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참석차 내한한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감독은 지난 25일 서울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결과물보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제20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참석차 내한한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감독은 지난 25일 서울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결과물보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서 특별전… 칸 황금종려상 아피찻퐁 감독

“지금 세대는 모두가 창작자… 미술관·영화관 구분 의미없어”
2000년 데뷔뒤 실험영화 매진
비디오 설치 작가로도 활동중
이번 전시엔 중단편 29편 상영

“영화 만들땐 항상 직감에 의존
관객 즐거움 위한 작업 아냐”


국립현대미술관은 왜 태국 영화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을 불렀을까. 미술관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관에서 콘서트를 보고 그림을 감상하는 매체와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럼에도 미술관으로 초대된 영화감독, 영화와 비디오아트, 설치 미술을 넘나드는 세계적 예술가에게 영화란 무엇이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당신의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란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감독의 2008년 단편 ‘뱀파이어’의 한 장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9월 3일까지 상영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감독의 2008년 단편 ‘뱀파이어’의 한 장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9월 3일까지 상영된다.


◇미술관에서 열리는 아피찻퐁 특별전

지난 25일 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아피찻퐁 감독은 “모두가 창작자인 현세대에는 미술관과 영화관의 구별이 무의미하다. 모든 장소와 예술 형태가 통합됐다”며 “직접 핸드폰으로 촬영이 가능해 영상을 보편적인 언어로 여기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영화의 정의도 달라질까. “영화란 조작된 프레임 안을 어둠 속에서 보며 집단적으로 꿈을 꾸는 행위였다”면서 과거형을 쓴 그는 “지금 영화란 무엇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 또한 궁금하다”고 말했다.

칸 국제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 내놓은 답치곤 소박했다. 2000년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뒤섞인 영화 ‘정오의 낯선 물체’로 데뷔한 그는 2002년 ‘친애하는 당신’(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부문 진출), 2004년 ‘열대병’(심사위원상), 2010년 ‘엉클 분미’(황금종려상) 등 수상을 이어갔다. 최근작 ‘메모리아’도 지난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킥더머신’이란 스튜디오를 세워 극단적인 저자본 실험영화를 내놓는 그는 동시에 비디오 설치미술 ‘프리미티브 프로젝트’ 등 미술 작가로도 왕성히 활동 중이다.

9월 3일까지 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상영되는 그의 중단편 영화 29편 역시 전통적인 영화 문법에서 벗어나 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들고 카메라가 정글이나 동굴 등 자연의 모습만 오랫동안 잡는 경우도 빈번하다. 아피찻퐁 감독은 “정글은 종교나 신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원초적 장소”라며 “자연의 법칙이 인간의 법칙보다 훨씬 심오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마따나 영화 속 정글은 문명의 이기에서 멀리 떨어져 감독 자신과 공간이 가진 기억을 발굴하는 의미를 가진다.

◇실험영화는 지루하다?

뚜렷한 이야기 없이 자연을 줄곧 비추고, 인물의 역동적 움직임 없이 빛의 움직임을 응시하는 아피찻퐁의 영화는 지루하다는 인상을 준다. 감독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오만한 것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영화를 만들 때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직감에 이끌려서 뭔가를 만드는 것이지 관객이 지루할까 걱정하거나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과의 대화에선 “창작을 하고 싶다면 유튜브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상을 보지 말라. 외부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라”는 조언도 했다. “요즘은 다른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지루하단 인상은 주관적일뿐더러 그것을 볼 이유가 없다는 것과 동의어가 될 순 없다. 세계의 바깥보다 나라는 사람의 내면을 향해 있는 그의 작품은 ‘영화 보기’가 집단적 경험에서 개인적 체험으로 바뀌고 있는 요즘 시대와 궤를 같이한다. 아피찻퐁 감독은 “내게 영화는 외부를 막아주는 방패이자, 연결해주는 다리”라며 “점점 방패가 투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젠 영화를 만든다는 건 핑계인 것 같아요. 인생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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