제21대 광주상공회의소 회장(2012∼2015년),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2013년), 제30대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 회장(2018∼2021년) 등 무수한 직책을 역임하며 지역 발전과 국민의 생명·안전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 왔다.

팔순을 앞둔 나이지만 지난 2021년 3월부터는 광주 광산구 하남산업단지관리공단 2대 이사장으로 취임, 중소기업 육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다시 한 번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광주 광산구 장덕동 일원에 593만7000㎡ 규모로 조성된 하남산업단지는 조립금속·화학·식품·섬유 등 1074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 광주 경제를 이끄는 근간이다. 지난해 말 기준 고용 인원이 2만2000여 명에 달하고 광주 지역 생산 40%, 수출 33%를 차지한다.

박 회장은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대통령 표창, 2007년 한국능률혁신 경영대상과 제41회 납세자의 날 국무총리 표창 등을 잇달아 수상했고 올해는 국세청으로부터 ‘아름다운 납세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름다운 납세자는 매년 성실 납세와 사회공헌을 한 공로자를 찾아 수여하는 상으로 국세청이 2011년부터 수상자를 선정해 왔다. 아름다운 납세자에 선정되면 선정일로부터 3년간 세무조사 유예·납세 담보 면제, 인천국제공항 내 모법 납세자 전용 비즈니스센터 이용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박 회장은 “광주·전남 발전을 위해 이 한 몸 바쳐야겠다는 사명감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김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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